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대,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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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대, 출발
  • 이기인 기자
  • 승인 2024.08.21 1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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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이모’ 100명, 157가정에서 돌본다
국내 고령자 일자리 위협 지적도
필리핀인 가사관리사가 지난 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필리핀인 가사관리사가 지난 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지난 6일 오전 7시.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큰 짐가방을 앞세운 이들의 표정에는 얼마간의 설렘이 묻었다. 4시간 가량 이어진 비행에 대한 피곤함은 보이지 않았다. 이들이 입은 로얄블루 색 단체복은 필리핀을 상징하는 색 중 하나로 필리핀 외국인고용관리시스템 측에서 제작했다.

이들은 서울시와 고용노동부가 추진하는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이들이다. 정부가 주도하는 4주간의 특화교육(총 160시간)을 받은 뒤 9월부터 6개월간 서울시 가정에서 아동 돌봄과 가사서비스를 할 예정이다. 이들이 중점적으로 받는 교육은 △기초생활법률 △아이돌봄·가사관리 직무 △한국어 및 생활문화 △성희롱예방 등이다.

이들은 앞서 필리핀 직업훈련원에서도 780시간 이상의 교육을 받아 정부인증 자격증을 취득했다. 대부분 4년제 학위 보유자로 한국어 구사가 가능한 고급인력이다. 이들은 현재 강남구 역삼역 인근 1‧2인실 공동숙소에 머물며, 교육장이 있는 경기 용인시를 오가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14일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사업 서비스를 신청한 157개 가정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3주간의 모집에 총 731건의 신청이 접수됐다. 경쟁률은 약 5대 1 정도. 선정된 10가정 중 6가정은 맞벌이 다자녀 가정이며, 10가정 중 4가정은 동남권(서초·강남·송파·강동)이다.

지역별로는 동남권(서초·강남·송파·강동)이 59가정(37.6%)으로 가장 많다. 이어 도심권(종로·중구·용산·성동·광진·서대문·동대문) 50가정(31.8%), 서북권(은평·마포·양천·강서) 21가정(13.4%), 서남권(구로·영등포·동작·관악) 19가정(12.1%), 동북권(중랑·성북·노원·강북) 8가정(5.1%) 순이다.

첫 외국인 ‘시범사업’

유형별로는 맞벌이 다자녀 가정이 97가정(61.8%)으로 가장 많다. 이어 한자녀 39가정(24.8%), 임신부 14가정(8.9%), 한부모 7가정(4.5%) 순이다. 가정별로는 2자녀 이상 다자녀가 104가정(66.3%), 1자녀 50가정(31.8%), 자녀가 없는 임산부 3가정(1.9%)이다. 자녀의 연령대는 7세 이하가 145가정(92.4%)이다.

이용시간은 4시간이 89가정으로 절반 이상인 56.7%에 달했다. 이어 8시간 60가정(38.2%), 6시간 8가정(5.1%) 순이다. 이용기간은 6개월 이용이 143가정(91.1%), 3~5개월 이용 12가정(7.6%), 1~2개월 이용 2가정(1.2%) 등으로 나타났다. 주당 이용일 수는 5회 이상 125가정(79.5%)으로 가장 많았고, 1~2회 17가정(10.8%), 3~4회 15가정(9.6%) 순이다.

외국인 가사관리사에게는 시간당 최저임금(9860원)이 적용된다. 하루 8시간 기준 월 238만원. 이는 50년 전부터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도입한 홍콩과 싱가포르와 비교해 상당한 차이다. 홍콩은 주5일 8시간 근무 시 월 77만원, 싱가포르는 40~60만원. 적게 잡아도 싱가포르보다 2~5배 높은 임금이다.

우리나라 3인 가구 월 평균 소득(2024년 기준 471만5000원)의 절반 수준이다. 문제는 내년도 최저임금이 1만30원으로 인상될 거라는 예측이다. 이에 따라 당초 목표했던 저출생 문제해소와 국내 가사도우미 인력 대체에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는 좀 더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울시는 올해 1월 법무부에 외국인 가사관리사의 월급을 최저임금 이하로 책정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시범사업이 고비용으로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법무부는 서울시의 요청에 7개월 가까이 무응답이다. 최저임금 미만을 받는 외국인 노동자가 다른 일자리를 찾는 등, 불법 체류 가능성을 우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외국인 가사관리사에 대한 관심은 돌봄의 영역을 벗어나는 측면도 있다. 외국인 가사관리사가 아이 영어 교육에 도움이 될 거라는 시각이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외국인 가사관리사 도입이 향후 국내 고령자의 일자리가 위태롭다는 지적도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가사·육아도우미 종사자는 2014년 22만 6000여명에서 2023년 11만 5000여명으로 줄었다. 2022년 기준 국내 아이돌보미의 평균 연령은 57.5살. 60대 이상이 43.6%, 50살 미만은 7.9%에 이른다. 이번에 한국을 찾은 필리핀 가사관리사 연령대는 24∼38세의 젊은 연령층이다. 고용주 입장에서는 돌봄을 비롯 청소, 세탁 등을 해야 하는 이들의 능력치를 보다 높게 볼 것이다.

가사관리사 ‘최저임금’ 적용

때마침 청주시가 지난 6월 진행한 ‘출산장려 지원정책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출생률 저조의 주원인은 양육 및 교육비 등 경제적 부담(71.5%)이었다. 뒤를 이어 일과 가정 양립의 어려움(54.6%)이었다. 한편 가장 도움이 되는 청주시의 출산장려정책을 묻는 답변에서는 양육 및 보육지원이(51.3%) 압도적이었다. 궁극적으로는 육아를 돕는 가사관리사의 손길은 필요해 보인다.

청주시 6월기준 인구이동 보고서에 따르면 외국인 거주자는 총 2만4773명이다. 남성 1만3364명, 여성 1만1409명. 전월대비 141명 증가세로 흥덕구 거주 외국인은 총 1만225명으로 제일 많다. 다음으로 청원구 6908명, 서원구 5880명, 상당구 1760명 순이다. 이들이 타국에서 충북으로 오게 된 이유로는 결혼이 62.1%로 가장 높았고, 다음 순이 구직(23%)이다. 외국인에게도 ‘일자리’는 먼 타향살이의 설움까지 껴안아야 하는 소중한 노동을 제공한다.

정부는 내년까지 외국인 가사관리사의 규모를 늘리겠다고 예고한 상황이다. 내년 상반기까지 비전문인력(E-9) 비자를 가진 가사관리사 1200명을 추가로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필리핀 이모’로 불리는 이들과 함께 방한한 엔리케 마날로 필리핀 외교장관은 “이번 필리핀 가사관리사 파견은 올해 수교 75주년을 맞은 양국의 오랜 우정과 파트너십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양국의 협력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가사업무는 특별한 기술 없이 노동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그로 인해 낮은 임금과 근로자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다. 이제 외국인 가사관리자가 나선 만큼 명확한 정책 목표를 설정하고, 수혜자가 일부 계층에 국한되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정책으로 이끌어야 한다. ‘필리핀 이모들’이 입은 파란색 단체복에는 국경과 인종을 초월한 그들의 숭고한 꿈이 녹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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