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증거있는 ‘모욕’증거없는 ‘성희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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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증거있는 ‘모욕’증거없는 ‘성희롱’
  • 충청리뷰
  • 승인 2002.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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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암휴게소 주부사원, 성희롱 항의하다 모욕죄로 구속
지역노동·여성단체 반발… “즉각 석방·진상규명” 요구

성회롱 피해를 주장하던 여성노동자가 가해자로 지목한 직장상사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등으로 피소돼 전격 구속되는 사건이 벌어져 지역노동계가 반발하고 있다. 청주지검은 지난달 28일 경부고속도로 죽암휴게소에 근무하던 여성노동자 김모씨(51)를 명예훼손·모욕·협박죄로 구속수감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5월 자신을 성회롱했다며 직장상사인 A씨(36)에게 수차례에 걸쳐 공개적인 모욕을 주고 명예를 훼손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지역노동단체와 여성인권단체에서는 “이번 사건의 본질은 김씨와 다른 여성노동자들이 상습적으로 A씨로부터 성희롱 피해를 당한 것이다. 김씨의 반발부분만을 문제삼아 구속까지 시킨 것은 본질을 왜곡시킨 것”이라고 반박했다. 직장내 성희롱 사건을 둘러싼 사건의 경위에 대해 알아본다.
구속된 김씨는 지난 94년 계룡산업(주)가 운영하는 경부고속도로 죽암휴게소(하) 조리실 직원으로 취업했다. 주부사원인 김씨는 불의의 교통사로로 노동력을 상실한 남편과 두 자녀, 시어머니까지 부양해야 하는 실질적인 가장이었다. 김씨가 자신이 성희롱 피해를 뚜렷하게 자각한 계기는 지난해 노사분규에서 비롯됐다. 작년 6월 회사측의 인사조치에 반발한 노조가 파업에 돌입했고 이때 현장 지원을 나온 상급단체 관계자가 여성노동자를 대상으로 성희롱 교육을 실시했던 것. 김씨는 A씨로부터 상습적으로 당한 신체적 접촉이 ‘의도된’ 성희롱이라고 판단했고 다른 피해동료들과 함께 노조에 사실을 알리게 됐다.
김씨등이 주장한 성희롱 사례를 보면 매장에서 일을 하는 주부사원을 상대로 A씨는 상습적으로 가슴, 엉덩이 부위를 만졌고 이에 항의하면 ‘장난인데, 왜그래’하는 식으로 얼버무렸다는 것. 심지어 ‘가슴도 쬐금하네’라고 놀리기도 했고 ‘젖꼭지를 잡아 당기기도 했다’는 것이 여성노동자들의 주장이다.
노사분규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노조는 여성조합원 4명의 성희롱 피해사실에 대해 청주노동사무소에 고소했다. 조사가 진행되는 중에 노사분규가 전격 타결됐고 성희롱 건에 대해서도 노동사무소에 취하서를 냈다는 것. 결국 작년 11월 청주노동사무소는 ‘피해자의 진술만으로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리했다. 회사측도 자체조사 결과 ‘뚜렷한 증거가 없다’며 A씨를 싸고 돌았고 피해자 김씨등은 여성단체를 찾아가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지역 여성단체가 성희롱 사건에 등장하게 되자 부담을 느낀 회사측은 지난 1월 A씨를 같은 계열사인 덕유산휴게소로 전직조치했다. 하지만 회사측은 정당한 징계절차를 밟지 않은 상태였고 A씨가 충북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전직 구제신청을 제기해 결국 ‘절차상의 하자’를 들어 지방노동위는 A씨의 원직복직 명령을 내렸다. 결국 지난 5월 A씨는 죽암휴게소로 돌아와 김씨등 성희롱 피해를 주장해온 주부사원들과 함께 근무하게 됐다.
성희롱 문제로 노동사무소, 여성단체를 거치며 정신적 고통을 받아온 김씨는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안정을 되찾다 A씨가 다시 원직복직되자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게 됐다. 이희철노조위원장은 “A씨가 사과도 하지않고 성희롱 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있었기 때문에 김씨등 여성조합원들의 감정이 최악이었다. 그런 사람이 아무 일 없었던 듯 다시 원직복직됐으니 그 심정이 어떻겠는가? 김씨는 너무 신경을 쓰다보니 안압이 터지는 상황도 벌어졌었다”고 말했다.
감정을 추스리지 못한 김씨는 회사에서 A씨를 마주칠 때마다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느냐,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시 나타났느냐’는 등 욕설과 핀잔을 주기 시작했다는 것. 결국 출근한 지 며칠이 지난 A씨는 몸에 소형녹음기를 숨기고 김씨의 얘기를 모두 녹음하기 시작했다. 보름동안 녹음을 마친 A씨는 이를 증거자료로 삼아 검찰에 명예훼손 및 모욕죄로 고소장을 냈다.
고소를 제기한 A씨는 “김씨등이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는 바람에 덕유산휴게소로 인사조치된 것도 억울한데 복직한 이튿날부터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있으나 없으나 아랑곳없이 별별 욕을 다해가며 모욕을 줬다. 도저히 직장생활을 같이 할 수도 없고 인간적으로 참을 수 없어서 법에 호소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사건을 조사한 청주서부서는 “고소된 부분에 대해서만 사실여부를 조사했다. 만약 김씨의 성희롱 주장이 맞고소됐다면 당연히 함께 조사했을 것이다. 거듭된 욕설·모욕적인 언행등 녹취된 내용에 대해 목격자 진술도 받았고 피고소인인 김씨도 사실을 모두 시인했다. 검찰의 신병지휘를 받은 결과 구속영장 신청으로 내려온 것이다. 우리는 고소내용 이외의 전후과정까지 조사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에대해 청주여성민우회 변지숙회장은 “이번 사건은 여성인권에 대한 사법기관의 중대한 침해이자 우리 사회의 여성인권에 대한 무지와 낙후성의 대표적 사례다. 성희롱 피해여성이 한명이 아닌 4명인데도 불구하고 청주노동사무소가 ‘진술만으로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무혐의 처리한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도대체 누가 진정한 가해자이며 누가 피해자인가? 성희롱의 이중피해자인 김씨를 즉각 석방하고 진상규명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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