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 실록본의 차이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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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 실록본의 차이와 진실
  •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 승인 2024.04.18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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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의 '훈민정음 실록본 연구'에서 풀려

《훈민정음》(1446) 해례본이 중요한 만큼 이 책에서 갈라져 나온 언해본과 실록본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다만 세 문헌의 정확한 차이와 가치를 전문가들조차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세 문헌의 역사적 맥락과 정확한 차이를 짚어보기로 한다.

세 문헌의 차이를 알기 위해서는 해례본의 독특한 짜임새를 알아야 한다. <그림 1>에서처럼 한문으로 된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빨간 동그라미 친 부분인, 정음편과 ‘정인지서’만을 한문 그대로 세종실록에 실은 것이 <실록본>이다. 한문으로 된 정음편(보라색 동그라미 부분)을 자세히 풀고 번역한 것이 언해본이다. 별 표시한 ‘해례’ 부분은 오로지 해례본에만 실려 있고 1940년에 해례본이 발견된 이후에야 그 내용이 세상이 드러났다.

실록본은 세종실록 속에 3쪽 분량으로 실렸다. 세종실록 초간본은 남아 있지 않고 선조 때 재간행한 것만 남아 있다. 언해본은 30쪽으로 소책자 형식의 단행본으로 나왔을 초간본은 남아 있지 않고 세조 5년(1459)에 세조가 펴낸 ≪월인석보≫ 1권 앞부분에 실려 있는 것(월인석보 권두본)만이 오늘날 남아 있다.

<그림 1> 훈민정음 해례본의 짜임새.

기록 순서는 ‘해례본(1446)→실록본(1446)→언해본(1446년? 추정)’이고 간행 순서는 ‘해례본(1446)→언해본(1446-1447년 추정?)→실록본(단종 2년, 1454년)이다. 세종실록은 세종 승하 후 단종 때 간행했기 때문이다.

일단 기록 순서로 재현해 보면, 제일 먼저 1446년 음력 9월 상순에 해례본을 간행했고 이러한 간행 사실을 사관이 기록했다(사초). 기록할 때, 해례본 66쪽 가운데 앞 7쪽(정음 1ㄱ-4ㄱ) 뒤 7쪽(정음해례 26ㄴ-29ㄴ) 일부를 발췌 기록했다. 이 기록물은 단종 2년(1454년)에 편집되어 간행됐고 이것이 <실록본 훈민정음>이다.

해례본 간행 직후 해례본 세종과 해례본 공저자들은 해례본이 한문본이라 이 책으로 훈민정음을 보급하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해례본 가운데 세종이 직접 저술한 부분만을 쉽게 풀어 펴내기로 했고 그것이 언해본이다. 세종 때의 언해본은 해례본 간행 이후 최소 두 달 이내, 최대 1년 이내에 펴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림 2> ≪세종실록≫에 실려 있는 훈민정음 <실록본>(1606년/선종 39년 설치된 태백산사고본) 전문(음영 부분) @조선왕조실록(온라인).

이 언해본은 전해지지 않고 첫 쪽만을 바꾼 모두 30쪽짜리의 언해본이 세조가 1459년에 펴낸 ≪월인석보≫ 1권 앞에 실려 전한다. 첫쪽이 바뀐 것은 세종 사후에 펴낸 것이라 ‘세종 어제-’이란 별칭을 더 붙여 제목이 ‘세종어제훈민정음’이 되었기 때문이다.

‘세종’은 시호(諡號)가 아니라 묘호(廟號)이다. 시호와 묘호 모두 승하 뒤 부르는 이름이지만, 묘호는 제사를 지낼 때 부르는 호이고, 시호[존호(尊號)]는 승하 뒤 임금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붙인 호로 세종의 시호는 ‘영문예무인성명효대왕(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이다.

세종의 생전의 실제 이름은 이도(李裪)이므로 특별한 경우 현대 관점에서 묘호와 실제 이름을 합쳐 ‘세종 이도’로 부르기도 한다. 실제 이름은 ‘옷소매 도(裪)’인데 지금 대부분의 기록은 ‘복 도(祹)’로 되어 있다. 이는 후대에 글자를 오인하여 잘못 기록된 것이다.

<그림 3> 훈민정음 언해본이 실려 있는 ≪월인석보≫ 1권의 짜임새 @김슬옹 글, 강수현 그림(2012). ≪누구나 알아야 할 훈민정음, 한글 이야기≫ 28(글누림), 37쪽.

세조 때 언해본(1459, 서강대학교 소장)을 바탕으로 세종 시대 언해본을 문화재청이 2017년에 국어사학회 도움을 받아 복원했고 이를 <재구정본 언해본>이라고 한다. 2017년에 공개된 논문 자료 형식의 재구정본을 2023년에 가온누리 출판사에서 정식으로 단행본으로 해례본과 함께 출판했다. 이러한 간행 순으로 첫 쪽만을 내보이면 다음과 같다.

[사진 1] 훈민정음 해례본과 재구정본 언해본과 월인석보 권두본 첫 쪽 비교.

해례본의 앞 두 장(4쪽)은 세종 당대의 기록이 아니라 훗날 복원한 기록이다. 세종이 직접 펴낸 초간본은 오랜 세월 묻혀 있다가 1940년에 경상북도 안동에서 이용준 선생에 의해 발견되어 간송 전형필 선생이 사들여 현재는 간송미술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간송본은 발견 당시 세종의 정음편 1쪽부터 4쪽까지 모두 4면은 없었다. 찢긴 4면을 누가 어떻게 복원했는지는 역사 속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다만 어떻게 복원(보사)했을지 추론은 가능하다. 실록본과 언해본 덕분에 가능했다.

간송본의 낙장 부분의 복원은 실록본과 언해본이 있어 가능했으니 사관이 해례본의 정음편과 정인지서를 그대로 실록에 전재한 것은 해례본 못지 않게 매우 중요하다. 해례본은 일찍 희귀본이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해례본의 맨 끝의 ‘정인지서’는 언해본에도 없으므로 해례본 발견(1940) 전까지는 실록본으로 유통되었다.

<그림 4> 훈민정음 해례본 낙장 복원 과정 추정도.

해례본과 실록본
오류 재해석

실록본은 여러모로 중요하다. 실록본에 대해서는 김주원(2013)의 “훈민정음 실록본 연구( ≪한글≫ 302호. 한글학회)‘로 자세히 드러난 바 있다. 실록본에 대한 여러 오인과 오해가 이 연구로 풀렸다. 단종 2년(1454년)에 완간된 최초 ≪세종실록≫은 오늘날 전하지 않는다. 온라인으로 제공되고 있는 태백산본은 임진왜란 이후 선조 39년(1606년)에 재간행된 실록본이다.

그동안 실록본에 대한 오해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실록본에서 이체자로 바꿔 놓은 것을 오탈자로 오해한 경우이다. 대표적인 것이 “欲使人人易習”에서 해례본의 ‘易(쉬울 이)가 오늘날의 ‘昜(볕 양)’으로 쓰여 있다 보니 오탈자로 생각했다. 그러나 ‘昜’는 ‘易’의 이체자이다. 이체자는 자형은 조금 다르지만, 뜻은 같아 서로 바꿔쓸 수 있는 글자를 말한다.

이에 반해 ‘대용자’는 서로 다른 글자지만 뜻은 같은 경우이다. 해례본의 ‘辨(분별할 변)’이 실록본에서 대용자 ‘卞(분별할 변)’으로 쓰였다. 해례본의 ‘不終朝(아침을 마치기 전에)’의 終(마칠 종)을 실록본에서는 ‘崇’으로 되어 있다. 이 글자도 ‘마치다’의 뜻이 있으므로 대용자로 볼 수 있다. 실록은 있는 그대로 기록한 사초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이렇게 대용어로 바뀐 것은 재간행 당시에 바뀌었을 확률이 높다.

[표 1]훈민정음 실록본의 오류에 대한 재해석(김주원, 2023: 301쪽, 일부 차례 바꿈)에 대한 추가 의견(김슬옹).

김주원(2023)에서 ‘탈락’과 ‘오자’로 나눈 것을 ‘탈락’도 오타의 일부이므로 ‘오탈자’로 용어를 통일해 보았다. 왕실 가족을 관리하던 직책인 ‘敦寧府主簿(돈녕부주부)’는 실록본에서는 ‘敦寧主簿(돈녕주부)’라고 나오지만, ‘돈녕부주부’를 ‘돈녕주부’로도 불렀으므로 오탈자가 아니라 대용어로 보았다.

김주원에서 지적 안된 글자로는 “是猶枘鑿之鉏鋙也”에서 ‘枘(도낏자루 예)’가 ‘柄(자루 병)’으로 바뀐 경우로 이것도 오탈자이다. 김주원(2023)에서의 종합 검검 내용과 필자의 의견을 결합해 보면 [표 1]과 같다.

실록본이 현재 간송본 낙장 부분의 오탈자를 바로잡아 줄 수 있는 글자도 있다. 세종 서문의 맨 끝 글자는 실록본의 ‘耳(따름 이)’가 맡다. 간송본의 ‘矣(어조사 의)’는 보사 과정에서 생긴 오탈자이다.

<그림 5> 해례본(간송본)과 실록본(색깔그림자 표시 부분)의 대비표.

언해본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자세히 논의할 것이므로 해례본과 실록본과의 차이만을 주로 살폈다. 실록본이 중요한 것은 언해본에 없는 ‘정인지서’가 실려 있다는 점이다. 후에 다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정인지서’에는 훈민정음의 실용적(기능적) 우수성과 역사적 가치가 명쾌하게 기술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훈민정음을 창제 반포한 세종을 “하늘이 내린 성인으로 모든 왕을 초월했다.”라는 중국 황제 이상의 평가를 내리고 있다. 더군다나 훈민정음으로 인해 진정한 지혜의 세상을 열게 되었다고 선언하고 있다.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이 글은 2023년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 최초 복간본의 필자 해설서인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의 탄생과 역사≫(가온누리)를 대중용으로 수정 보완한 것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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