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이성을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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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이성을 찾자
  • 홍강희 기자
  • 승인 2021.04.2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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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강희 편집국장

 

세상이 요지경 속이다. 지난 20일 삼성전자의 한 직원이 암호화폐에 투자해 400여 억원을 벌고 회사를 그만뒀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삼성전자 직원들은 “구체적인 액수는 모르나 많은 돈을 벌어 퇴직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말이 400억원이지, 이 게 얼마나 많은 액수인가. 다른 세상을 보는 듯 하다.

실제로 항간에는 주식 혹은 부동산 투자로 부자가 돼 일찍 퇴직한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떠다닌다. 이런 기사와 소문들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요즘 이런 말을 듣고도 동요하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나도 이런 사람이 부러웠다.

2030 젊은이들 중에 ‘파이어족’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파이어(FIRE)는 경제적 독립(Financial Independence)’과 ‘조기 은퇴(Retire Early)’의 첫 글자를 딴 신조어다. 누가 만들었는지 그럴 듯 하다. 하루라도 빨리 돈을 모아 경제적 자립을 이룬 다음 조기 은퇴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기성세대들은 60세 정년퇴직 할 때까지 일을 놓지 않고 돈을 벌었다. 그 돈으로 자녀들을 교육시키고 생활했다. 성실하게 직장 생활을 하는 게 미덕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하면 시대에 뒤떨어지고 무능한 사람 소리를 듣는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부동산·주식·비트코인 등에 투자를 해서 재산을 모으는 게 현명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 그런가. 관심을 받던 정치기사는 뒷전이고 요즘 돈·재산·투자에 관련된 기사는 전국민들에게 읽힌다. 하지만 우리사회가 이렇게 된 데에는 점점 더 자극적인 기사로 독자를 끌어 모으려는 언론사들의 경쟁이 한 몫 했다는 지적이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임하자마자 여기저기서 ‘강남 재건축 아파트 들썩들썩’ ‘강남 재건축 호가 2~3억 껑충’ 등의 기사가 나왔다. 그전에는 ‘지금 아니면 집 못산다’ ‘2030 영끌 잘했다’ ‘해외주식 투자 이렇게’ ‘주식투자로 500% 이상 수익올려’ ‘어린이 주식투자 열풍’ 같은 기사들이 쏟아졌다.

이런 기사를 읽으면 아직도 집을 안사고 주식투자를 안하는 사람들은 ‘바보’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너도 나도 은행 융자를 받아 주식을 사고 아파트를 보러 다닌다. 젊은 시절에 ‘영끌해서’ 아파트를 사면 융자금 갚느라 평생 고생하지만 사람들은 기꺼이 그 길을 간다. 어찌해서 아파트를 산다고 해도 5년 안에 팔고 신축 아파트로 옮겨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야 높은 가격을 받고 팔기 때문이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는 책 『바벨탑 공화국』에서 “아파트는 상품이요 재테크 수단이다. 그건 ‘사는 곳’이라기 보다는 ‘사는 것’이다. 살 집이 아니라 팔 집이다. 아파트 평균수명이 영국 140년, 미국 103년인데 우리는 고작 22.6년이다. 자기 아파트가 무너질 지경이라는데 ‘경축! 구조진단 통과’라는 플래카드가 걸린다.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자주 이사를 다니는 국민이 됐다”고 썼다. 가축을 키우기 위해 옮겨다니는 유목민을 제외하고 한국인은 세계 최고의 노마드족이 됐다는 강 교수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돈이 최고인 시대다. 무슨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돈을 벌면 대접받고 큰소리 친다. 날이 갈수록 그 증상이 심해져 어지럽기까지 하다. 제발 이성을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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