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만 해도 100년이 넘는 유구한 전통의 음식점이 많지 않습니까. 제 꿈은 한국에도 100년 이상 맥을 잇는 명문 음식점을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아직 어린 제 아들의 진로를 벌써 결정해 놨습니다. 제 뒤를 잇도록 ‘요리사’로 키울 생각입니다.”
‘충북대 중문에 정통 이태리 음식을 하는 레스토랑이 있는 데 맛이 정말 일품’이라는 얘기를 듣고 나선 길이었다. 이름도 이태리 레스토랑답게 ‘리꼬네’였다. 큰 어려움 없이 찾아간 ‘리꼬네’ 레스토랑의 대표 박진용 씨(32)는 “프로답다”는 인상을 첫 눈에 안겨주었다. 구사하는 언어나 손님을 맞는 태도, 행동거지 하나 하나가 세련되면서 품위 있는 게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성장한 듯 했다. 사실 박 대표로부터 설명들은 것이지만 ‘풍요로운’ ‘부유한’이란 뜻의 ‘리꼬네(Ricone)’ 상호와 그의 이미지가 잘 맞는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제 30대 초반인 박 대표가 ‘젊은이들의 거리’로 자리 잡은 충북대 중문에서 레스토랑 사업에 뛰어든 것은 5년 전인 1999년. 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신라호텔에 입사, ‘호텔리어’가 된 그는 일찌감치 일류 주방장이 되기 위한 도전에 나섰다. 그가 선택한 것은 요리의 본고장인 이태리의 심장 속으로 뛰어드는 것. 요리 유학을 떠난 것이었다. 그때가 1993년.
이태리에서 요리 ‘유학’
“이탈리아∼프랑스 국경 도시인 제노바의 ‘마르코 폴로’라는 1년 코스의 요리학교로 유학을 떠났죠. 유학비용 일체는 신라호텔에서 제공해 줬습니다. 이탈리아를 선택한 것은 신라호텔에 입사하자마자 배정받은 일터가 이태리 식당이어서 다른 나라 요리보다 친숙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는 이태리 음식에 대한 일반인의 기호가 형성되기 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때 ‘한국에서도 곧 이태리 음식이 대중성을 확보할 것’으로 내다 보고 있었어요.”
그는 1년간 요리학교를 나온 뒤 6개월을 더 머물렀다. 이태리 현지 적응 차원에서였다. 1995년 귀국해 유학비용 일체를 대 주는 조건으로 걸려 있던 옵션, 즉 의무 근무기간 4년을 채운 그는 독립을 결행했다. 그의 예측대로 한국은 1997년부터 스파게티를 중심으로 이태리 음식이 막 유행하기 시작했다.
서울 압구정동에서 ‘일마레(바다라는 뜻)라는 레스토랑을 동료와 함께 개업했다. 이 곳에서의 작은 성공에 자신감을 얻은 그는 청주에 ‘일마레’ 2호점을 냈다. 프랜차이즈 점을 차리면서 아예 생면부지 청주로 내려 온 것이다. 그는 “청주 같은 중소도시에서도 이태리 정통 레스토랑이 충분히 승산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고 했다. 그런 그는 이내 스스로 창업한 ‘일마레’를 뛰쳐나왔다. 동업이 아닌 완전한 홀로서기를 해야겠다는 다짐이 그를 가만 두지 않은 것이다.
‘오븐구이 스파게티’로 특허까지 따내
“저만의 ‘리꼬네’는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1999년의 일이죠. 서울 출신인 제가 어떻게 청주를 사업 근거지로 삼게 됐느냐구요? 아 그건 아버님께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자란 곳이 바로 청주입니다. 당시 제가 독자적으로 사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아버님께서 ‘청주에서 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권고하셨어요.”
그가 어린 나이부터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가 궁금했다. “고교 3학년 때 일찌감치 집 근처인 홍익대 앞 스위스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어요. 알바 초년생 땐 청소나 주방에서 허드렛일을 하잖아요? 그런데 에릭 바우만이라는 주방장이 알바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저를 불쑥 주방으로 안내하는 겁니다. 요리 만드는 법도 보여주며 가르쳐 주기도 했죠. 그런데 그게 재미있더라고요. ‘요리만큼 창조적인 것도 없구나’ 하는 생각을 가진 게 그때부터 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대학 진학하면서 주저없이 전공을 ‘그쪽‘으로 정했죠.” 그는 강릉대 호텔조리학과를 나왔다.
박 대표는 “저를 어떻게 평가했는 지 마르코 폴로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곧바로 고급반에서 배우도록 한 것을 보면 제 실력이 엉터리는 아니었던 모양”이라며 웃었다.
서울·대전에 2·3호점 낸 CEO
유학을 통해 더욱 가다듬어진 그의 뛰어난 손 솜씨가 나중에 사업 성공의 양념이 아닌 ‘주재료’가 된 것은 물론이었다. 리꼬네 청주 본점에서 성공 가능성을 확인한 박 대표는 창업 3년만인 2002년 4월 고려대 앞(지하철 안암역 3번 출구)에 리꼬네 2호점을 낸 데 이어 지난해 5월엔 대전에 3호점을 열어 직영하는 등 눈부신 확장을 계속하고 있다.
“리꼬네 본사는 청주”라고 강조한 그가 이처럼 큰 성취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요리에 대한 식을 줄 모르는 열정과 창의적 실험정신이 있었다. 그가 자신만의 요리 제조기법에 대해 특허권까지 갖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일명 ‘오븐구이 스파게티’가 그것으로 그의 주체할 수 없는 상상력이 낳은 산물이다.
“도자기 그릇에 스파게티를 넣고 그 위에 시루떡 찌듯 얇은 밀가루 막(빵)으로 덮어씌운 뒤 오븐에서 굽는 방식입니다. 맛이요? 손님들 중 ‘요리비법에 무슨 특별한 비밀이 숨어 있는 것 아니냐’고 묻는 분들이 많다는 말씀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스파게티를 싸고 있는 밀가루 빵이 스파게티의 풍미와 향을 날려버리지 않고 온전히 보존해 주는 데 그게 바로 비결입니다.”
충북대·청주대 등지에서 강의
오븐구이 스파게티 제조기법에 대해 2002년 특허를 따낸 그에게는 30년간 독점적인 기술 사용 권리가 주어진 상태.
이런 그를 주변에서는 일찌감치 가만 두지 않은 모양이었다. 박 대표는 2000년부터 충북대 식품영양학과에 출강하고 있으며, 청주대 내에 설치된 ‘신문화연구센터’와 충북영양사협회에도 끈질긴 강의요청에 따라 바쁜 짬을 내 ‘요리 교육’에 나서고 있다.
“리꼬네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우고 싶습니다. 미국과 중국에 진출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한국 사람들 손재주는 세계가 알아주지 않습니까?” 박진용씨는 레스토랑 재벌을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