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책은 사은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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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책은 사은품이 되었다
  • 이병주 (주)더밸류컨설팅 대표
  • 승인 2022.01.05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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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의 디지털화가 비즈니스 목적 바꿔

도대체 책을 어떻게 내야 돼요?” 작년에 친한 출판사 대표가 이렇게 물어서 깜짝 놀랐다. 그 질문을 한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출판 마케터였기 때문이다. 100만부 이상 베스트셀러도 많이 팔았고, 대형 출판사의 전문경영인을 거쳐, 자신의 출판사에서 수백 권 책을 냈다. 출판계의 살아있는 전설인데, 요즘 책이 너무 안 팔린다는 거다. 특히 그가 전문이었던 교양·실용서적의 판매가 저조한데,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사람들은 정보와 지식을 얻기 위해서 책보다 유튜브나 전문블로그를 본다.

출판이 과거와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펴보기 위해, 2020년 베스트셀러 목록을 살펴봤다. SNS와 관련된 책이 많아졌다. 2위를 한 돈의 속성’, 6위의 존 리의 부자되기 습관모두 유튜브의 인기 강연을 모아놓은 것이고, 5위에 오른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제로 편역시 팟캐스트에 나온 걸 정리한 책이다. 8위를 한 흔한남매3’220만명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 흔한남매가 참여한 책이고, 10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역시 SNS에서 책 읽어주는 남자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분이 쓴 것이다.

베스트셀러 10권 중에 절반을 SNS가 만들었다. 이런 책들은 예전과 다른 방식으로 제작됐고 기능도 다르다. 과거, 작가가 만드는 콘텐츠의 중심은 책이었다. 오랜 기간 심혈을 기울여서 책을 만들고, 그걸 기반으로 활동했다. 책이 콘텐츠 서비스의 시작이고 중심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유튜버가 내는 책은 반대다. 유튜버는 평소 구독자에게 쉬지 않고 콘텐츠를 만들어 제공한다. 그러다 일정 기간 유튜브를 통해 서비스해왔던 콘텐츠를 정리해서 책으로 낸다. 새로운 건 없고 유튜브에 나온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독자들은 이를 알고도 책을 산다. 팬심으로 책을 사는 것이다. 여기서는 유튜브를 통한 서비스가 메인이고, 책은 사은품이랑 비슷하다. 혹은 BTS가 내는 화보집처럼 기념품이 된 것이다.

 

출판업과 음악산업의 게임 룰 변화

출판을 지배하는 게임 룰이 완전히 바뀌었다. 왜냐하면 저자가 독자를 만날 수 있는 채널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목적은 지식이건 감동이건 콘텐츠로 만족을 얻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로 저자가 독자를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상황에서, 반드시 책을 통해서 찾아갈 필요가 없게 됐다. 과거 책이 지식 전달의 주요 수단이 된 이유는 저자의 콘텐츠를 독자에게 전달할 채널이 이것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휴대전화 하나로 소비자를 만날 수 있는 디지털 세상에서, 콘텐츠 생산자는 수시로 소비자에게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책은 그 많은 서비스 중 하나일 뿐이다.

이런 식으로 게임 룰이 바뀌는 일은 음악분야에서 먼저 나타났다. 과거 가수가 되려면 기획사에서 오랜 훈련을 거친 후에 음반을 내야만 데뷔가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음반 없이 인기가수가 될 수도 있다. 송가인이 그랬다. 송가인은 예능 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트롯의 인기도 있었지만 유튜브에서 영상이 인기를 끌어 유명해졌다. 책과 마찬가지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가수가 음반 시장이 아니더라도 유튜브처럼 독자를 만날 수 있는 채널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디지털화에 따른 게임 룰 변화가 가장 먼저 시작된 곳이 책, 미디어, 음악, 영화 같은 콘텐츠 분야다. 디지털로 제작해서 다양한 채널에서 손쉬운 유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과거 서점에서만 독자를 만날 수 있었던 저자는 책에 혼을 담아야 했고, 방송국 말고는 노래를 들려줄 데가 없었던 가수는 음반에 운명을 걸어야 했다. 지금, 저자는 책 판매가 아니라 자신의 콘텐츠를 전달하는 게 목적이고, 가수는 음반 판매가 아니라 자기 노래로 즐거움을 주는 게 궁극적 목적임을 알았다. 콘텐츠 판매가 아니라 콘텐츠를 통해 만족을 주는 게 목적이 됐다.

이렇듯 디지털화가 비즈니스의 목적을 뒤바꿔 놨다. 이제 경영학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한다. 과거 경영은 가치 있는 제품을 싸게 만들어서 고객에게 비싸게 파는 것이었다. 생산활동과 판매활동이 분리돼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제품을 매개로 고객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가면서 고객이 제품을 사용하면서 만족을 극대화하도록 만드는 게 목적이 됐다. 이제는 제품 판매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가령 과거에는 자동차를 멋지게 만들어 팔고 나면 끝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자동차를 팔고 난 후에도 지속적으로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해서 새로운 기술을 고객에게 제공해줘야 한다. 이게 테슬라가 실제로 하고 있는 서비스다. 요컨대, 코로나 이후 새로운 게임 룰인 넥스트 노멀의 핵심 원리는 비즈니스가 판매에서 관계 패러다임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얼마나 더 많이 파느냐보다 우리 제품을 얼마나 잘 쓰도록 하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결국 대부분의 기업들이 서비스업체가 된다는 얘기다.

이병주 (주)더밸류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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