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좋으나 결론 없는 영화 '직지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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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 좋으나 결론 없는 영화 '직지코드'
  • 홍강희 기자
  • 승인 2017.06.28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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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인쇄술 독일에 영향' 가설, 증거제시 못해 '심심' 여론
영화 '직지코드' 중 한 장면. 사진=(주) 아우라픽처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는 우리나라가 위대한 금속활자 발명국임을 보여주는 증거물이다. 그 직지는 자랑스럽게도 1377년 고려 우왕 때 청주 흥덕사에서 인쇄됐다. 그러나 세계적으로는 1455년 인쇄된 독일의 구텐베르크 42행 성서가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고려의 인쇄술은 구텐베르크에게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구텐베르크는 단독으로 금속활자 인쇄술을 발명했을까. 이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만일 이를 입증한다면 세계사적으로 ‘대사건’임에 틀림없다. 6월 28일 개봉한 영화 ‘직지코드’는 이런 가설 아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등 5개국을 다니며 취재한 다큐멘터리다. 우광훈 씨와 캐나다인 영화감독 데이빗 레드맨이 감독하고 대학원생인 명사랑과 감독 데이빗 레드맨이 출연했다. 청주가 고향인 정지영 감독은 제작자로 나섰다.

지난 23일 청주 롯데시네마에서는 이 영화 시사회가 열렸다. 그러나 영화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시도 자체는 의미 있으나 우리나라의 인쇄술이 유럽으로 건너갔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너무 심심하게 끝났다는 것이다.

모 씨도 결정적인 한 방을 보여주지 못했다며 “영화 제작팀이 직지 원본을 촬영하기 위해 프랑스 국립도서관 출입을 시도하는 장면이 너무 길게 나온다. 그리고 박병선 박사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직지를 혼자 발견해 세상에 알린 것처럼 보여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금속활자 인쇄술이 유럽으로 건너갔는지를 규명하는 다큐인데 느닷없이 시민들이 직지 내용을 너무 모른다며 무비스님을 찾아가는 장면은 어색하다. 또 제작팀이 영화 촬영 중 카메라와 하드디스크 도난당한 것을 굳이 영화에 넣은 것도 이해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구텐베르크가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42행 성서를 구텐베르크가 실제 인쇄했다는 기록은 없다. 당시 정황상으로 구텐베르크가 인쇄했을 것이라고 전해 내려 올 뿐이다. 이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라 새로운 것이 아닌데 이 영화에서는 이를 부각시켰다. 한 관계자는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결론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려운 주제라 한 번에 만족시킬 수는 없으나 근사치에라도 접근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이미 10여년 전에 남윤성 전 청주MBC 편성제작국장은 이런 가설 아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그러나 이번 ‘직지코드’는 이 보다 크게 발전한 게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제작팀은 1333년 로마교황청의 요한22세 교황이 고려 왕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밝혔다. “우리가 보낸 그리스도인들을 환대해줘 고맙다”는 내용의 편지라는 것이다. 교황청에서 포교활동차 신부들을 고려로 보냈는데 고려에서 친절하게 대해준 것에 대한 감사인사였다는 것. 

제작팀은 이를 로마 바티칸 비밀수장고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영화는 결론부분에서 이것이 당시 로마교황청과 고려가 교류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또한 확실하지 않다는 여론이 우세하다는 후문이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 10년 정도 산 적이 있는 데이빗 레드맨이 2014년 정지영 감독을 찾아가 외국인이 본 직지 영화를 만들자고 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정 감독은 충북도에 예산지원을 요청했고, 나중에 충북도와 청주시가 도움을 줬다. 충북도가 1억원, 청주시는 1억5000만원을 지원했다. 전체 제작비는 4억5000만원이고 나머지 2억원은 자부담 했다고 한다. 2015년 9월부터 그 해 말까지 해외 및 국내 촬영이 이뤄졌고 2016년에는 편집·사운드·자막 등의 후반작업이 마무리됐다. 그리고 올해 5월에는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작 11편에 선정됐다.

 

자료 수집·학자 증언 끌어내 ‘성과’
남윤성 전 청주MBC 국장, 2003년 다큐 ‘세계사를 바꾼~’ 제작

 

직지 영인본(왼쪽)과 표지.

‘직지 PD’라고 알려진 남윤성 전 청주MBC 편성제작국장은 지난 2003년 ‘세계사를 바꾼 금속활자, 그 원류를 찾아서’라는 특집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그는 이미 지난 2000년 ‘금속활자 그 위대한 발명’으로 ‘제2회 대한민국과학문화상’ ‘2000년 방송프로그램21 대상’ ‘2000년 올해의 좋은 프로그램 우수작품상’ ‘한국방송프로듀서상 작품상’ 등 각종 상을 휩쓸었다.

남 전 국장은 청주MBC 창사 33주년 기념으로 방송된 이 다큐에서 한국의 금속활자 인쇄술과 독일 구텐베르크는 연관성이 없는지에 대해 파고 들었다. 그는 당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발명국인 한국은 고려 태종 3년에 계미자(1234년)로 ‘상정예문’을 찍어냈고 완전조립식 인쇄인 조선 세종 때의 ‘갑인자’(1434년)에 이르기까지 약 200년이 걸렸다. 그러나 구텐베르크는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이것을 단 10년만에 끝냈다. 어떤 식으로든 사전 정보없이 이것이 가능할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특히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 인쇄에 본격적으로 도전하기 전인 1444년 3월∼1448년 10월 사이의 행적이 묘연하고, 당시 그가 유럽을 여행했다는 설도 제작팀을 자극하는 것 중 하나였다. 더욱이 우리나라 금속활자 인쇄술이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에 전파되어 그 나라 문화창달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유독 서양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

남 전 국장과 제작팀은 지난 2001년 11월 이 프로그램을 시작한 이래 나름 수확을 거뒀다. 평생 중국의 인쇄술을 연구한 미국의 학자 카터는 ‘중국 인쇄술과 서방전파’라는 책에서 “구텐베르크는 외부로부터 어떤 정보를 받아 인쇄술에 도전했을 가능성이 있다. 중국의 목활자 인쇄술이 전파될 가능성이 있으나 이는 1200년대에 일시 사용되다가 단절된 기술이었고, 시차상 조선 초기 금속활자 인쇄술의 전파 가능성이 높으나 당시는 실크로드가 폐쇄상태였기 때문에 넘어갈 수 없었다”고 쓴 자료를 찾아냈다.

하지만 허드슨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가 1931년 펴낸 ‘유럽과 중국’이라는 책에서 “당시 중국-유럽을 잇는 실크로드는 아랍의 대혼란으로 폐쇄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중국-사마르칸트-러시아-유럽으로 연결되는 초원로드는 활발하게 열려 이 길을 따라 조선의 금속활자 인쇄술이 독일로 얼마든지 넘어갈 수 있었다”고 주장한 것도 제시했다.

남 전 국장은 “허드슨이 쓴 책의 영어 원본을 구해 보니 당시 조선의 금속활자 인쇄가 얼마나 활발하게 이뤄졌는가가 자세히 기술돼 있었다. 앞으로 우리가 밝혀내야 하는 것은 실제 이 북방초원로를 따라 교역을 했는가이다”고 강조했다.

또 그동안 한국과 독일 활자의 공통점이 없다고 해왔는데 결정적으로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등장한 점을 꼽았다. 미국의 서지학자인 프린스턴대 폴 니덤 교수가 컴퓨터로 구텐베르크 금속활자 인쇄물과 조선 초기 금속활자본을 정밀 분석한 결과 두 활자의 주조방법이 동일하다는 연구 결과를 영국 및 미국 서지학회에서 발표하고 관련성을 강하게 제기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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