"나는 폭로한다. 내가 겪은 성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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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폭로한다. 내가 겪은 성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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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6.09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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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내 모 대학생들, 여성 남성 모두 할 일이 따로 있다는 고정관념에 시비 걸다

여성들이 큰소리 치고 사는 것 같아도 성평등 사회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 성차별 문화는 우리들의 삶 깊숙히 자리잡고 있다. 오래전부터 그래왔기 때문에 문제의식을 갖지 않을 뿐이다. 충북도내 모 대학 학생들이 여성학강의 시간에 쓴 성차별 사례를 소개한다. 20대 초반이 겪은 부당한 말·태도·관습 등은 50대 이후 기성세대가 경험한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사회가 변하려면 아직도 멀었음을 알 수 있다.

누나도 성차별 당해?
박수진

 

‘나를 여자라는 이유로 억압하는 것만이 성차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차별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다양한 상황 속 그 깊은 곳
어딘가에는 우리가 이미 둔감해져 있는 성차별이 영향을 끼치고 있다.‘

최근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 <나쁜 페미니즘>과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라는 책을 읽었다. 그 책을 보고 동생이 “누나 왜 그런 책을 읽어? 성차별 당해? 누나 주변엔 그런 사람 없지 않아?”라고 했다.

엠마 왓슨의 HeForShe 연설을 듣고 딸, 그리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교육이나 생활에 제한을 받은 적이 없고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을 할 수 있게 보장해준 자신의 부모님, 그리고 학교 선생님들이 페미니스트일 수 있다고 했다. 이 말에 일부 동의한다. 성별로 인해 어떤 행위에 제약을 받지 않고 인간으로서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것도 성평등을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로써 온전히 성차별을 해소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나는 사람들의 의식 혹은 무의식에 내재된 성차별의 뿌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공기처럼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의 기저에 차별적 인식이 존재하는 것 같다. 몸 파는 여자, 싸보이는 여자, 창녀 등의 단어는 단순히 여성을 비하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여성은 성기를 삽입당하는 성관계에서의 ‘객체’로 인식하며 남성 스스로는 성관계의 주도적인 입지를 차지한다고 생각하며 여성이라는 것 자체만으로 남성보다 하위에 있음을 나타낸다.

과거에 쓰였던 ‘매춘’이라는 단어(현재는 ‘성매매’로 바뀜)도 여성이 몸을 판다라는 것만을 제시할 뿐 남성의 요구가 전혀 드러나지 않았으며 그러한 행위에서 남성이 쏙 빠져 여성만이 비난의 대상이 되도록 만들었다. 김치녀, 된장녀 등의 단어 또한 자신들이 비난하고자 하는 특정행위를 여성의 공통적인 특성인 것 마냥 묶어서 그 특정행위와 관련 없는 행위를 한 여성이나 혹은 이유 없이 오직 여성이라는 이유로 비난을 받게 된다.

고등학생 때 선생님이 우리에게 남자들은 자신보다 능력이 낮은 여자와 결혼하기를 희망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셨다. 골드미스라는 단어도 일로 인해 바쁘기도 하지만 능력이 너무 좋아도 남성들이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에 결혼하기 쉽지 않아서 생긴 단어라고 한다. 반대로 농촌의 남자들이 국제결혼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자신보다 능력이 좋지 않은 여성들은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장(家長)이라는 용어도 돈 벌어오는 일을 남성들이 지금까지 맡아서 우월적 지위를 누리면서 여성들을 비하하고 집안일이 여성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현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는 사람이 “요즘 여자들이 얼마나 무서운 줄 아느냐. 이제 점점 높은 자리도 많이 차지하고, 신문에서도 이번에 사관학교에서 여자가 수석이라고 하더라. 남자들이 이제 긴장해야 돼” 라고 했다. 단순히 그 사람 한 사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여성의 지위가 올라가서 모든 인간이 평등해지는 것이 결코 남성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깊게 박힌 성차별 상황에 대한 변화의 요구가 커지는 것에 대해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우월적 지위를 차지하던 남성들의 반발이 상당히 크다. 페미니즘을 급진적, 혹은 저항적이라 느끼는 이유가 이미 우리사회가 성차별에 둔감해져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소한 언행들이 사실은 성차별을 내포하고 있음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예 우리의 사회가 원점부터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설거지는 여자의 일인가
정승원

 

성차별이란 성별을 기준으로 관행적으로 혹은 의도적으로 이루어지는 차별을 말한다. 이러한 관행들이 계속되면 성차별이 정당화 되고 규범화가 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성차별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로 임하지 않고 잘못된 관행들을 고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 사회는 양성평등을 추구하고 있다.

나는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성차별을 겪었던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나는 3남매 중에서도 막내로 태어났다. 하지만 내가 부모님, 할머니께 귀여움을 많이 받으면서 자랄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유일하게 남자였기 때문이다. 나의 할머니는 연세가 많으셔서 남아선호사상에 물들어 있는 세대이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할머니가, 누나들은 외할머니가 많이 돌보셨다.

청소년이 됐을 때 나는 우리 가족이 많은 성 차별을 저지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렸을 때 설거지나 빨래와 같은 집안일들은 여자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부엌은 남자가 들어오는 곳이 아니라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누나들이 밥상을 차리고 있을 때 나는 그저 가만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나중에 학교에서 양성평등에 대한 교육을 받고 나는 그것이 성차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뒤로부터 설거지를 하거나 빨래를 걷거나 청소를 하는 등과 같이 어느 정도 집안일에 일조하고 있지만 아직은 성차별이 남아있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의식적으로 엄마가 집안일을 시킬 때 내가 아닌 누나들을 부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저 능력만으로 보았을 때 여자가 남자보다 집안일을 더 잘할 것 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요리분야에 있어서도 우수한 남자 셰프들이 있고 청소나 설거지는 성과 관계없이 두 성 모두가 잘 할 수 있는 그런 일이기 때문이다. 능력에서의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자가 집안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이유는 아마 우리에게 박혀진 고정관념들 때문일 것이다.

성차별은 가정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많이 목격된다. 제주도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나는 ‘남자여서’ 택배회사에서 일할 수 있었지만 누나는 ‘여자라는 이유로’ 아르바이트를 거절당했다. 택배와 같이 몸을 주로 쓰는 일은 남자가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작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내 친구는 요즘 간호사가 부족해서 취업이 잘된다는 말을 듣고 간호학과에 가고 싶어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 남자가 뭔 간호사를 하냐는 말투로 간호학과에 진학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남자 역시 간호사 역할을 잘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자환자들은 오히려 남자 간호사가 더 편할 수도 있고 주사를 놓거나 처방전을 내주는 등 남자라고 못할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남자와 여자와의 생물학적 성차이가 강조되기 시작한지는 인류역사를 통틀어서 볼 때 얼마 되지 않는다. 성 차이에 대한 강조가 성차별을 유발하고 역사적으로 공고해져서 현재 우리나라, 더 나아가 전 세계적으로 양성이 평등한 사회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성 불평등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부모는 물론 교사의 의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교사가 될 학생들이 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관념을 가지게 된다면 앞으로 교사가 되어서 가르칠 수많은 학생들에게 올바른 성평등 교육을 할 수 있고 또 그 학생들은 성에 대한 올바른 관념을 후대에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교사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교사가 일으킨 파장은 시간이 지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 결국에는 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기 있다.
지윤

 

나는 가끔 내가 여자로 태어나지 않았으면 교사가 되기를 원치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할머니는 내가 입골살 때부터 선생이 될 팔자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그게 진짜인 줄 알았다. 나는 사실 화가가 되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면 벌어먹고 살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학교에 입학한 뒤 내가 아는 제일 멋진 직업이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나는 결국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가족들은 참 좋아했다. 내가 선생님이 된다면 시집도 좋은 곳으로 갈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나는 그 무속인이 여자아이만 나타나면 전부 선생님이 될 팔자라는 이야기를 해 주지 않았는지 의심하곤 한다. 왜냐하면 남자인 내 사촌동생에게는 의사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 주었고 오빠에게는 공무원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꿈은 자주 바뀌었다. 가족들은 내가 만화가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을 때는 좋아하지 않았지만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는 너는 될 수 있을 거라고 했고, 먼 길을 돌아 다시 교사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는 내가 그 전에 뭘 하고 싶어 했는지 전부 잊어버렸다. 중학생이 되어 마침내 교사가 나의 적성과는 한참 맞지 않음을 깨닫고 심리학자가 되고 싶다고 하자 “너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며!” 라고 나를 설득하려 했다. 다시 말하자면 난 꿈이 많은 어린이였다.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는 내적 방황의 연속이었다. 나는 선생님이 되고 싶지 않았지만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게 시집 갈 때는 가장 좋은 직업이며, 방학이면 긴 휴가도 생기고, 학비도 싸기 때문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내가 교사 아닌 다른 것을 하겠다는 이야기를 상상하지조차 못했고, 아빠는 다른 길을 갈 것이라면 어떤 삶을 살 것인지에 대해 자세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짜 오라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사실 굳이 심리학자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었고, 교사만 아니라면 다른 어떤 직업이든 상관없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는 화가 났다. 내 오빠는 장래희망에 대해 아무런 강압도 받지 않았고, 오직 건강하기만 하면 됐으며, 나와 성적이 비슷한 남자 사촌동생은 의사나 경찰이 되고 싶다고 자기 꿈을 이야기했지만 나는 할 수 없었다. 왜? 나는 공부를 잘 하는 ‘딸’이었기 때문이다.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영재교육을 보내고 커서는 학원을 보내도 공부를 못하는데, 학원 문턱도 넘어보지 못한 딸은 척척 1등급이 찍힌 성적표며 장학금을 챙겨오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렇지만 결국 제대로 싸워보지는 못했다. 아빠가 계속 이렇게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내 삶에서 아들은 기둥이고 너는 꽃이야. 네가 착하게 잘 살아줘야 나도 살 수가 있어.” 어쩌겠는가, 아버지가 잘 살려면 내가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데. 다만 딱 한번, 대학 원서를 넣으면서 진로에 대해 이야기하다 싸운 적이 있다. 실컷 싫은 마음 참아가며 사대에 맞게 수시를 준비했더니 갑자기 교대에 원서를 넣으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싫다고 했고, 이미 넣은 지방 국립사대 두 군데를 제외하고는 원서비를 내지 못했다. 그리고 교원이 되는 대학에 합격했다. 일부러 면접도 준비하지 않았고, 자기소개서도 도움 한 번 받지 않았는데 추가 합격이라며 붙어버린 순간에는 허탈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거기서 합격을 거절하면 재수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그건 싫었다. 그래서 나는 여기 있다. 난 내가 아들로 태어났다면 여기 있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아직도 가끔 한다.

 

나 혼자 남자로 큰 게 아니었다
오준우

 

초등학교 3학년 때, 집에 있던 원고지에 ‘비겁한 친구들’이라는 제목으로 자작소설을 썼다. 당시 나는 남자가 부당하게 받는 성차별에 관심이 많았다. 울기만 하면 듣는 잔소리 ‘사내대장부가......’를 비롯하여, ‘레이디 퍼스트’, ‘남자는 여자를 때려선 안 돼’ 등등 10살 남자아이로서 화가 나는 제한들이 너무 많았다. 이후 나는 알아서 남자로 성장했다. 울지 않고, 침묵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야한 농담도 잘 하게 되었다. 같은 상황에서 남자와 여자의 생각이 천차만별로 다르다는 자료를 여러 번 접하고, 방향은 없고 소소함과 거기서 나오는 감정 씨름만 있는 여자의 사고를 증오하기까지 했다.

이는 사춘기 시절 방문을 열고 들어와 잔소리, 즉 지난 잘못에 대한 힐난과 하소연의 중간쯤을 풀어내시던 어머니의 영향 때문이기도 했다. 반면 남자다운 성격이 더 우월하다기보다 그저 내가 되어야 할 성격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다. 3월 하순에 대학생이 되고 처음으로 집에 갔을 때, 어머니에게 “보통1종 운전면허를 따고 싶다”고 말했다. 시게노 슈이치(しげの 秀一)의 공공도로 레이싱 만화 <이니셜 D>를 보고 수동 변속 기어 조작에 로망이 생겨 꺼낸 말이었다. 

그런데 어머니의 반응이 의외였다. “남자는 당연히 보통1종이지” 이상해서 다시 물었다. “거의 다 승용차 운전하려고 보통2종 따지 않아? 내 친구도 수능 끝나고 보통2종 땄는데?” 이상한 곳에서 어머니는 완강했다. “여자들은 힘이 안 돼서 2종만 따도 되는데, 남자는 1종을 따야 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하는 말 중 이런 것이 있다. “저 혼자서 큰 줄 안다.” 나는 내가 나 혼자 남자로 큰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남자는 무조건 보통1종을 따야 한다는 어머니의 사소한 말이 나보고 남자가 되라는 보이지 않는 외부의 손길들과 연결되는 것을 느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들었던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울어야 한다’류의 말들은 ‘남자도 보호해 주세요!’라는 동심 어린 외침으로 소비되었을 뿐, 지금의 나로 변해 가는 사이 사회는 나에게 소리 없이 남자답게 살라고 말을 걸었다. 소리 없는 말을 건 주체들은 마음잡고 생각해 본다면 어머니를 제외하고도 셀 수 없이 많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부터 남녀 역할이 당연히 고정된 시대에 저술된 인문고전까지 사회는 켜켜이 쌓인 역사로 현 세대의 남자아이를 사회적 남성으로, 여자아이를 사회적 여성으로 만들어낸다. 

그런 사회에 ‘성차별 철폐’로 맞서는 것은 쉽지 않다. 유서 깊은 이데올로기에 편린 같은 현재로 맞서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회는 결국 사람이 이루는데 이 사람들이 이미 사회적 남성과 여성으로 성장한 사람들이고 이 사회적 성 규정에 인간으로서의 이해관계가 작용한 것이 성차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미 “남자는 이래야 하고 여자는 저래야 한다”고 사소한 자리에서라도 말하는 순간 유서 깊은 사회의 길들임과 이해관계의 결합체인 성차별이 우리의 입에서 되풀이된다.

이러한 운명의 수레바퀴 안에서 빠져나와 성별을 넘어 모두가 진실로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연구의 자세’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일례로 역사에서 교훈을 찾는 것이 있다. 성차별이 제도에는 물론 개인의 의식 속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와 문화권이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에는 분명 존재한다. 그 역사가 평등했던 요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평등을 유지해 나갔는지를 참고하고 평등을 누리려는 사람들이 그것을 통해 생각을 나누고 의미를 더한다면 단순한 의지 관철보다 더 실질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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