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선영_‘공간’을 파는 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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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선영_‘공간’을 파는 상점
  • 충청리뷰
  • 승인 2021.05.06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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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산남동 두꺼비 생태공원 조성 과정, 소설 『시간을 파는 상점 2』에 녹여내

 

소설의 등장인물도 우리처럼 공간을 딛고 살아간다. 그래서인지 공간적 배경이 내가 아는 도시라면 소설과 소설안의 사람들이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내가 아는 장소, 만난 적이 있을지도 모를 등장인물 때문이다.

소설가 김선영을 만났다. 그가 쓴 소설 『시간을 파는 상점』에는 것대산, 명암저수지, 무심천, 두꺼비 생태공원이 등장한다. 단순히 배경이라기보다 등장인물처럼 생명력을 가진 장소들이다. 이곳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상징적 공간이다. 작가가 삶의 뿌리를 두고 있는 장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역’작가라고 하면 마치 주류 문학계에서 밀려난 것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그를 ‘지역’작가라 부르고 싶은 마음은 그가 쓴 소설이 지역의 시대 모습과 인물과 공간에 대한 기록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지역에게 ‘지역’작가는 더없이 귀하다.

시절인연, 시절 헤테로토피아

김선영 작가
김선영 작가

"2000년대 생태교육연구소 ‘터’에서 논술을 가르쳤어요. 생태운동하고, 아이들 가르치고, 소설 쓰고, 아이 엄마였고, 바쁘게 살았어요. 그 때만 해도 원흥이방죽에 두꺼비와 올챙이가 반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빨간 깃발이 여기저기 꽂히는 거예요. 그럼 방죽은 어떻게 해? 묻힌대. 두꺼비는 자기가 태어난 곳에 와서 알을 낳는대, 조산소 같은 방죽이 없어지면 두꺼비는 어디로 갈까. 방죽을 남겨달라, 살려달라. 지난한 싸움이었어요. 결국 1만여 평을 얻어냈죠. 동료가 삽날에 맞기도 하고, 입구에 모래산을 쌓아놓고. 흙 다시 퍼 올리고. 후유증이 있는 게, 대규모 개발로 환경이 파괴될 때 저것도 살려야 되는 게 아닌가 싶다가도, 아니야. 그런 거 이제 난 더 못해 하고 고개를 돌리게 되더라고요."

산남3지구 택지개발사업 이후에도 원흥이방죽이 살아 남았고, 산남동 주민들은 두꺼비 생태공원을 갖게 되었다. 원흥이방죽은 개발과정에서 손상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 본래의 생태성을 회복했다. 그리고 지금은 도심 내 근사한 생태공원이 되었다. 가끔 그곳을 걸으면 마치 숲속을 걷는 것 같아 신비감조차 든다. 방죽이 회복되는 사이 작가에게도 객관적 거리가 생겼다. 김선영 작가는 2019년 출간된 『시간을 파는 상점 2』에 그 때의 경험을 고스란히 녹여냈다. 이로써 우리는 두꺼비 생태공원의 보이지 않는 역사를 이해하게 되고, 거저 얻은 공원이 아니라는 것을, 누군가의 힘겨운 싸움으로 누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

“다음 해에 두꺼비가 한 마리도 되돌아오지 않더라도 의미 있는 일이야. 이대로는 아니라고 누구나 생각은 하고 있잖아. 브레이크가 필요한 건 너도나도 다 알고 있는데 아무도 행동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어.(…) 여기에 이런 존재가 있었다는 자각만이라도 할 수 있게 한다면 끝까지 손을 놓지 않아야 된다고 봐” (192p)

다행히 두꺼비는 방죽으로 돌아왔다. 두꺼비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은 인간에게도 이롭다. 원흥이생명평화회의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07년 이후 수질이 개선되고, 두꺼비 개체수도 회복되었다. 5월은 낯선 생태통로를 무사히 통과하여 방죽에 안착한 두꺼비들이 한창 알을 낳는 시기이다. 원흥이방죽은 두꺼비들에게 세대를 이어 연속되는 고향이다. 모든 인연에는 오고 가는 시기가 있다는 시절인연처럼, 원흥이방죽은 어쩌면 그에게 ‘시절 헤테로토피아’가 아니었을까.

청주 산남동 두꺼비 생태공원의 아름다운 풍경.
청주 산남동 두꺼비 생태공원의 아름다운 풍경.

 

자연, 위로의 공간

"금천동에 살았어요. 나만큼 명암저수지를 걸은 사람이 또 있을까 싶어.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걸었어요. 왜 나만 안 풀리는 거야, 하면서. 숨 쉴 수 있는 장소였던 것 같아요. 일상의 허파였던 거죠. 자연이 주는 위로가 있잖아요. 사람이 주는 위로와는 다른. 노랗게 피는 감국, 산국이 '잘 왔어. 그동안 잘 버텨낸 거야’ 하고 말을 건네요. 그 순간만큼은 가을 햇빛 다 받아내어 저한테 건네주는 것만 같아요. 오래된 나무를 좋아해요. 나무 기둥에 손을 대고 ‘참 대단하십니다. 이렇게 옹이를 크게 새기면서 어떻게 버티셨어요.’ 감국에게 들은 말을 다시 나무에게 돌려줘요. 그러면서 알아가죠. 이렇게 다 연결되어 있구나, 하나로."

명암저수지는 『시간을 파는 상점 1』의 주요 무대다. 작가가 위로받은 일상의 공간에서 소설 속 주인공들도 뛰논다. 우리처럼 그곳에서 만나고, 걷고, 서로를 알아간다. 것대산에서 해 뜨는 것을 보고, 명암저수지를 걷고, 상당산성 서문에 앉아서 지는 노을을 보던 작가는 이제 미호천이 보이는 곳에 산다. 더 넓은 자연을 찾아 서식지를 옮기고 있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작가의 말을 따라가다 보니 가까이에 근사한 장소들이 많다.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 새삼 이 도시에 사는 게 좋아졌다. 헤테로토피아가 하나일 필요는 없다. 더 많은 헤테로토피아를 가진 삶이 더 풍요롭다는 단순한 사실을, 그에게 배웠다.

/ 이정민 청주시 도시계획상임기획단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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