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고령화가 산업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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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고령화가 산업을 바꾼다
  • 양정아 기자
  • 승인 2024.06.13 0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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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유도 기저귀도 노인용으로
소비패턴의 변화…아기보다 애완동물로
진열대를 가득 메운 분유. /뉴시스
진열대를 가득 메운 분유. /뉴시스

전 세계적으로 저출산과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산업 구조 전반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아기들을 위한 분유 시장이 축소되면서, 관련 산업 역시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특히 국내 분유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내 분유 시장의 감소세는 심각하다. 2017년 4291억원이었던 국내 분유 소매시장 규모는 2023년 3180억원으로 줄어들며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이러한 시장 변화는 글로벌 기업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160년 전통의 분유 제조기업 네슬레도 노인식 시장으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네슬레의 CEO 마크 슈나이더는 “세계적으로 저출산 기조가 장기적으로 지속되고 있고, 향후 10∼20년간 50세 이상의 연령층이 크게 증가할 것”이라며 “노령인구에 식품을 공급하는 것이 회사의 우선 과제가 됐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어르신들의 근육량 보존, 영양소 결핍 방지, 혈당 수치 조절 등을 해결하는 제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네슬레는 중국의 인구 감소를 이유로 아시아 수출용 분유 공장을 폐쇄하기도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지난해 출생아 수는 23만명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연간 합계 출생률은 0.72명으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올해 출생률도 계속 감소할 전망이다. 출산율 저하가 계속되자, 국내 식품업계도 저출산과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 사업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실버푸드’ 제품
신시장 개척

매일유업, 일동후디스, 남양유업 등 주요 유업체들은 출산율 감소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분유를 먹는 수요 자체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반면, 고령화로 노인 인구가 늘면서 두유와 단백질 섭취 음료 등 노인을 위한 건강식품, 일명 ‘실버푸드’ 제품이 주목받고 있다. 매일유업의 고령층을 겨냥한 단백질 강화 영양식 브랜드 셀렉스는 2022년 2000억원, 2023년 3000억원의 누적 매출을 돌파했다. 또한 매일유업은 최근 환자식 전문 브랜드 ‘메디웰’을 새롭게 단장하며, 환자식과 노인식 제품을 출시하며 신시장 개척에 나섰다.

일동후디스의 단백질 보충제 ‘하이뮨 프로틴 밸런스’는 출시 3년이 넘은 지난해 말 누적 매출 4000억원을 달성했다. 일동후디스는 노년층도 쉽게 소화·흡수할 수 있는 산양유 단백을 원료로 사용해 차별화 전략을 세웠다. 또한, 빙그레는 단백질 브랜드 ‘더단백’을 2021년에 처음 출시했으며, 남양유업은 단백질 음료 브랜드 ‘테이크핏’을 운영하고 있다.

식품업계는 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에 맞춰 환자식, 고령친화식 등 케어푸드 시장을 본격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는 앞으로 영유아 이유식 시장이 축소되고 노인식 시장이 확대될 것을 보여주는 신호다.

또한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성인용 기저귀 수입량은 2만5532톤으로 어린이용 수입량(2만2954톤)보다 2578톤 많았다. 이는 2018년 1만2937톤 대비 두 배로 증가한 수치다. 고령화에 따른 성인용 기저귀 수요가 커진 결과로 풀이된다.

아기보다 반려동물

저출산과 반려동물 인구 증가가 맞물려 반려견 사료 판매량이 아기 분유·이유식을 추월한 것도 흥미로운 사례로 보여진다. 2021년 처음으로 반려견 사료 판매량이 아기 분유·이유식 판매량을 넘어섰다. G마켓의 집계에 따르면, 반려견 사료 판매 비중은 2020년 48%에서 2021년 61%로 크게 늘었고, 올해 1∼5월에는 69%로 더욱 치솟았다. 반려견 간식 판매 비중도 2020년 54%에서 지난해 61%로 높아지는 추세다. 올해 1∼5월 반려견 간식 판매 비중은 63%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러한 소비 패턴은 저출산과 반려동물 인구 증가라는 사회적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전국 등록 반려견 수는 2019년 209만2000마리에서 2022년 302만6000마리로 44.6% 증가했다. 지난해 12월에는 반려동물용 유모차 판매량이 유아용 유모차를 처음으로 넘어섰다. 반려동물용 유모차 판매 비중은 2021년 33%, 2022년 36%에서 올해 1∼3분기에는 57%로 급증했다. 반대로 유아용 유모차는 2021년 67%, 지난해 64%에서 올해 43%로 떨어졌다.

저출산과 고령화, 반려동물 인구 증가라는 트렌드는 기업들이 새로운 사업 기회를 모색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기업들은 이제 더 이상 유아용품에만 의존할 수 없으며, 노인과 반려동물을 위한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아예 기존 생산라인을 성인용이나 반려동물용으로 대체하는 기업도 나타나고 있다.

분유 시장의 축소와 노인식 및 반려동물 제품 시장의 성장은 이러한 변화의 대표적인 예시다. 기업들은 이러한 변화를 기회로 삼아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전략을 세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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