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수도승 닮은 대머리 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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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수도승 닮은 대머리 수리
  • 홍성현 청주동물원 수의사
  • 승인 2022.06.08 12: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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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동물원에 독수리 7형제 살고 있어, 부리 구부러진 ‘하나’ 보살피는 중

독수리 하면 전투기 같은 유선형 몸매에 예리한 눈빛의 매력 넘치는 멋진 날짐승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방금 상상한 형체의 주인공은 사실 검독수리나 흰꼬리수리에 가까운 모습이다. 많은 사람들이 독수리라는 낱말을 오해하는 까닭 때문인지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독수리의 부수적인 의미로 독수리, 참수리, 검독수리 따위의 수릿과 새들을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인정하며 유선형 몸매의 예리한 눈빛 친구들도 여기에 포함시키고 있긴 하다.

 

 

매력넘치는 흰꼬리수리
매력넘치는 흰꼬리수리

 

악당같은 독수리

 

무료감 덜어주기 위해 많은 연구

엄밀히 말해 독수리라는 동물은 다른 수리에 비해 덩치가 월등히 크며 어두운색 오버사이즈 코트를 입은 구부정한 자세의 악당 같은 모습에 더 가깝다. 다른 부위에 비해 머리 부위 깃털이 극단적으로 빈약해서 독수리는 마치 대머리와 같은 느낌을 준다. 이 때문에 독수리는 한자어 대머리 독(禿)에 여러 맹금류를 이르는 순수 한국말 수리를 합성한 대머리 수리라는 뜻의 이름이다. 라틴어 학명도 Aegypius monachus로 수도승이라는 뜻의 이름인데 서양권에서도 대머리라고 느꼈던 모양이다. 하지만 망원경 등을 사용해 독수리의 얼굴을 가까이서 보면 따뜻한 눈망울에 가득한 순수 야생의 호기심을 느낄 수 있다.

청주동물원에는 7마리의 독수리가 살고 있다. 예전에는 40m2 면적의 좁은 공간에 살다가 여러 관계자들의 노력을 통해 지금은 280m2 정도의 공간을 제공해 줄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동물원은 새들이 지내기에 적합한 환경은 아니다. 독수리의 경우 연간 4만km2에 달하는 면적을 생활 터전으로 삼는 신체조건을 갖추고 있다. 계절에 따라 많게는 하루 110km를 움직이는 동물인데 넓어진 방사장조차 한쪽 길이가 20m 정도인 공간이다. 현실적으로 독수리가 자연적인 습관을 영위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건 불가능하다. 사람으로 치면 침실 같은 방 한 칸에서 생활을 이어가는 격이다.

그렇다고 7마리 모두가 좁은 공간에 갇힌 채 수십 km 씩 날아다니던 자유로웠던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는 상황은 아니다. 동물원의 동물들은 동물원에서 태어나 야생을 겪어보지 못한 친구들도 있고 야생에서 살다가 부상을 당해 냉혹한 자연에 맞설 수 없어진 친구들도 있다.

이렇게 야생에서 생존이 어려운 친구들은 동물원에서 책임지고 보살피며 불편함을 해소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무료감 피로를 덜어주기 위해 다양한 지형을 조성해 주는 가구를 만들어주기도 하고 먹이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사냥에서 느끼는 것과 비슷한 쾌감을 느낄 수 있도록 퍼즐 같은 장치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청주동물원의 독수리 7형제 중 2마리는 야생동물구조센터로부터 온 친구들이다. 그중 한 마리는 부리가 어긋나있다. 이 친구는 정상적인 먹이 활동이 원활하지 못하여 자연에서의 생존이 불투명했기 때문에 영구계류(방사 불가능한 개체를 영구적으로 보호하는 조치)가 결정된 개체였다.

아픈 동물에게 동물원은 최선의 환경

일반적인 독수리에게 완벽한 환경은 아니지만 동물원은 이 친구에게 최선의 환경이다. 동물원은 이렇게 최선의 환경을 연구, 제공하면서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 친구는 또 반대로 동물원을 방문하는 방문객들이 보기 힘든 야생의 독수리는 어떤 모습이며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려주는 대변인이 된다. 청주동물원을 방문하게 되면 부리는 구부러졌지만 자신감 있게 살아가는 독수리 ‘하나’를 만나보고 가길 추천한다.

그 외에도 자연으로 되돌아가지 못하는 친구들이 여럿 있다. 심한 날개 부상으로 온 수리부엉이, 어릴 때 구조되어 천적에 대한 경각심을 기르지 못한 오소리, 그리고 날개가 한쪽 없는 황조롱이도 한 마리 있다. 이 황조롱이 친구가 올 때 청주동물원에는 이미 황조롱이가 살고 있었다. 이 황조롱이는 방사장 내에서 이미 비행이 가능한 상태였고 훈련을 통해 자연 방사가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자연으로 돌아갔다. 자연으로 돌아간 황조롱이는 오래 생존하며 번식을 통해 유전자 다양성 확장에 기여할 것이다.

유전자 다양성은 같은 품종 내에 다양한 형질로 이어지고 개체의 형질이 다양할수록 그 품종의 존속 가능성이 높아진다. 유전자 다양성이 부족한 생물군은 환경의 변화나 질병이 나타났을 때 한순간에 무너질 우려가 있다. 동물원에서 사육하던 동물들이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면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홍성현 청주동물원 수의사
홍성현 청주동물원 수의사

독수리는 겨울철에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다. 흡사 사람 정도의 위압감을 주는 덩치를 자랑하는 이 시커먼 새가 우리 주변에 살 것 같지 않지만, 놀랍게도 수 천 마리의 독수리가 매년 한국을 방문하고 있다. 실제로 운이 좋으면 헐벗은 겨울의 논에서 쉬고 있다가 멋쩍게 눈 마주치는 독수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독수리는 몽골에서 겨울마다 날아오는 철새지만 위치 추적 연구를 통해 알려진 바로 몽골의 독수리는 성숙할수록 이주 반경이 줄어들고 성조가 되면 점차 번식을 위해 겨울철에도 같은 지역에 자리 잡고 살게 된다고 한다. 어릴 때는 철새로, 어른이 된 후로는 텃새로 지내는 것이다. 따라서 겨울철에만 한국에 나타나는 독수리 친구들은 대부분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는 어린이들이라는 얘기다. 눈망울 가득한 호기심은 사람의 착각이 아니고 세상 사는 법을 배우는 그들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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