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처에 깔린 ‘내로남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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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처에 깔린 ‘내로남불’
  • 권영석 기자
  • 승인 2021.03.03 0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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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집 앞에서 재미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2층에 사는 한 주민이 3층에 사는 주민에게 밤마다 화분을 땅바닥에 내려놓는 쿵쿵 소리 때문에 겨우 잠든 아이들이 깬다며 하소연하는 모습이었다. 2층에는 어린 아이 3명과 부모가 거주하고 있다. 내심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며칠 뒤 2층 주민이 1층 주민과 다투는 모습을 보며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먼저 1층 주민이 ‘2층 아이들이 너무 뛰어다녀서 시끄럽다는 민원을 관리사무소에 제기한 모양이다. 이를 안 2층 주민이 1층으로 내려와 고함을 지르며 아이들 키우는 집에 그럴 수도 있지 당신은 아이를 안 키워봤냐1층 주민에게 따졌다. 싸움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이후 관리사무소장에게 물어보니 지금도 관련해서 층간소음분쟁위원회가 열린다고 하소연했다.

당사자들은 어떤 감정일지 모르겠지만 우연히 과정을 본 사람의 입장에서는 내로남불로 밖에 비쳐지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또 다시 비슷한 사례를 목격했다. 협소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차를 잘못 주차한 것을 두고도 싸움 나는 일이 벌어졌다. 기분 나쁘다며 한 주민은 지하주차장 앞에 차를 떡하니 대놓고 사라졌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교수신문은 이런 현상을 아울러 지난해 말 올해의 사자성어내로남불을 뜻하는 아시타비(我是他非)를 선정했다. ‘내가 하면 옳고 남이 하면 그르다는 의미의 신조어가 사자성어에 선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덧붙여 교수들은 아시타비를 사회 병리현상으로 분석했다. 이를 두고 코로나19가 길어지면서 전국민적으로 우울증을 경험한 코로나 블루’, ‘코로나 레드에 이어지는 현상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그런 가운데 정치권에서도 내로남불의 행태가 여러 번 불거졌다. 중앙정치무대, 특히 야권에서 많이 쓰는 표현이었지만 지난달에는 충북도의회에서도 비슷한 일이 터졌다. 충북도의회는 도의원들의 국외여비를 인상했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 가능성이 낮은 상황 등 예상되는 논란에 대해 어차피 못쓰면 반납할 것이라는 이유로 인상안을 강행했다. 하지만 이후 피감기관에서 제출한 국제교류 협력사업 예산이 불필요하다는 이유로 전액 삭감된 것이 알려지며 여론이 악화됐다. 지역시민사회에서 충북도의회가 사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게 일었다.

정치권이 이런 모습을 보인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현 시점에서 터진 사건에 대해서는 좀 다른 해석이 요구된다. 그동안은 간헐적으로 터지는 유사 사건에 대해서 우리사회는 개인 간의 갈등, 집단의 도덕적 해이로 치부해 해결책을 제시해왔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윗물은 그대로인데 아랫물만 맑아지기를 기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제는 변화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교수들이 사자성어를 선택하면서 그 원인이 개인이 아닌 사회 전체에 있다고 판단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논의를 시작하면 여러 대안들이 나오겠지만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내로남불의 문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더 투명하고 이치에 맞는 사회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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