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 10주년 기념전 ‘청주가는 길’ 강익중

‘소통과 화합’, ‘조화와 연결’의 메시지… 청주시립미술관 9. 29일까지 전시

2024-07-24     이기인 기자
강익중

청주시립미술관은 통합 청주시 출범 10주년을 기념해서 청주 출생 강익중 화백의 대표작을 선보이는 ‘청주 가는 길, 강익중’ 전시를 개최했다. 올해로 창작활동 40주년을 맞는 강 화백은1984년 뉴욕으로 건너가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며 그동안 ‘소통과 화합’, ‘조화와 연결’의 메시지를 작품에 담아왔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지난 40년간 추구해 온 개념을 바탕으로 제작한 3인치 캔버스와 삼라만상, 달항아리 시리즈와 한글 프로젝트 등을 소재별로 구분해 선보인다. 강 화백의 애칭인 ‘3인치 미술’은 그가 바쁜 유학생활 중, 지하철에서도 작업할 수 있는 방식을 찾다 우연히 손바닥에 들어온 3인치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면서부터이다.

강 화백이 ‘세계’를 담는 기본 틀은 작은 캔버스다. 수많은 3인치의 정사각형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창(window) 역할을 한다. 이렇듯 독톡한 구조의 작품은 작가의 유학생활에서부터 출발한다. 뉴욕의 가난한 유학생인 그는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했다.

또한 그림을 그려야 했기에 일하러 가는 중에도 그림을 그려야 했다. 이렇게 탄생한 3인치 캔버스는 하나만 놓고 보면 손바닥 크기지만 수백 수천, 수만 개가 군집을 이루며 다채로운 조형적 이미지를 구현해 낸다. 강 화백은 이 작품으로 뉴욕화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강 화백의 미국 초기 작품에는 ‘일과 예술’이라는 두 영역을 고민하는 이민자의 시각이 내포되어 있다. 그의 캔버스는 이국의 도시. 뉴욕생활에서 쓴 매일매일의 일기장처럼 그날의 즉각적인 반응이 녹아있는 작품들이다.

강 화백은 비디오아트의 선구자 백남준과도 전시를 한 적이 있으며 뉴욕과 한국을 오가며 꾸준한 활동을 펼친 작가다. 한편 그는 오래전부터 미술의 교육적 의미에 대해 성찰하는 전시회를 학생들과의 협업으로 이끌어온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2018년 충북진로교육원에 설치한 강 화백의 ‘꿈의 집’은 도내 초‧중‧고 학생 9000여명과 함께 작업을 했다.

올해는 통합 청주시가 출범한 지 10년이 되는 해이다. 청주와 청원은 1946년 해방 이후부터 분리됐다가 2014년 7월 1일 통합 청주시로 출범했다. 통합 청주시는 주민주도의 행정구역 통합을 실현한 최초의 지방자치단체로 통합은 양 지역의 대립적인 갈등을 시민 화합으로 풀었다는데 그 의미가 크다. 이에 청주시민의 자주적 통합시 실현을 기념하고 예술 작품을 통해 ‘상생과 통합’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강익중 화백의 기념전을 준비했다.

강 화백의 작품은 미술가로서 이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한다. 사회를 변화시키는 물결은 사람들의 작은 일들이 모일 때이다. 특히 함께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미래 사회를 짊어지고 나갈 어린이가 매우 중요하다. 강 화백이 아이들과의 협업을 중시하는 이유는 이렇듯 깊은 혜안이 숨겨져 있다.

10여 년의 뉴욕 활동으로 미술계에서 입지를 다진 강 화백은 1996년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대표 작가로 특별상을 수상했고, 재외 작가라는 인식을 넘어 국내외 미술계의 조명을 받게 됐다. 특히 90년대 말부터는 다수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세계의 화합과 평화를 위해 대중들과 소통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2000년대 초부터 강 화백은 달항아리와 한글 이미지를 소재로 공존의 미학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상부와 하부를 따로 만들어 이어 붙이는 달항아리의 제작 방식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작가의 달항아리 시리즈는 상생과 포용의 의미를 갖고 있다. 동시에 작가는 한글의 자음과 모음이 조화를 이루는 한글 프로젝트를 통해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업을 전개한다.

한편 일상에서 얻은 삶의 지식과 지혜의 문장을 작은 사각형에 한 글자씩 그려 넣은 한글 프로젝트는 장소에 맞게 규모를 변모하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작가는 달항아리와 한글 프로젝트를 한국적 조형미를 넘어 인류가 공감할 수 있는 감성적 미학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강 화백은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난 일이나 기억과 잔상 때로는 파편적인 이미지로 또는 낙서로와 경구로 뒤섞인 작품을 형성화하고 있다. 그 일상의 작은 파편을 작가 특유의 위트와 유머로 캔버스를 뒤덮기도 한다. 그의 작업 중에는 오래전에 고향 청주를 떠난 이의 고향사랑이 향긋한 체리향으로 묻어나는 시도 있다.

묻지않아도 아는/손을 잡지 않아도 통하는/오랜만이라도 낯설지 않는/멀지만 가까이 있는/마음 한구석에 숨 쉬고 있는/그 플라타너스 터널이 반겨주는/잠 못 이루는 밤에 생각나는/우암산이 기다리는/바람이 들려주는/보듬지 않아도 피어나는/울 어머니 좋아하셨던/레이니어 체리같은 (‘청주가는 길’)

강 화백의 오래된 고백이고 기도문 같아서 다시 읽고 싶은 문장이다. 마지막 시행에 나오는 레이니어(rainer cherry) 체리는 1952년 워싱턴 주립대학에서 빙체리와 밴체리를 교배시켜 만든 높은 당도의 체리라고 한다.

청주를 사랑하는 한 예술가의 색채감이 이렇듯 이쁘고 달큼한 체리로 응축될 수 있다니 놀랍다. 그의 작업은 보다 작아지면서 보다 커지는 세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장에 무심히 있는 강 화백의 자기소개서를 보니 당신의 호가 ‘그냥’이라고 한다. 장난으로 지었다가 굳어진 호라고 한다. 그의 작품이 ‘그냥’ 이유없이 좋아졌으면 좋겠다. 그의 꿈틀거리는 작품은 오는 9월 29일까지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