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고교생 유서대신 미완의 자퇴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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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고교생 유서대신 미완의 자퇴서약
  • 이재표 기자
  • 승인 2009.06.17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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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때까지 유효한’ 각서에 보호자 서명 요구
친구들 “평소에도 모욕에 괴로워 해” 파문 확산

청주 모 전문계고 S군 자살 파문
지난 9일 오후 8시10분쯤 청주시 개신동에 있는 모 아파트 주차장에서 청주시내 모 전문계 고등학교 1학년인 S군이 숨진 채로 발견됐다. 당시 언론은 ‘S군이 학교에 자주 지각을 한다는 이유로 부모로부터 종종 꾸중을 들었고, 이날도 아버지에게 혼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이 아파트에서 투신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S군이 뛰어내린 이 아파트는 자신의 집도, 친구의 집이 있는 곳도 아니었다. 교사들로부터 ‘산만하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S군은 무슨 이유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을까? 이와 관련해 S군의 친구 등 지인들은 “학교와 담임교사 등이 모욕주기를 한 끝에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며 반발하고 있다.

S군의 유해는 12일 화장돼 한줌의 재로 뿌려졌다. 그러나 유서 등 죽음의 원인을 추정할 수 있는 결정적인 근거는 아무 것도 없다. S군이 벗어놓고 뛰어내린 가방에서는 보호자의 연서로 제출하도록 들려 보낸 ‘각서’가 발견됐을 뿐이다.

   
▲ 9일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해 숨진 한 고교생의 죽음과 관련해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는지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S군은 유서를 남기지 않았으나 그의 가방에선 ‘교칙을 위반할 시 <자퇴를 서약>하며 본 각서는 졸업 때까지 유효하다’는 내용의 각서(좌)가 발견됐다. 이는 보호자 서명을 받아오라며 담임교사가 준 것이다. 학교장 앞으로 제출케 돼있고, 경찰조서를 연상케 하는 각서의 양식은 위압감을 준다. 오른쪽은 S군이 입학하자마자 흡연을 하다 적발돼 쓴 각서. 이 각서의 양식이 이 학교의 기본 틀이다.
S군은 숨진 당일 아침에도 지각을 했다. 이 학교의 보충수업 시작은 오전 8시30분이고, 등교시간은 8시20분~30분 사이에서 반마다 다소 차이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S군이 속한 학급의 경우 8시20분이 등교시간이었고 S군은 간혹 보충수업이 시작된 후에도 등교를 했다는 것.

지각이 잦았던 S군은 이날 담임인 I교사로부터 심한 꾸중을 들었고, 담임교사는 8시45분쯤 S군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도대체 S군이 몇 시에 집에서 나오냐’고 물었다고 한다. 

S군의 아버지는 “아이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오전 10시가 지나서 전화가 왔는데 ‘벌을 받고 나오는 길’이라며 풀이 죽어있더라. 수업 잘 받고 집에 와서 얘기하자고 했는데, 저녁 6시가 돼도 애가 돌아오지 않아서 전화를 해보니 ‘집에 다 왔다’고 대답했는데 늦게까지 들어오지 않았고 결국 기막힌 소식을 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S군은 이날 자신의 집을 한 정거장 지나쳐서 내리는 등 친구들이 보기에도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S군은 결국 아버지의 전화를 받은 뒤 집으로 들어가는 대신 걸어서 약 30분 거리에 있는 사고현장을 찾아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된다. S군이 어떤 수단을 이용해 현장에 도착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아버지 무서워 죽었다’에 유족 억장
S군이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기 전까지 주변에서 서성거리는 모습은 주민들에게 여러 차례 목격됐다. ‘낯선 학생이 계속 아파트 계단 주변을 맴돌았는데, 나중에 보니 그 학생이었다’는 것이 목격자들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S군은 왜 자신의 집이 아닌 곳에서 목숨을 끊었을까? 이는 S군이 목숨을 끊은 지 하루가 지나 친구들의 진술을 모은 끝에 확인할 수 있었다. 중학교 시절 송 군에게 멘토 역할을 했던 교사가 있었고, 이 날도 이 교사를 만나러 갔으나 귀가가 늦어지자 초조해진 S군이 결국 죽음을 택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S군의 모교에 현재도 근무 중인 해당교사는 제자의 죽음을 접하고 영안실까지 찾아와 비통함을 금치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평소 친밀감을 느껴왔던 은사를 만나 위안을 받으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막다른 길을 택한 셈이다. 

S군의 아버지는 “통학거리가 멀어 새벽밥을 먹고 집을 나서는 아들이 번번이 지각을 하는 것은 등굣길에 4,5명의 친구들을 만나 함께 버스를 타기 때문이다. 애한테 공부를 하라고 강요한 적도 없고 담배를 피우다 걸렸을 때도 ‘군대에 갔다 온 뒤 피우면 안 되겠냐’고 타일렀다. 그저 문제나 일으키지 말고 조용히 학교나 다니라고 했는데…”라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무엇이 막다른 길 택하게 했나
S군의 죽음은 단신기사로 보도됐지만 현재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당초 언론이 아버지의 꾸중이 두려워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도됐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는 것이 요지다. 여기에 근본적인 원인은 이 학생에게 사사건건 모욕을 준 담임교사에게 있다는 내용의 댓글이 주를 이루고 있다. 작성자는 이 학교의 학생 또는 졸업생, 친구의 형 등을 자처하는 네티즌들이다.

S군의 죽음에 대해 강력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인물 중에는 또, S군의 성장을 지켜봐온 아버지의 친구 Q씨가 있다. Q씨는 일부 학생들과 직접 만나 학급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학생들의 증언을 들었고 이를 토대로 본보에 제보를 하기도 했다.

Q씨는 “아이들 얘기를 들어보니 고등학교에 입학한지 3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동안 유독 S 등 몇 명만 미움을 받았다고 하더라. ‘○자식, 부모수준이 그것밖에 안 되냐’는 식의 모욕적인 꾸지람이 유난히 많았고, 뺨을 때리거나 평가실에서 매를 든 뒤에도 풀 뽑기 등 학교봉사활동을 6시간여에 걸쳐 시킨 적도 있다고 하니 애가 버틸 수 있었겠냐. 5월25일에는 S가 반 친구에게 무방비 상태에서 맞았고 15바늘을 꿰맬 정도로 크게 다쳤다. 그런데도 때린 아이가 아니라 S에게 책임이 돌아왔다. 그 다음날에도 6시간 동안 풀을 뽑았다고 하더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대한 학교 관계자의 해명은 “평소에 S군이 괴롭혀왔던 학생에게 맞은 것이고, S군의 부모도 이를 인정해 치료비를 자부담하기로 했다. 선배나 힘이 센 아이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것이 아니라 친구 사이에 일어난 일이니 학교폭력이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학교 측은 S군이 쓴 ‘진술서’나 ‘반성문’을 근거로 제시했다. 이렇게 본인이 인정하고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일선교사들의 견해는 다양하다. S군이 졸업한 중학교의 전교조 소속 K교사는 “어차피 진술서는 잘못했다는 것을 전제로 쓰는 글이다. 자기주장을 그대로 펼치면 매밖에 더 돌아오겠냐? 그런데 이게 학교의 관행이다”라고 털어놓았다. 

‘스스로 자퇴하겠다’는 각서
상황이 이쯤 되면 학교생활에 흥미를 느꼈을 리 만무하다. 실제로 S군은 가족 중 할머니나 여동생, 친구들에게 청주시외에 있는 학교로 가더라도 전학을 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풀 뽑기를 한 날에는 ‘담임을 죽이고 싶다’ ‘저 아파트에서 떨어지면 아플까’라는 등 극단적인 발언을 해서 친구들을 놀라게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날은 S군이 목숨을 끊기 약 보름 전이다.

S군은 유서도 남기지 않았다. 그렇게 차분하게 준비된 죽음이 아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다만 S군이 현장에 벗어놓고 뛰어내린 가방에서는 자필 부분이 작성되지 않은 각서 한 장이 발견됐다. 담임교사가 ‘보호자의 서명을 받아오라’고 들려 보낸 것이다.

하지만 각서의 문구는 교육현장에서 선도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내용이라고 보기에는 가히 충격적이다. 먼저 주소, 성명, 생년월일, 전화번호를 적도록 돼있고 내용은 ‘위 학생은 교칙에 위반되는 행위를 하였을 때는 어떠한 처벌도 감수함은 물론 스스로 자퇴할 것을 서약하며 본 각서를 보호자 연서로 제출합니다’가 그 본문이다.

그 바로 밑에는 ‘본 각서는 위 학생의 졸업 때까지 유효함’이라는 유효기간(?)이 단서조항으로 달려있다. 끝부분에는 학년 반 번호와 본인의 이름, 보호자의 이름을 서명하고 도장까지 찍도록 돼있다. 각서를 제출받는 주체는 이 학교의 교장이다.

이 학교 J교장은 ‘이 각서의 내용이 학교에 존재하는 양식이냐’는 질문에 대해 “학생부에 기본적인 양식이 있지만 S군이 워낙 여러 차례 각서를 쓰다 보니 담임교사가 내용을 변경한 것 같다. 컴퓨터에서 그런 것은 할 수 있지 않냐, 사실 각서는 이전 학교에서도 있었고 어느 학교에서든 관행적인 것이다. 더구나 법적인 효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실제 현재 학생부에 보관중인 S군의 각서는 3개월 동안 4,5장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 입학시점인 3월4일, 어머니가 학교에 방문해 연서한 각서는 흡연을 했다는 교칙위반사실만 자필로 적었을 뿐 ‘자퇴’ 등의 단어나 유효기간을 명시한 단서조항, 경찰조서를 연상케 하는 생년월일 표기란 등은 없다.

“학생지도에 가장 뛰어난 교사”
친구들과 Q씨의 주장처럼 담임인 I교사가 S군에게 모욕적인 언행을 일삼았는지에 대해서 당사자(담임)의 입을 통해 직접 확인할 수는 없었다. 학교를 찾아간 16일, I교사가 병원에 입원 중이었기 때문이다.

대신 J교장과 C교감, 학생부 교사 등을 통해 ‘말을 아끼려했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는 식의 반론을 들어야 했다. J교장은 “담임 I교사는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고령이다. 80명의 교사가운데 36명만 담임을 맡기 때문에 담임을 맡을 상황은 아니지만 내가 5번이나 간곡히 부탁해서 수락한 것이다. 워낙 아이들에 대한 열정이 많기 때문에 ‘엄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그 선생님이 담임을 맡는 반만큼 일찍 등교하고 선생님이 없어도 자습을 열심히 하는 반도 없다. 지난해 교지에 학생들이 쓴 글을 보라”며 교지를 직접 펼쳐 보이기도 했다.

J교장은 “고인이 된 학생에 대한 예의 때문에 그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노제를 할 때는 나도 눈물이 많이 나왔다”고 덧붙였다.

학생부 소속 교사도 “한순간의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 아니다. 이런저런 나쁜 짓을 입에 담고 싶지 않다. 속살만 후비는 것이다. 학교도 잘못했고, 가정에서도 잘못한 것이다. 다 함께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사들은 또 “누가 일방적으로 S군을 두둔하는 말을 했는지 뻔히 알고 있다. 그 아이도 똑같은 문제아다. 아이들은 필요한 내용만 잘라 말한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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