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전 부총리, 고향서 메시지…심금 울리며 정치권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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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전 부총리, 고향서 메시지…심금 울리며 정치권 비판
  • 김천수 기자
  • 승인 2021.05.05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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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딛고 ‘유쾌한 반란’으로 입신양명…고심 “국가의 미래”
음성군 맹동혁신도서관에서 강연하는 김동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충청리뷰_김천수 기자] 김동연(64)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고향인 충북 음성을 방문해 이틀 연속 강연 행보를 이어가며 감동 스토리를 전했다. 김 전 부총리의 이번 강연은 고향민들 가슴에 특별한 감동으로 전달됐다. 아울러 자신을 대통령 후보군으로 평가하는 정치권을 향해서는 진영 논리에 매몰된 격돌로 미래를 담론화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해 주목을 끌었다.

비영리 사단법인 ‘유쾌한 반란’ 이사장인 김 전 부총리는 지난달 27일 어머니와 부인 등을 대동하고 고향에 내려왔다. 1957년 자신이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음성군 금왕읍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고향 마을인 금왕읍 주민들과 음성군의 초청으로 이틀간의 강연차 일시 귀향이었다.

김동연 전 부총리.

첫날 강연은 금왕읍 행정복지센터 대회의실에서 진행됐다. 고향 출신이란 점에서인지 참석자들은 김 전 부총리에 대한 환영 일색이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참석인원은 금왕읍 주요 기관사회단체 대표 및 원로 등 50명으로 제한됐다.

이튿날 맹동혁신도서관에서 열린 강연은 음성군 평생학습과가 운영하는 반기문아카데미 초청으로 이루어졌다. 충북혁신도시 내 맹동면 동성리에 설립돼 5월 5일 어린이날 개관을 앞두고 사전 행사로 마련됐다. 유튜브 생방송으로 공개된 이날 강연 참석자 50명은 사전 예약을 통해 선정됐다.

연이틀 진행된 강연은 ‘나와 세상의 벽을 넘는 유쾌한 반란’이란 동일한 주제였다. 이 주제는 그의 저서 ‘있는 자리 흩트리기’의 부제이기도 하다.

고향민들의 높은 관심 속에 단상에 선 김 전 부총리는 먼저 고향에 대한 친밀감을 나타냈다. 그는 “방학 때면 한 달씩 고향에 다녀갔다”면서 “나는 무기(금왕읍 무극리 옛 명칭)에서 태어났다. 서울 마장동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감곡을 지나 미루나무가 줄지어 선 신작로에 들어서면 ‘고향에 다왔구나’하는 푸근함과 설레임을 느끼곤 했다”고 기억했다. 고향의 청중들은 어렸을 때 가족사진 등 영상과 진정어린 그의 말을 놓치지 않으려 눈을 떼지 않았고, 메모를 하기도 했다. 때때로 공감하는 대목에서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낮은 탄식과 함께 눈물을 보이며 자연스럽게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고향서 강연 행보로 주목

이번 김 전 부총리의 강연과 고향 친구 등의 말에 따르면 만 11살 때 미곡상을 하던 33세의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갑자기 별세했다. 32세의 어머니와 동생 셋 그리고 할머니까지 여섯 식구를 남기고 떠났다. 가세는 급격히 기울어 가족들은 청계천 판잣집 생활을 해야했다. 몇 년 뒤에는 정부 정책으로 당시 경기도 광주군 단대리(현재의 성남시 단대동)로 강제 이주하게 돼 천막촌 생활을 하기도 했다.

자신이 살던 음성군 금왕읍 무극시장 내 집터를 둘러보는 김동연 전 부총리.

앞서 아버지는 나이 27세 때 먼저 서울에 올라가 자리를 잡고 몇 년 뒤 가족들을 상경시켰다. 동생들도 모두 금왕읍 무극리서 태어났고, 친구는 김 전 부총리가 무극초등학교 3학년 때 집이 이사한 것으로 떠올렸다.

30대 초반에 남편을 잃은 어머니는 다섯 살 막내까지 자식 넷과 자신의 어머니까지 부양해야 했다. 채석장에서 돌을 나르고, 산나물을 캐서 좌판을 벌이기도 했다. 장남인 김동연은 내키지 않은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하루라도 빨리 취직해 어머니의 역할을 빼앗아 가장 역할을 해야 됐기 때문이다.

덕수상고 3학년 때 서울신탁은행(현 하나은행)에 합격해 졸업 전부터 다니게 됐다. 돈을 벌어 동생들 학비 등 생계비를 댈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공부에 대한 목마름을 풀기 위해 야간인 국제대학(현 서경대학교)을 진학했다. 주경야독의 시작이었다. 당시 우연히 은행 선배의 기숙사 방에 놀러 갔다가 쓰레기통에 버려진 책 중에 한 권을 무심코 가져갔다. 고시 잡지였다. 고시가 있다는 것을 알고 곧바로 도전했다. 두 번의 실패 끝에 1982년 졸업하던 해에 제26회 행정고시와 제6회 입법고시에 동시에 합격했다.

1983년 수습사무관으로 근무하던 시절 충북도청 앞에 선 김동연.

1983년 수습사무관 근무처를 남들처럼 가까운 서울이 아닌 충북도청을 원했다. 도청에 와서는 산하 근무지를 음성군청을 택했다. 고향에서 근무하고 싶은 소망에서다. 청주에선 모충동에서 하숙을 했고, 음성에선 신천리에 있는 친척집에 기거하며 열심히 근무했다. 음성이 고향인 고시 출신 사무관으론 그가 처음 근무자였다고 한다.

줄곤 기획재정부에 있으면서도 학구열은 계속 불탔다.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미국 미시간대학교 대학원 정책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세계은행(IBRD) 프로젝트 매니저,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기획재정부 2차관, 국무조정실장으로 32년 공직 생활을 마무리 했다.

진영논리 비판하며 ‘미래론’

휴식 기간을 갖는 사이 아주대학교 총장직을 맡게 됐다. 애프터유(AfteYou) 장학 프로그램, 파란 학기제 등으로 학교는 물론 지역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고는 문재인 정부 초대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에 올라 1년 반을 역임했다. 재임 시절에 공부하는 경제관료, 정책수립의 마스터로 명성이 높았다.

퇴임 후 지난해 1월 사단법인 ‘유쾌한 반란’의 설립은 그의 삶과 실천 철학이 담긴 저서 ‘있는 자리 흩트리기’가 기반이 된 것으로 보인다. 대학 총장 때 발간한 이 저서는 현재 32쇄를 발행할 정도로 스테디셀러가 됐다. 이 책에는 위에서 밝힌 속 이야기 외에 많은 감동과 아이디어가 들어있다.

특히 잘생기고 유능한 27세 청년인 그의 큰 아들을 잃은 아픈 과정이 녹아있다. 그와 공동 집필하는 마음으로 썼다고 한다. 11살에 아버지를 잃고, 57세 때 큰아들을 떠나 보내게 된 가족 이야기 속에 청년과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역설적이게 감동의 ‘유쾌한 반란’이다.

그는 이번 각각 90분 간 두번의 강연에서 ‘유쾌한 반란’의 설립 취지와 실천 내용 등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정치권을 비교적 가감 없이 비판했다.

그는 고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양극화가 심화돼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할 정도라고 진단했다. 코로나로 힘들 것이라면서 단기간에 해결이 안되면 점점 심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신의 저서에 사인해 주는 김동연.

그는 “정부가 올해 1/4분기 성장률이 1.6% 성장했고, 금년 성장률은 3% 중반 될거라고 하는데 성장률은 작년 대비”라고 언급했다. 이어 “작년에 어땠나. 마이너스 1.1에서 올해 3.6% 성장한다면 어떤 건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부총리 때는 첫년도에 3.2%, 둘째년에 2.7% 성장했고, 작년에는 마이너스 1.2%였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성장률이 중요한 게 아니고, 민생이 중요하다. 삶이 중요하다. 어떤 때는 성장률이 좋다고 하는데 내 삶이 느끼지 못하면 화나는 일이다”라고도 했다.

결론적으로 “거시경제 지표보다 중요한 것은 민생과 삶과 시장과 개개인에 주어지는 일할 기회, 공부할 기회, 사업할 기회다”라며 “고른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불공평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이어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래에 대한 얘기를 해야 된다. 오늘의 화두가 미래다. 과거의 이념논리, 진영논리, 흑백논리가 뉴스를 뒤덮고 있다”며 “미래를 위한 주제를 봤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우리 상황은 어떻게 변하고 있냐”고도 했다. 그는 “코로나에, 디지털 혁명에 미·중 관계 싸움에 국제경제 질서는 지난 50년동안 지탱해 왔던 자유무역 등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고 위기감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그는 “패권경쟁 속에서 한국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등 수많은 미래의 과제에 대해 사회 담론화 하지 않는 것 같다”며 “지도자들은 청년의 미래,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 담론화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더 많은 기회와 고른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점을 되풀이해 지적하면서 공정과 나눔 가치의 실천 사례를 들기도 했다.

김동연 전 부총리는 내년 3월 실시되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야의 후보군으로 분류되고 있어 현실 정치와 관련한 발언에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특히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함께 충청권 대망론으로 꼽히기도 한다.

그는 첫날 강연 후 금왕장학회와 음성장학회에 장학금을 기부하며 애향심을 감추지 않았다. 특별히 음성군이 운영하는 음성장학회의 이사진과 간담회를 갖고 장학제도와 관련한 아이디어 사례를 전하기도 했다. 이어서 부인과 함께 무극 전통시장 내 자신이 살던 초가집 자리를 둘러봤다. 다음날 부부 일행은 모친을 모시고 진천군 덕산읍 내 덕산양조장 인근을 방문했다. 이곳은 모친의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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