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멸망한 뒤, 우리에게 남은 건 그리움이야

윤이주 작가 첫 장편소설 <마음>…2021년은 환타지일까 리얼일까
샴-쌍둥이, 입체인간, 평면인간 등 등장인물의 심리적 갈등 돋보여

2013-02-27     박소영 기자
가까운 미래 2021년. 세상의 종말이 온 후, 인류에게 남아있는 것은 무엇일까. 작가 윤이주(47)는 “사람들 마음 안에 그리움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단정한다. 13년 전 청주에 내려와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윤 씨가 이번에 첫 장편소설 <마음>(도서출판 무늬)을 펴냈다.

소설의 주인공은 24살 송미미다. 미미는 인류에게 대 재앙이 밀어닥친 이후 살아남는 자 몇몇 중의 하나다. 미미는 어릴 적 부모님이 살던 집을 찾아가면서 다양한 공간들과 세계를 조우한다. 미미는 소설에서 또 다른 소설의 무대인 ‘워터멜론 슈가’를 방문하기도 한다.

이는 미국의 소설가 처드 브라우티건(1935~1984, Richard Brautigan)가 1968년 쓴 작품 ‘워터멜론 슈가에서’(In Watermelon Sugar) 모티브를 따왔다. 소설에서 미미는 브라우티건을 살아있는 인물로, 또 워터멜론 슈가에서는 살아있는 자들에게 물품을 배달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미미 외에도 엄마의 과거 연인이자 문제적 인간인 스테파노 신부, 산타클로스, 곰이 등이 등장해 이야기의 골격을 이룬다. 윤 씨는 “집, 공간의 개념을 무형으로 설정했다. 사람들이 만날 때마다 집이 생기고 공간이 생긴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봤다”고 설명했다. 그의 소설에서 살아남는 자들은 부피와 질감이 없어지고 평면으로 남겨진 이른바 ‘평면인간’들을 한 없이 그리워한다. 그립다고 해서 ‘평면인간’을 만지면 바싹 사그라진다. 나중에 미미는 ‘평면인간’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팁마저 익히게 된다.

그의 소설은 시간순서대로 전개되지 않는다. 이는 공간도 마찬가지다. 결국 세상과 마음이 무너진 채 사는 사람들은 또 다시 선택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더 나은 곳이 있을 거란 희망을 안고 불확실한 미래를 거닐어야 한다.

<마음>의 표지에는 샴-쌍둥이가 그려져 있다. 하나의 심장, 하나의 마음을 가진 아이다. 소설 속에서 이 아이의 이름은 ‘테레사’다. 테레사는 소설후반부에서 곰이에게 말한다. “어쩌면……, 이 그리움이 생겨나게 하려고 세상이 무너져 내린 건지도 몰라.”

윤 씨는 “사람들의 에너지를 받아 세상은 좁아지고 넓어질 수 있다. 소설은 공상소설 같은 장소와 시간적 배경이 펼쳐지지만 그냥 소설로 봐주었으면 좋겠다”고 귀띔한다. 드라마처럼 계산된 전개가 아니라 소설이기 때문에 자유롭고 허술해도 그만의 매력이 있다는 것.

윤 씨의 남편이자 도서출판 무늬의 대표, 그리고 평론가인 소종민씨는 “요즘 우리들이 잃고 있는 것과 교감의 부족을 메시지처럼 깔고 있는 소설”이라고 평했다.

그는 7년 전 이번 소설에 대한 모티브를 잡았고, 실제 써내려간 것은 지난 가을 한 때였다고 한다. 또 지난해 충청리뷰 신문사에 기고한 ‘루저들의 혹성’편의 글이 이번 소설 후반부에 실려 있다고 한다.

소설은 2021년에서 2035년 쯤 끝난다. 주인공 미미는 세 가지 질문은 던진다. 사람이란 무엇인가, 집이란 무엇인가, 세계란 무엇인가. 윤씨는 소설에서 얻은 답은 “마음”이라고 정의한다.

이처럼 작가는 ‘마음’ 잃은 이들, ‘마음’ 잃은 곳들, ‘마음’이 무너져 내린 삶들에 이 소설이 씨앗으로 심기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윤 씨는 2003년 <내일을여는작가> 신인추천으로 등단한 이래, 2008년 문화예술위원회 문학창작기금을 받아 같은 해 첫 작품집 <먼 곳 아득이>(고두미)를 출간했다. 2010년 문학나눔 선정 우수문학도서인 두 번째 작품집 <정오의 산책>(무늬)를 출간했다. 현재 충북 청주에서 살고 있다.

한편 윤 씨 부부는 2월 28일 문학공간인 ‘책과 글’을 남주동 한복의 거리 일원에 개소한다. 예전 연극공간 ‘새벽’이 있던 자리다. 지역에서 꾸준히 인문학 공부를 해왔던 ‘책과 글’은 앞으로 다양한 문화기획자들과 협력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