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삐풀린 에이즈' 책임질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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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삐풀린 에이즈' 책임질 곳이 없다
  • 뉴시스
  • 승인 2009.03.17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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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당국도 경찰도, 소속 택시회사 어느 곳도 책임이 없다(?). 에이즈(AIDS·후천성 면역결핍증) 택시기사 전모씨(26) 사건 경찰수사가 17일 종결되면서 파문이 수면 아래로 가라 앉았지만, 책임있는 기관의 후속대책 등은 여전히 모호한 상태여서 불안감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사회적인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음에도 관리부실 등의 이유로 징계를 받았거나 받을 예정인 공무원은 전혀없다. 그렇다고 이와 관련한 대책이 발표된 것도 아니다.

관계당국과 업계는 감염자들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적어도 유관기관과 공공 서비스 분야 취업 등에 대해서는 정보를 공유하고 통제해야 제2의 파문을 막을 수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몇달에 한번 전화만…허술한 관리

충북 제천시보건소는 2003년 전씨가 에이즈 감염자로 등록된 뒤 줄곧 그를 관리해 왔다. 그러나 관리라고 해 봐야 전화를 걸어 약 복용 여부를 확인하는 정도였다.

가끔 전염 예방을 위한 성교육을 한다고 하지만 전씨 경우를 감안하면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도 지난해 7월부터는 전씨가 시보건소 담당자의 전화를 받지않아 연락도 두절된 상태였다. 하지만 시보건소 담당자는 그를 찾아 나서지 못했다. 방문하는 행위도 인권침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은 '타인에게 감염시킬 우려가 높은 자'의 경우 보호조치를 강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지난 수년간 계속돼 온 전씨의 여성관계를 1명에 불과한 시보건소 담당인력으로 확인하기에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특히 유흥업소 외의 모든 업종 취업을 허용하고 있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인권에 부딪힌 경찰조사

전씨를 속옷 절도 혐의와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전파매개행위) 위반 혐의로 구속한 경찰은 지난 12일부터 전씨와 성관계를 한 여성 신원파악 작업을 벌여왔다.

경찰은 여성 신원파악 작업은 해당 여성들에게 위험을 알리자는 측면도 있었으나 전씨의 전파매개행위(성관계)로 인해 감염된 여성이 확인될 경우 그를 중상해죄로 추가 처벌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전화연결에 어려움이 적지 않고, 또 어렵게 연결이 되더라도 대부분 전씨와의 성관계는 물론 알고 지낸 사실조차도 부인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특히 사실 확인이 이뤄진다고 해도 경찰은 전씨의 에이즈 감염 사실만 알려줄 수 있을 뿐 에이즈 검사를 강제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수사의 실익이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뿐만 아니라 경찰의 무작위 전화연결과 성접촉 여부를 묻는 질문 역시 또 다른 인권침해가 아니냐는 논란도 불러 일으켰다. 결국 경찰은 성접촉 여성 확인 작업을 중단하고 수사를 종결했다.

경찰 관계자는 "앞으로 자발적인 신고 등을 통해 감염자가 확인될 경우 전씨에 대해 중상해죄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전씨를 통해 확보된 전화번호 등은 보건당국으로 넘겨 후속조치를 취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공공 서비스 분야 취업 제한해야

전씨가 지난 수년간 몸담았던 택시업계는 초상집 분위기다. 택시에 대한 시민들의 거부감과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씨 사건의 가장 큰 선의의 피해자는 택시업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씨는 A택시회사를 거쳐 B택시회사에 2007년 2월 취업했다. 당시 이 회사는 시보건소가 발급한 전씨의 건강진단서를 받았다.

정상으로 표기된 혈압과 색각이상, 혈액검사 등의 결과였다. 기존에 앓았던 질병을 표기하는 '기왕력' 표기란은 '특이사항 없음'으로 적혀 있었다.

보건당국 역시 그의 에이즈 감염사실을 통보하는 것은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에 따라 금지돼 있었기 때문이다.

B택시회사 관계자는 "감염 사실을 알았다면 누가 채용을 했겠느냐"며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생명을 운송하는 공공 서비스 분야에도 취업의 문을 열어 둔 제도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행 관련법은 유흥업소, 안마시술소, 다방에 대해서만 에이즈 감염자의 취업을 제한하고 있다.

택시업계 관계자는 "대중과의 접촉이 많은 대중교통 종사자들에 대해서는 취업자격을 보다 엄격히 할 필요가 있다"면서 "지금의 제도라면 전염력이 강한 에이즈 환자는 물론 강력범죄 전과자들 누구나 취업을 할 수 있어 택시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실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채용을 하지 않으면 되지만, 어느 기관도 그러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면서 "회사로서는 취업 희망자들에 대한 자체 '뒷조사'를 할 수 밖에 없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인석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에이즈 판정 등 큰 충격을 받을 경우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 등 5단계의 상태를 거치게 된다"면서 "개인차가 있겠지만 2~3단계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할 경우 불특정 다수에 대한 분노로 표출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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