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마주한 ‘당신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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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마주한 ‘당신의 세계’
  • 이기인 기자
  • 승인 2024.08.28 13: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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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문화동인 샘(Saem) 전시회
충북갤러리 인사아트센터 8.21 - 9.2
청주교육대 미술관 9.4 - 9.12

 

이규식 작가의 ‘李규식’
이규식 작가의 ‘李규식’

충북도와 충북문화재단이 충북갤러리 열일곱 번째 전시로 예술문화동인 샘(Saem)의 ‘어쩌다 마주한 당신의 세계’를 개최한다. 충북갤러리 인사아트센터센터에서 다음달 2일까지 전시하고, 청주교대 미술관에서 9월 4일-12일 동안 한 차례 더 관람객과 마주한다.

 

‘예술문화동인 샘’은 청주에서 다양한 활동 및 국제교류를 위해 결성된 현대미술 그룹으로 지난 2013년부터 현재까지 22회 기획·전시를 진행했다. 샘은 2015년 교토 A.S.K 레지던시와 전시협약 체결 후 2016년부터 한국(청주)과 일본(교토)을 오가며 지금까지 청주‧교토교류전과 서울‧대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지역의 한계성을 벗어난 예술활동을 지향했다.

예술, 새로운 형식의 발견

참여 작가로는 청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와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인 ‘고헌, 박진명, 이규식, 이용택, 최민건, 최부윤’ 6명과 교토 A.S.K 레지던시 작가 및 교토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야마모토 나오키, 이케가미 케이이치, 우노 카츠유키, 하세가와 이치로’ 4명으로 회화, 판화, 드로잉 등 총 70여 점이 소개된다.

근대 이후의 현대미술은 시각적인 미술을 포함해 오감을 사유하는 미술로 전향 중이다. 과거 미술이 이미지의 재현이나 행위에 머물렀다면 오늘의 미술은 그 이상의 무언가를 충족하는 방향으로 진화 중이다. 이제 회화나 조각은 본연적 제작 태도와 형식을 뛰어넘는 유연한 사고의 작품을 낳고 있다. 이런 흐름은 모호한 미술의 경계마저도 무너뜨리고 있다. 미술은 이제 눈으로만 읽는 관습을 벗어나 새로운 실험의 장으로 움직인다.

현대 작가에게 창작이란, 미시 세계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형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샘(Saem)의 전시회는 작가 고유의 시각과 사고를 통해 ‘새롭게’ 읽히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들은 어떤 풍경이나 현상을 통해 사유한 것을, 시각 이미지로 재탄생시키는 것은 물론 현대인의 내면에 숨겨진 이면까지 찾아낸다. 뿐만 아니라 관객도 ‘어쩌다 마주할 수 있는’ 작품 속 내면과 만나, 색다른 경험을 한다. 이처럼 관람객이 사유하려는 경계 또는 임계점을 통해 또다른 상상력을 발견하는 것이 이번 전시의 궁극적 의도이다.

이번 전시는 한‧일 양국 작가의 고유 시각과 사고가 읽어내는 세계에 관한 투영이다. 그 면면은 전시회의 제목처럼 ‘어쩌다 마주한 세계’로의 새 이정표를 만드는 데 집중한다. 그 가운데 시간을 공간화 작업으로 몰두한 이용택 작가의 ‘Brown mokwa 20240603’은 꽃의 생과 죽음 사이에 보이는 시간적 이미지를, 공간적으로 현시한다.

작품을 위해 이 작가는 사진을 찍고 포토샵 작업을 한 후, 한지 위에 프린팅하고 페인팅하는 다소 복합적인 방식을 선택했다. 전시 작품은 그의 말대로 “시들어간다는 시간의 섭리는 보이지 않지만 결국 보이는 공간 속의 현시로 돌아간다는 것”을 주목한다. 작가의 시간에 대한 공간화는 문득 관람객의 시간과 공간으로 전이되며, ‘어쩌다’ 마주치게 된다. 앞서 이 작가의 실험적 세계관은 지난해 연말에 개최된 그의 개인전 ‘이용택의 변주’를 통해서 충분히 각인됐다.

이 작가의 실험적 일탈은 자아 회복을 위한 행위로 삶과 멀지 않은 곳에서 회화의 이미지로 발견됐다. 김기현 칼럼니스트에 따르면 그의 세계는 “먹과 색 그리고 구도라 하는 구조는 40년 먹으로 일군 흔적들의 누적”이다. 나아가 “경지가 경계가 되는 반복의 시간 안에서 창작의 싸움은 자기 안에 있다”고 조망한다.

작품의 ‘고해성사’

작가의 낯선 새로움은 곧 창작의 긴 고통의 시간으로 질주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용택의 선(線)은 이미 경지이다. 인식의 언저리에서 그려진 몇 개의 선은 이미 선(禪)일 뿐. 물(物)이 보이느냐고 되묻는 작업으로 이어진다,

한편 이규식 작가의 작품 ‘李규식’에는 혈연에 얽매인 관계와 고유하고 특별한 존재를 기원하는 서로 다른 욕망이 담겨 있다. 작가의 이름인 ‘이규식’은 끝이 정해지지 않은 이름쓰기의 핵심적 텍스트이자 오브제이다. 작가의 이름에는 과정이 결과를 대신할 거라는 믿음에서 생겨난 습관이 묻어있다. 작가는 이규식이라는 이름을 반복적으로 쓰며, 이규식이라는 작품의 끝을 맺으려고 한다.

이 작가는 “고해성사를 하듯 욕망과 집착을 시각화할 수 있다면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과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라고 예술가의 숙명을 자문한다. 그러나 이는 “현실을 모면하기 위한 수단일 뿐. 삶이 의미없는 반복의 연속임을 깨닫게 되는 건 참으로 잔혹한 예지(叡智)혹은 예지(豫知)가 아닐 수 없다”고 고백한다.

이규식 작가의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에 대한 탈출과 시각화는 일본작가 이케가미 케이이치의 작품 'The potter's hand S.Y' 로 이어진다. 작가 이케가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신체의 긴장은 촉각을 통한 경직과 이완으로 드러난다. 그는 현대인의 신체 접촉과 마시지 체감을, 종이와 캔버스로 옮긴다. “왜 우리 몸은 경직을 경험할까?” 라는 질문을 통해서, 각각의 신체 부위에서 발생하는 ‘경직’의 개별적 표현을 다층적으로 탐구한다. 작가는 개인적 체감의 과정을 통해 ‘지금 이 순간’ 탄생하는 낯선 감각과 그 세계를 캔버스에 구현한다.

이렇듯 다양한 세계에 대한 작가의 질문은 하세가와 이치로의 작품세계와도 깊숙이 닿고 있다. 하세가와에 따르면 세상의 구조는 패턴으로 이뤄졌다. 그는 식물의 잎과 열매. 거미줄과 벌집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운 패턴과 동‧식물의 기원을 살핀다. 세상 무늬에 나타나는 규칙성을 살피며, 인간의 패턴은 무엇일까. 자문하고 그것은 세로와 가로로 직조된 격자가 아닐까, 자답한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면 인간이 만든 건축물도 산과 숲과 다를 바 없음”을 그는 담담하게 시각화한다. ‘어쩌다’ 만난 전시회가 ‘특별함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어쩌면 전시 작품의 고해성사를 듣는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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