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늑대가 사는 이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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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늑대가 사는 이 곳
  • 홍성현 청주동물원 수의사
  • 승인 2022.03.30 11: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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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동물원 늑대방사장 완공 눈앞
늑대들이 뛰어노는 장면도 볼 수 있어

꽃은 하루에 30km를 달린다고 한다. 어제 30km 남쪽에서 핀 꽃이 오늘은 우리 집 앞 화단에도 핀다는 시 같은 이야기다. 동물원은 공원으로 조성되기 때문에 예쁜 꽃들을 보며 기분 좋게 출근할 수 있다. 동물원 입구와 광장 부근에는 꽃을 무더기로 심는 화단도 있고 관람로 곳곳에 알록달록한 꽃들이 피면 시민들의 눈길에 향을 더해주고 있다.

눈치가 빠른 꼬맹이들은 알아차리겠지만 꽃들은 오롯이 사람들을 위해 있고 동물들의 생활공간에는 의도적으로 꽃을 심는 일은 없다. 히말라야타알이나 무플론 같은 초식 동물의 경우 땅에서 자라는 풀과 잎을 연할 때 모두 먹어버려서 꽃이 자랄 틈이 없다. 육식동물은 방사장 내에 종종 야생초가 자라 꽃을 피우는 경우도 있다. 필자가 정말 좋아하는 야생초는 붉은여우사에서 자라는 애기똥풀 꽃이다. 우리네 꽃다운 여우 녀석들을 더 돋보이게 해준다.

청주동물원엔 갯과 동물이 몇 있다. 애기똥풀과 함께 사는 붉은여우 외에도 한국늑대가 살고 있다. 2022년 3월 현재 청주동물원에는 한국늑대 집이 없다. 늑대들의 습성에 맞춰 설계한 늑대방사장의 완성이 코앞이라 모두 기대하고 있지만, 당장은 다목적으로 만들어진 방사장에 임시로 살고 있다. 지금 임시로 지내고 있는 이 방사장에 늑대가 살기 전엔 하이에나도 살았고 삵도 살았다. 다양한 동물을 수용할 수 있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구조가 단조롭고 유연하지 못한 방사장이다.

단조로운 공간에서 오는 무료한 피로를 방지하기 위해 늑대들이 쓸 가구를 몇 가지 넣어주었지만, 이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청주동물원 일원들은 최대한 자연의 습성대로 지낼 수 있도록 설계된 늑대방사장이 완공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청주동물원에 살고 있는 우리나라 늑대
청주동물원에 살고 있는 우리나라 늑대

 

늑대방사장, 가장 넓은 공간 활용

예전 야생조수관람장 시절에는 두꺼운 벽과 지붕, 굵은 철창으로 만든 튼튼한 건물에 동물을 탈출하지 못하게 입식하여 관람객들에게 보여줬다. 시간이 지나 이 공간을 쓰던 동물이 사망하면 같은 공간 안에 또 다른 동물을 입식하고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동물을 보여줬다. 더 많은 동물을 보여주기 위해 한 공간 안에 너무 많은 동물을 사육하기도 하고 벽을 세워 두 칸으로 나누고 두 가지 동물을 보여주기도 했다.

좁은 공간은 스트레스를 유발하여 투쟁과 질병으로 많은 동물이 고생했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다행히도 동물이 좁고 단조로운 공간에 있는 상황을 안타까워하는 시민이 많아져서 조금이라도 좋은 공간을 동물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긴다. 자유를 주지 못하는 동물들에게 사람들이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아야 한다.

새로 짓는 늑대방사장은 청주동물원에서 가장 넓은 공간을 활용했다. 예전에 4~5칸으로 나눠 다양한 초식 동물들을 지내게 했던 장소다. 하늘에서 내리는 햇볕과 비를 온전히 몸으로 받을 수 있도록 지붕은 덮지 않았다. 땅 파기를 좋아하는 늑대들의 습성이 존중받을 수 있도록 부드러운 흙으로 채웠다. 지붕이 없는 울타리를 늑대가 점프하면 뛰어넘지 않을까? 땅을 파다 보면 늑대가 방사장에서 관람로를 향해 나오는 굴을 파서 탈출할까? 늑대가 뛰어넘을 수 없는 높이로 울타리를 올리고 땅속으로도 깊이 설치하기로 결정해 지붕을 없앨 수 있었다. 지붕의 철망 모양으로 쬐는 햇볕이 아닌 온전한 햇볕에 늑대들이 일광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관람객들도 지붕 구조물에 가린 늑대를 보지 않고 온전한 늑대를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살릴 수 있다. 늑대방사장 전망대에서는 늑대들이 바위에 올라 늘어지게 일광욕하는 장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방사장 중앙에 흐르는 실개천에서 늑대들이 목욕하거나 겨울에는 얼음을 가지고 노는 장면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늑대들이 청주동물원 최고 면적의 방사장을 만끽하는 것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수의사의 걱정
 

붉은여우 방사장
붉은여우 방사장

사실 이런 놀이는 부상의 위험을 증가시키는 요인이기도 하다. 필자는 수의사니까 사실 조심스럽다. 넓은 공간을 달리다가 발이라도 헛디디면, 땅을 파다가 흙에 사는 기생충에 감염이라도 되면, 또 나무에서 독성이 있는 열매가 열리면, 걱정도 팔자라는 옛 성현들의 가르침이 있었지만 걱정을 해야 하는 직업을 갖게 된 이상 필자는 적극적으로 걱정할 것이다.

사육사들은 공사 중인 현장에 장화 신고 들어가 늑대의 입장이 되어 달려보고 위험한 시설이 있진 않은지, 바위가 울타리와 너무 가까워 높이뛰기 발판이 될 우려는 없는지 조사한다. 수의사들은 늑대 혹은 갯과 동물에 독성을 갖는다고 알려진 화학물질을 만드는 열매는 무엇이 있으며, 어떤 나무에서 자라는지 조사하고 식재 목록을 점검한다. 그리고 우리는 공무원들이니까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복잡한 행정절차를 꼼꼼하게 추진하는 직원도 진땀을 뺀다. 그러다가 봄이 또 온 것이다. 개나리와 진달래가 남쪽으로부터 하루 30km 속도로 달려서 올라오고 있다.

홍성현 청주동물원 수의사 

 

동물원은 동물들에게서 서식지 선택의 자유를 빼앗아 시민들에게 관찰의 즐거움을 제공한다. 학자들은 동물 삶의 질을 평가하는 지표 중 하나로 선택의 자율을 강조한다. 동물원 친구들에게 서식지 선택의 자유를 주지 못하는 만큼 흥미로운 공간을 만들어주고 균형 잡힌 식단을 제공하는 등 다른 여건의 질을 높여야 한다. 동물원 친구들은 평소 보기 힘든 동물들의 형태와 행동을 보여주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야생 친구들을 대변해 시민들을 만나 서식지와 자연보호의 중요성을 한 번 더 속삭인다.
홍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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