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별량이야기 <제6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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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별량이야기 <제69회>
  • 이상훈
  • 승인 2004.12.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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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징벌구신화예순아홉번째
성인 남자 몇사람을 벌거벗겨서 한데 포개놓은 듯 엄청나게 커다란 몸집의 소유자!
황소 한마리쯤은 그냥 올라타가지고 간단히 깔아뭉개놓거나 두 뿔을 두 손으로 잡아쥐고 그대로 뽑아낼 수 있다는 엄청난 괴력의 소유자!
그러나 그 역시 이렇게 숨이 한번 끊어지고나니 이제는 하찮게 쌓아놓은 고기덩어리에 불과했다.
그런데, 뚱보두목이 죽고나자마자 막사 안에서는 또다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제까지 살아남은 자들이 너나할 것없이 땅바닥에 마구 흩어져있는 금은보옥들을 허겁지겁 다투어가며 줍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개중에는 뚱보 두목과 싸우는 도중 크게 다쳐 자기 한몸을 제대로 운신하기조차 어려우면서도 억지로 발발 기어가며 바닥에 떨어진 금붙이를 주워드는 자들도 있었다.

"야! 이놈들아! 그만! 그만해! 당장 멈추지 못할까!"

이들 가운데 어느 누가 쥐고있던 칼을 마구 휘둘러보이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아까 뚱보 두목에게 맨 먼저 덤볐던 다섯명 가운데 아직 살아남은 그 늙으스레해 보이는 무사였는데 아마도 그의 직급이 이들 가운데에서 제일 높은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 땅바닥에 떨어져있는 황금 줍기에 두 눈이 완전히 까뒤집혀있는 자들의 귀에 이런 소리 따위가 제대로 들려올 리 없었다. 마침내 참다못한 그 늙은 무사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땅바닥에 떨어진 재물들을 정신없이 주워모으고있는 자들의 몸을 칼로 마구 찌르거나 후려내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기 옆에서 피를 토하며 동료가 픽픽 쓰러지고 있음에도 땅바닥에서 황금을 줍는 자들의 관심을 돌리게 할 수는 없었다.
잠시후,
늙은 무사 발 아래에는 역겨운 피냄새를 풍기며 쓰러진 시체들이 즐비하게 널려졌고, 이 막사 안에는 오로지 그 하나만이 온전하게 쉼쉬며 서있게 되었다.

'당최, 말들을 들어야지 말들을...'

바닥에서 뭘 줍는데 정신 팔려있던 자들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칼로 푹푹 찔러죽이는 데에도 꽤나 힘이 꽤 들었던지 그는 가쁜 숨을 헉헉거리며 잠시 몸을 진정시켰다.
어느새 그가 입고있었던 흰색 마사포는 이리저리 튀어진 피에 묻다보니 시뻘건 옷으로 변색되어있었다.
그러나 그 역시 번쩍거리는 황금의 유혹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던지 주위를 힐끗거리며 살펴보고난 다음 이내 허리를 굽혀가지고 땅바닥에 흩어진 금은보옥들을 허겁지겁 주워들기 시작했다.
그가 이렇게 허리를 구부린 채 정신없이 금은보옥들을 주워들고있을 때 갑자기 그의 머리 앞을 떠억 버티고 서있는 두다리가 막아섰다.
그제서야 정신이 퍼뜩 든 그는 고개를 가만히 위로 올려보았다.
아래위 채색 비단옷을 입고있는 준수한 외모의 사나이!
40대 초반쯤 되어보이는 이 사내의 주위에는 무장을 한 호위무사들이 에워싸듯 둘러서있었다.
늙은 무사는 굽혔던 허리를 천천히 바로 세우며 몹시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손에 들고있던 금붙이를 들어보이며 자기 딴엔 변명을 하듯이 이렇게 말했다.

"성주님! 싸움이 끝나고나니 바닥에 떨어진 이것들을 서로 차지하고자 아군들끼리 잠시 아귀다툼이 벌어졌습니다. 이게 다 제가 부덕한 탓이옵니다."

그는 방금 전에 집어들었던 금붙이를 두 손으로 공손히 건네주었다.

"대강 알만하오. 어쨌거나 주변에 있던 놈들을 모두다 해치웠으니 이제 무대를 지키는 놈들만 남아있소!"

방금 성주라고 불리워진 사내는 이렇게 말하며 그가 건네주는 금붙이를 천천히 받아가지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성주님! 저, 무대 위에 있는 놈들을 언제 칩니까?"

늙은 무사가 다시 물었다.

"보아하니 놈들이 가얼비 패거리들에게 사람을 보내 부탁한 것 같아. 연락을 취하고자 말타고 급히 달려가는 놈 하나를 잡았지. 그러나 이미 연락을 취했을지도 모를 일이니 되도록 일을 빨리 끝내도록 해야지. 그리고, 싸우는 와중에 자칫하다 내 누이동생이 다치는 수가 있으니 특히 조심을 해야만하네. 무대 위로 내 누이 동생이 올라오기만 하면 즉시 행동을 개시할 걸세. 놈들을 단 한명도 살려두어서는 안되네!"

성주가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늙은 무사 역시 비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그런데...”

성주는 그제서야 늙은 무사의 시뻘겋게 피로 물든 옷을 알아보고는 몹시 못마땅한 듯 고개를 가로내저었다.
그러자 그의 옆에 서있던 호위 무사가 이렇게 물었다.

“그 꼴로 싸우러나갔다가는 금방 들키지 않겠소?”

“아, 아니... 괜 괜찮습니다! 할, 할 수있습니다!”

늙은 무사가 크게 당황한 듯 소리쳤다.

“푹 쉬게나!”

성주는 이렇게 내뱉듯이 말하면서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갔다.

“아앗! 성, 성주님! 성주님! 제 말씀을 좀...”

늙은 무사는 크게 당황한 얼굴로 황급히 성주를 뒤쫓아가려했지만 바로 그의 뒤에 있던 호위무사가 그의 등을 칼로 푸욱 찔러버렸다.

‘으으윽....’

칼에 찔린 늙은 무사는 입에서 붉은 피를 쭈욱 한번 뿜어내더니 그대로 바닥에 나둥그라져버리고 말았다.

한편,
무대 위에서는 이런 놀랍고도 끔찍한 일이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줄을 까맣게 모른 채 간간히 흐르는 풍악소리와 함께 지금 한창 노예들을 팔고 사는 열기가 더해지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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