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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인터뷰
“밤(栗)을 주식으로”…자연농법을 넘어서는 근원적 방법론
[지구철학가 최성현] ‘말기 암, 지구’ 근본 치유책을 찾다
2024. 07. 24 by 김천수 기자
자연농 농부이자 번역하는 작가인 최성현씨가 자신이 깨달은 새 길에 대해 말하고 있다.   /김천수 기자

지난주 하루 귀한 오찬을 했다. 특별한 식사를 즐긴 곳은 강원도 홍천군 산골 마을의 한 농가주택이다. 이 농가의 주인장은 자연농 농부이면서 작가이자 일본어 번역가인 최성현(68)씨다. 이날 식탁에는 밥 같은 주식(主食)이 아닌 찐 감자와 도토리묵, 하나의 접시에 간장 소스로 드레싱한 푸성귀가 곁들여진 오롯한 자연식 식단이 올랐다. 아울러 보리수 주스도 마셨다. 요즘 수확철인 감자가 주식이 된 셈이다.

이날 먹은 것은 모두 그의 농원에서 거둔 것들이다. 이 같은 식단은 그의 가족에겐 특별식이 아닌 일상식이다. 그는 일반적인 농업인이 아니고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자연농법’을 30여년 전에 전파하고 앞장서 실천하고 있는 인물이다. 자연농법은 4무(無)인 무경운, 무농약, 무비료, 무제초를 실천하는 방식으로 벌레와 풀과 공존하는 지구를 살리는 친환경 농법이다.

최씨는 현재의 한국학중앙연구원인 정신문화연구원에 다니던 스물여덟 살에 ‘자연농법’이란 책을 접했다. 그는 “다른 길이 전혀 보이지 않을 만큼 한눈에 크게 반해 1988년에 귀농, 자연농법의 세계에 뛰어들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잘나가는 공공기관 직장을 버리고 전기가 들어가지 않는 제천시 백운면 깊은 산속에 터를 잡고 20년 가까이 지냈다. 철저히 자연농법으로 자급자족하는 산속 생활이었지만 관심있는 사람들이 늘상 찾아드는 곳이 됐다. 하지만 지역의 개발사업에 밀려 고향인 지금의 사는 곳으로 이주하게 됐다.

인류의 원죄
지혜의 농업

그는 자연농법 전도사가 되어 ‘자연농법’, ‘자연농 교실’ 등을 번역한 스테디셀러 번역작가가 됐다. 강의와 ‘자연농 교실’ 등을 통해 자연농의 철학과 실제를 소개하고 안내까지 하고 있다. 자신의 논밭에서 코로나 사태 이전까지 수년간 ‘지구학교’라는 이름으로 1년 과정의 자연농 배움터를 직접 열기도 했다. 최근에는 자연에서 배우며 깨달은 것을 담은 에세이집 ‘무정설법-자연이 쓴 경전을 읽다’를 펴내기도 했다. 이 책은 한 대안학교의 농업 교재가 됐다.

최성현씨 부부가 자연농법으로 짓는 300평의 밭에서 땅콩을 돌보고 있다.   /김천수 기자

그런 그가 평생의 숙제인 <‘말기 암 환자, 지구’를 살릴 치유 방법>을 몇년 전 ‘밤(栗)’에서 찾았다고 했다. 밤이 자연농법을 포함한 모든 대안농법을 넘어서 지구를 살릴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친환경 농법 중에서도 가장 지구에 이로운 자연농법조차도 논밭이 필요해 숲 만큼은 못한 한계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집 둘레에 밤나무를 심으면 열 그루쯤 심을 수 있는데, 그것으로 서너 식구 먹을 밤이 나온다”고 했다. 그는 “밤나무 한 그루에서 20㎏쯤 나온다고 보면, 열 그루면 200㎏, 3~4명이 먹을 분량이 된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그는 “9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 알밤이 떨어지는데, 5년 가까이 그 시기 두 달 가량 밥 대신 밤을 세 끼 모두 주식으로 먹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일 많은 농번기 때인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영향적인 면을 강조하고 “오는 가을부터는 일년 내내 밤을 주식으로 삼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들 식구는 고등학생 자녀 한 명을 포함해 3명이다. 최씨 가족은 부모와 함께 마을 안에 살다가 뒷산인 이곳으로 터를 옮겼다. 주변에서 난 나무와 흙으로 귀틀집을 짓고 2020년 1월부터 살고 있다.

최씨의 부인은 “여기 오면서 430평 논을 50평으로 줄였다”고 했다. 주식을 쌀에서 벗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연농으로 한 평에 1kg쯤 쌀이 나온다고 보면 50kg밖에 나오지 않지만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는 “감자, 옥수수, 고구마 등과 밤이 있어 굳이 밥을 안 먹어도 된다”며 “특히 밤은 맛도 좋고, 무엇보다 위가 약한 내게는 소화가 잘 돼 좋다”고 말했다. “단맛이 있어 물리지 않을까 했지만, 반찬하고 먹기 때문인지 전혀 문제가 없다”며 웃었다.

인류의 새 길
숲이 답이다

최씨 부부는 “오는 9월부터 주곡을 밤으로 완전히 전환하고, 사람들에게 자연농법과 함께 밤을 주식으로 삼는 새로운 길을 안내하고 싶다”고 했다. 최씨는 밤나무가 이로움이 많은 나무라고 했다. “절로 잘 자라고 2대 3대, 대를 이을 만큼 여러 해를 살고 줍기만 해도 될 만큼 일이 없다는 것이 좋다”고 했다.

최성현씨 가족의 밤(栗)을 주식으로 한 식단 차림 모습. 찐 밤, 도토리 묵, 야채 버무림이 보인다. 사진은 지난해 가을 촬영본이다.

아울러 “밤나무 가지가 지붕 그늘막 역할을 해 여름을 시원하게 날 수 있고, 반대로 겨울에는 잎이 떨어져 지붕에 햇살이 비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 장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무엇보다 밤을 주식으로 삼으면 그만큼 지구에 숲이 늘어나는 것”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최씨는 천지(天地)가 어버이고 동식물 등을 천지의 자식으로 보면서 사람도 그중의 하나로 여기고 있다. 모두가 형제라고 보고 있다. “농사를 (우리가) 너무나 어려서부터 봐 왔기에 당연시하지만 농사는 인류만이 짓는다”며 “지구나 다른 생물의 자리에서 보면 골칫덩어리 그 자체다”라고 바라봤다.

그는 인류가 농업에 의해 에덴 그 자체인 지구를 파괴 훼손하면서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는 “원죄란 농업을 시작한 지혜다”라고 잘라 말한다. 대학 때부터 종교와 철학에 관심을 갖고, 모든 신앙에 열린 자세를 취하는 그는 자연주의자이자 지구철학가라 할만하다. 숲과 지구를 살리기 위해 ‘밤’에 주목하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더 늘어날 지 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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