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선 ‘누르고’ 밑에선 ‘치받고’…중소업체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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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선 ‘누르고’ 밑에선 ‘치받고’…중소업체 폭발
  • 오옥균 기자
  • 승인 2011.06.02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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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콘업계 위기, 시멘트 가격 30%인상…조달청 입찰도 제동

고래들 등쌀에 새우등이 터졌다. 지역 중소 레미콘업계가 처한 상황이다. 전국 7개 대기업 시멘트 회사는 최근 중소 레미콘 업체에 사상 초유의 30% 가격인상을 통보했다. 레미콘 생산원가의 40%를 차지하는 시멘트 가격이 일방적으로 인상되자 레미콘 업계는 벼랑 끝에 몰렸다.

밀가루 가격이 오르면 자장면 가격이 오르듯 시멘트 가격 인상분을 반영해 레미콘 공급가격을 올리면 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시멘트를 공급하는 곳도 대기업이고 레미콘 가격 인상을 수용해줄 곳도 대기업인 건설사들이기 때문이다.

대형 건설사들은 레미콘업계의 인상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기세다. 수년째 건설경기가 바닥을 치고 있고, 아파트 분양가격 인하 압박도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분양원가마저 높아지면 수익을 낼 수 없다는 것이 건설사의 입장이다.

   
▲ 지난 26일 전국 750여 중소레미콘 관계자들이 국회 앞에서 대기업 횡포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일방적인 시멘트 가격 인상과 법원의 조달철 입찰공고 효력정지 처분을 철회해 줄 것을 요구했다.
레미콘 인상요구에 대원·한라 “글쎄…”
현재 청주권에서는 율량동과 용정동 아파트 건설 현장이 레미콘 수요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 현장에 레미콘을 공급하고 있는 지역 업체들은 시멘트 가격 인상분을 적용해 기존 거래가격보다 10%가량 인상된 금액을 결제해 줄 것을 건설사에 요청했지만 시공사인 (주)대원과 한라건설의 반응은 시큰둥하기만 하다.

율량 대원 칸타빌의 경우 이미 분양이 완료됐고, 용정 한라 비발디도 레미콘 가격 상승 전에 이미 거래 계약을 체결했다. 이들 업체는 공급원가를 계산해 분양가를 결정했고, 그 분양가에 분양을 시작한 마당에 추가 원가상승요인을 만들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한 중소 레미콘 업체 대표는 “시멘트가격이 인상된 상황에서 이전 계약가격에 레미콘을 공급하면 적자라고 하소연 해보지만 정 그러면 납품하지 말라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레미콘을 받지 않으면 건설현장도 멈추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한 관계자는 “대기업인 시멘트 회사들은 오래전부터 외판조직인 레미콘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들 대기업 레미콘사들은 중소기업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해 대형 공사현장을 독식해 왔다. 우리는 밑지고 납품할 수 없지만 사실상 시멘트사와 한 기업이나 마찬가지인 대기업 레미콘사는 건설사의 가격을 맞출 수 있다. 또 우리는 갑과 을의 관계지만 대기업 레미콘사와 건설사는 동등한 지위에서 거래를 할 수 있다”고 시장상황을 설명했다.

99석 가진 대기업 “1석도 마저 내놔라”
지난 26일 여의도 국회 앞에는 전국 중소 레미콘사 관계자 1500여명이 집결했다. 시멘트 회사들의 일방적인 시멘트 가격 인상을 규탄하고 이들의 횡포를 고발하는 자리였다. 이들은 대기업의 횡포로 중소 레미콘 업계가 고사위기에 처했다고 밝혔다.

지금껏 시멘트 가격과 레미콘 가격은 일정한 공식이 있었다. 시멘트 가격이 1톤 당 5만 2000원이면 레미콘 가격은 1㎥당 5만 2000원(벌크시멘트 기준)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번 30%인상으로 이러한 공식은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됐다.

7개 시멘트 회사는 최근 공문을 통해 인상가격을 밝혔다. 7곳 동일하게 5만 2000원이었던 공급가격을 6만 7500원으로 인상했다. 하지만 레미콘사는 납품처에 동일하게 1㎥당 6만 7500원으로 인상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를 고려해 10% 인상된 가격을 제시했지만 이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중소레미콘 업체 관계자들이 여의도에 집결한 것이 시멘트 인상 문제만은 아니다. 대기업의 횡포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지난 2009년 정부는 대·중소기업 상생 정책의 일환으로 ‘중소기업간 경쟁제도 및 공사용자재 직접구매제도’를 시행해 중소기업에게 일부 판로를 독점적으로 제공했다. 중소기업 경쟁제품 195개 가운데 레미콘이 포함됐고, 조달청이 발주하는 관급공사에 중소레미콘사만 참여할 수 있게 됐다.

특히 LH공사가 진행하는 사업도 분리발주의 대상이 돼 지난해 말부터 중소 레미콘 업체만 레미콘을 공급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지난 16일 조달청이 중소레미콘사를 대상으로 신규계약을 위한 입찰공고를 내자, 대기업 레미콘사들은 곧바로 입찰공고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재판부는 대기업 레미콘사의 손을 들어 효력정지 처분을 내렸다.

195개 중소기업간 경쟁품목 가운데 대기업이 이를 거부하며 소송을 제기한 것은 이번이 유일하다. 이로 인해 2011년에 진행될 13개 지방조달청 입찰 공고가 모두 취소됐고, 레미콘 시장은 혼란에 휩싸였다.

신규업체 5곳, LH공사 성화지구 참여 못해
LH공사가 시행하고 있는 청주 성화지구 아파트 건설현장에 납품하고 있는 지역 레미콘사들은 현재 계약기간이 만료됐지만 신규계약을 하지 못하고 1개월 단위로 연장하는 방식으로 공급하고 있는 형편이다. 신규계약을 위한 입찰공고가 취소되면서 새롭게 사업에 뛰어든 지역 업체 5곳은 관급공사에 참여할 수 없는 상태다.

26일 국회 앞에 모인 레미콘업체 관계자들은 “관수레미콘은 전체 시장의 20%밖에 되지 않는다. 80%에 달하는 민수레미콘 시장을 11개 대기업 레미콘사가 독점적으로 납품하고 있는 상황에서 750여개 사가 나눠 먹는 20%의 시장까지 대기업이 넘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법원의 효력정지 가처분 결정 철회와 시멘트 회사의 인상 철회를 요구했다.

김철수 충북레미콘조합 전무는 “2009년 이후 지금까지 레미콘시장은 지속적인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향후 전망은 더욱 어둡다. 중소 레미콘업계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영세한 업체는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중소 레미콘업계는 시멘트 회사에 인상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시멘트 회사의 공격은 이미 시작됐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시멘트업체들은 당초 제시한 1톤당 6만7500원을 수용하지 않은 레미콘 업체에 판매를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레미콘사들의 재고가 소진되는 시점까지 시멘트 가격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레미콘 공장가동 중단, 건설현장 레미콘 수급차질 등 부작용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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