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한 여유… 천천히 걷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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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한 여유… 천천히 걷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 김영회 고문
  • 승인 2003.01.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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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전 한국인 신부 한 분이 유럽으로 여행을 갔을 때 일입니다. 긴 비행 끝에 공항에 내려 대기중인 버스에 오르니 운전기사가 대뜸 “안녕, 빨리빨리”하더랍니다. 뜻밖의 한국말인사에 의아한 신부가 “왜 빨리빨리 라고 하느냐”고 웃으며 묻자 “한국사람들은 빨리빨리를 좋아하지 않느냐”고하더라는 것입니다.
근년에 한국인 여행객들이 많이 몰려가는 태국의 관광지 식당에 가면 주문을 받는 종업원들이 “빨리 줘?”하고 먼저 묻는다고 합니다. 그 동안 우리 여행객들의 습관적인 ‘빨리빨리’성화에 길 들여진 종업원들의 재치 있는 서비스인 것입니다. 한국인들의 고질적인 ‘빨리빨리병’이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고있음을 보여주는 이야기들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 국민들의 ‘빨리빨리병’은 이미 생활 속에 깊이 뿌리내려져 하나의 문화로 형성 된지 오래 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시작되는 조급증은 길을 가도 빨리 가려하고 일을 해도 빨리 하려하고 음식을 먹어도 빨리 먹으려 합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단 몇 초를 기다리지 못해 버튼을 누르고 몇 계단씩 계단을 훌쩍 뛰어 오르내리고 버스가 서기도 전에 우르르 일어나 먼저 나가려합니다. 심지어 비행기에서조차 기체가 멎기도 전에 일어나 짐을 챙기느라 법석을 떱니다.
한국인들의 1분당 보행 수는 유럽인들보다 열 다섯 걸음정도 많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도쿄의 번화가에서 걸음걸이가 빠른 사람은 십중팔구 한국인이라는 색다른 식별 법을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럼 우리 한국인들은 왜 그렇게 매사에 조급한 것일까. 도대체 무엇에 쫓겨 그토록 여유를 갖지 못하고 서두르기만 하는 것일까. 학자들은 사계절의 기후와 연관짓기도 하고 역사상 수많은 외침에서 원인을 찾기도 합니다. 유럽인들 가운데는 고춧가루로 상징되는 매운 음식 때문이라는 재미있는 해석을 하는 이도 있습니다. 어느 것이 정답이든 이미 우리 국민의 조급증은 중증 난치병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빨리빨리병’이 ‘대충주의’가 되어 급기야는 사회전반을 부실하게 함은 물론 필연적으로 엄청난 사고를 불러 온 다는데 있다하겠습니다. 1970년대 초 서울 와우아파트 붕괴사건을 비롯해 신 행주대교 붕괴,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등 상상을 초월하는 대형사고들은 모두 빨리 빨리, 대충주의가 빚은 결과들입니다. 년 1만 명의 귀중한 생명을 잃는 우리의 교통문화 역시 ‘빨리빨리병’의 소산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중국인들은 전통적으로 만만디(慢慢的)를 삶의 덕목으로 여깁니다. 매사를 서두르지 않는 대륙인의 기질이요 지혜인 것입니다. 요즘 유럽에서는 ‘급박한 세상 느긋하게 살자’라는 슬로건을 내건 슬로비(Slobbies)운동이 한창이라고 합니다. 이른바 ‘시간 늦추기 회’라는 이름의 이들 단체들은 천천히 걷고, 천천히, 말하고 천천히 먹는 소위 ‘천천히즘’을 즐기고있는데 많은 시민들이 이들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사회도 이쯤 됐으면 빨리빨리 증후군에서 벗어 날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너무 서둘러 가다 보면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지기 마련입니다. 빨리 가는 것 만이 능사가 아니요, 천천히 걷는 것도 지혜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런 느긋하고 넉넉한 마음의 여유입니다.
강추위가 여러 날 온 나라를 얼어붙게 했습니다. 겨울은 추워야 제 맛이라고는 하지만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면 생활의 불편이 적지 않습니다. 기후가 변해 삼한사온(三寒四溫)의 주기가 십한십온(十寒十溫)으로 바뀌었다고 하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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