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데로 임한 영화배우 류승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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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데로 임한 영화배우 류승룡
  • 고재열 여행감독
  • 승인 2022.01.19 22: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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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과 함께 갔던 전남 꼬막섬 장도와 진도군 관매도

스스로 여행감독을 자처하게 만든 데에는 배우 류승룡 씨의 영향이 컸다. 2015년 겨울 어느 날 문자가 한 통 왔다. 자신을 배우 류승룡이라고 밝 힌 그는 내가 하는 여행 프로젝트를 유 심히 보고 있다며 한번 만나보고 싶다 고 했다. 그전까지 일면식도 없는 사이 였고, 연예인이 먼저 보자고 해서 그 이 유가 궁금했다.

얼마 뒤 이태원의 한 차 전문점에서 류 배우를 만났다. 그는 내가 강제윤 섬 연구소 소장과 함께 진행하는 청년 섬 캠프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함께 가서 청년들의 꿈에 대해 이야기도 들어보 고 기회가 되면 후원도 하고 싶다고 했 다. 대배우가 여행으로 힐링을 하고 싶 다며 스스로 찾아오고, 와서 좋은 여행 친구가 되어주고 그리고 내 여행에 의 미를 부여해 주어서 덕분에 여행감독 을 자처할 수 있게 되었다.

 

왼쪽부터 고재열, 류승룡 씨
왼쪽부터 고재열, 류승룡 씨

 

류승룡 씨가 여행을 하게 된 동기

 

나중에 들어보니 그의 마음을 붙든 것은 페이스북에 올린 한 장의 사진이 었다. 전남 진도군 관매도의 한 빈집을 찍은 것인데, 마을에서 외따로 떨어진 그 집을 청년들이 멍 때릴수 있는 게 스트하우스로 만들어주고 싶다며 소개 했었다. 부근에 사구 언덕도 있고 캠핑 장으로 쓸 만한 빈터도 있어서 청년들 의 아지트로 탐나는 곳이었다. 그 꿈을 함께 구현해 주고 싶다고 했다.

류 배우가 나에게 연락했을 때는 그 의 필모그래피가 조금씩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2012<내 아 내의 모든 것> <광해, 왕이 된 남자> <7 번 방의 선물>로 최고의 한 해를 보낸 그는 2014<명량> 이후 이렇다 할 흥 행작을 내지 못했다. <손님> <도리화가 > <염력> <7년의 밤> 등에서 주연을 했 지만 작품성과 흥행성, 어느 쪽에서도 이전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천 만 배우라는 수식어도 어느 순간 사라 졌다.

나중에 그가 그때 왜 그렇게 나를 애 타게 찾았는지 이유를 들었다. 연예인 의 박제된 삶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 다고 했다. 자신은 <난타> 공연을 하며 세계를 떠돌아다니면서 에너지를 발산 시키던 자유로운 영혼이었는데, 전문 매니지먼트를 받으며 온실 속 화초처 럼 있으니까 너무 갑갑했다며 대자연 속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자유롭게 숨쉬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 그와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의 섬과 산 그리고 코카서스(캅카스)의 언 덕과 캄차카의 빙하 위를 두루 여행했 다. 그 기간 동안 중년 배우가 어떻게 자신의 인생에 쉼표를 찍는지, 그리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 이 진짜 원하는 것을 찾아 치유의 시간 을 보내는지 관찰할 수 있었다. ‘어떤 중년이든 저런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 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른쪽 두 번째가 류승룡 씨
오른쪽 두 번째가 류승룡 씨

 

 

청년들과 함께 해양 쓰레기도 치워

 

류 배우와 처음 여행한 곳은 꼬막섬 으로 알려진 전남 보성군의 장도였다. 강제윤 섬연구소 소장과 섬 이곳저곳 을 답사한 뒤 저녁에는 마을 주민들과 식사를 했다. 그는 섬 캠프에 참여한 청 년들은 물론 마을 주민과도 스스럼없 이 어울렸다. 군중 속에 아무런 이질감 없이 섞여서 마치 그들의 일부인 것처 럼 행동했다. 일손이 필요하면 가만히 있지 않고 거들었다.

숙소가 부족해 해변에서 함께 캠핑 을 했는데 싸구려 팝업 텐트에서도 불 편함 없이 잠을 청했다. 도울 일을 찾아 두리번거리다 모닥불을 피울 나무를 주워 왔는데 이때부터 캠핑 때마다 그 의 역할은 나무꾼이었다. 캠핑장에 도 착하면 바람처럼 사라져 나무를 한 짐 씩 주워 왔다. 나무를 하거나 재료를 다 듬는 등 늘 손발을 움직이며 다른 사람 을 도왔다.

전남 진도군의 관매도에 갔을 때는 청년들과 함께 해양 쓰레기를 치우기 도 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연예인 특 유의 자기 중심성이 없다는 점이었다. 사람들이 자신을 주목해주고 일이 자 신을 중심으로 진행되기를 바라지 않 았다. 무리의 중심이 아니라 늘 주변에 있다가 자신이 할 일을 찾아 조용히 도 왔다.

고재열 여행감독
고재열 여행감독

이유가 있었다. 마흔이 될 때까지 그 는 전형적인 무명 배우의 삶을 살았다. 결혼 생활은 옥탑방에서 시작했다. 벌 이가 넉넉하지 않아 다른 일도 많이 했 다. 언젠가 여름에 낙동강 근처의 아스 팔트 공사 현장을 지나는데 자신도 그 일을 해보았다고 했다. 아스팔트는 이 렇게 날이 더울 때 깔아야 균질하게 녹 아들기 때문에 한여름에 주로 작업한 다고 말했다.

함께 했던 여행이 도움이 되었는지, 2019년 그는 영화 <극한직업>과 넷플 릭스 드라마 <킹덤>을 통해 다시 정상 의 위치에 복귀했다. 이후 평정심을 찾 은 그는 목공과 가죽 공예 등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집중했다. 중년에 여행을 통해 인간에 대한 호기 심을 회복하고 자기 자신을 재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류 배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여행감독의 정체성을 갖도록 만들어 준 그에게 감사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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