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거정국, 시민의 힘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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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거정국, 시민의 힘 빛났다
  • 홍강희 기자
  • 승인 2009.06.03 0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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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내 전체 10만여명 조문 상당공원 분향소에 4만여명 몰려 ‘화제’
가족단위·중고생들 많은 점 특징, 시민의식 사회발전 원동력 활용 과제

충북서도 뜨거운 애도물결
7일간 조문객수 500만명, 전국 분향소 설치 335곳, 장의위원 1404명, 만장 3700개…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은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영결식이 열렸던 지난 5월 29일 서울에서만 50만명이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본 것으로 집계됐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충북에서는 500명 가량이 영결식에 참석하기 위해 상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 28일 저녁 상당공원에서 열린 추모제에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참석했다. 추모제에만 4000여명이 모여 노 전 대통령의 넋을 위로했다. / 사진=육성준 기자
지난달 23일 아침 느닷없이 전해진 비보에 놀란 노사모와 시민광장 등 노 대통령 지지자들은 충북에서 가장 먼저 청주 상당공원에 분향소를 설치했다. 그리고 민주당충북도당, 충북도청 등에 이어 충주체육관, 제천시민회관, 진천군청 등 도내 지자체 11곳과 보은 법주사 등의 종교시설 등에 설치됐다.

국민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각 지역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조문했다. 흰 국화꽃과 담배, 추모글 등을 바치고 방명록에 서명했다. 조문객 수는 가장 붐빈 상당공원이 4만여명, 충북도 등 도내 지자체 분향소가 3만8000여명, 민주당충북도당이 8000여명으로 나타나 도내 모두 10만여명 정도 될 것으로 보인다.

산교육 위해 자녀 대동한 부모들
연일 뜨겁게 이어진 조문정국의 첫 번째 특징은 시민주도라는 점이다. 도내에서 가장 대표적인 곳이 청주 상당공원 이었다.

정균영 참여정부평가포럼 충북사무처장은 “처음에는 노사모와 시민광장, 시민단체 등이 운영했으나 자발적 봉사자들이 줄을 이어 어렵지 않게 분향소를 지킬 수 있었다. 모금함도 시민들의 요구에 의해 설치했다. 뜻을 같이 하는 몇 몇 단체들이 갹출해 운영경비를 모으려고 했으나, 시민들이 십시일반 낸 경비로 해결할 수 있었다. 생수·라면·떡·커피 등의 물품은 남아 다른 단체에 기증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런가하면 조문하러 갔다가 스스로 자원봉사자가 되어 밤새워 조문객들에게 음료수를 대접하거나 뒤치다꺼리하는 사람들도 많았다는 후문이다.

영결식 하루 전날인 지난달 28일 상당공원에서 열린 추모제 때도 충북지역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은 참석자들에게 근조리본과 신문, 노란스카프, 양초 등을 나눠주었다. 또 행사가 끝나고 난 뒤에도 자발적으로 참석자들의 귀가 길을 도왔는가 하면 공원 안의 쓰레기를 치우는 등 솔선수범했다. 본사는 이 날 ‘노대통령 서거 특집호’ 5000부를 찍어 참석자들에게 나눠주었다. 이 때도 자원봉사자들이 나서 전혀 어렵지 않게 배부할 수 있었다.

   
▲ 추모글을 낭독하는 정희수 양
그리고 또 하나의 특징은 가족단위와 중·고등학생 조문객이 많았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갓난아기부터 초등학생까지 데리고 나와 역사의 현장을 보라고 설명했다. 산교육을 하기 위해 아이들을 대동했다는 게 부모들의 한결같은 말이었다. 인터넷을 많이 하는 중·고등학생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추모열기를 접하고 분향소와 추모제에 몰려 왔다. 청주여고 정희수 양은 추모제에서 추모글을 낭독해 많은 사람들을 울렸다. 정 양은 “정치를 잘 모르는 18세 소녀지만, 대통령께서 뇌물을 받았다고 발표한 일부 언론과 검찰의 말을 그대로 믿은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라며 흐느꼈다.

김형근 민주당충북도당 부위원장은 “민주당충북도당 분향소에는 하루 평균 1000명의 조문객이 방문했다. 상당공원에는 젊은층들이 많이 모여든 반면 도당에는 장년층과 인근 학교 학생들이 많이 왔다. 경비에 보태쓰라고 돈을 내놓거나 물품을 기탁하는 사람도 많았다. 민주당에 입당한 사람도 여럿 된다”며 “고등학생들의 정치의식이 높아 놀랐다.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촛불집회 때 훈련받은 국민들이 이번에도 뛰어나온 것이다. 너나 할 것 없이 그 열기에 놀랐다. 영결식 날 4시간 가량을 뙤약볕에 서 있었지만 국민들은 불평 한 마디 하지 않고 진지했다. 사회부조리를 참아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확산되면서 국민의식이 전체적으로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국민들의 이런 힘이 촛불집회 때처럼 힘없이 꺼지지 않게 해야 하는 게 과제”라고 말했다.

뜨거운 추모열기에 모두 놀라
정균영 처장은 “시민들의 추모열기가 이 정도로 뜨거울지 몰랐다. 전직 대통령의 정치적 보복을 안타까워 하는 게 시민 정서였다. 이를 통해 진실에 대해 갈구하고 저항하는 시민정신을 발견했다. 영결식 하루 전날 마지막 조문객을 받을 때 줄이 너무 길어 상당공원 옆 충북도청 분향소로 가라고 안내하자 ‘이명박이 만든 정부 분향소를 왜 가느냐’며 저항해 깜짝 놀랐다.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앞으로 시민들의 열망을 담아내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상당공원에서 도청서문을 지나 시내까지 이어진 조문행렬.
국민장 기간 동안 전국적으로 가장 많이 울려퍼진 말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이다. 또 ‘바보 노무현’도 인구에 회자됐다. 충북 역시 마찬가지다. 도민들은 마치 부모를 잃은 것 같다며 슬퍼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참여정부가 탈권위·균형발전·화해 포용정책은 긍정적이나 FTA·비정규직 법안은 문제였다. 그러나 인간 노무현은 가장 서민적이고 탈권위주의적 지도자였다. 특히 이명박 정부와 대비속에서 더 의미가 부각되고 있다. 민주적이고 자유주의적이며 사회적 약자 구호를 위해 최선을 다한 정부로 기억돼 많은 국민들이 슬퍼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전문가들은 실패와 좌절을 겪고 자살로 끝난 노 대통령의 슬픔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기류도 있다고 진단했다. 인간 노무현에 대한 슬픔과 현 이명박 정부속에서 꽉 막힌 사회 분위기가 합쳐져 추모열기가 극에 달했다는 것이다.

한편 이번 일을 통해 충북에서도 시민의 힘을 발견했다는 게 중론이다. 광우병 쇠고기 촛불집회 때 광장으로 나온 시민들은 이번에 상당공원 분향소와 추모제에 참석했다. 이들은 부당하고 부조리하며 약자가 손해보는 일이 생길 때는 참지 않고 목소리를 낸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지만, 퇴임 후에는 이명박 정부한테 부당한 대우와 인간적 조롱을 당한 피해자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사회적 약자라고 본 것이다. 앞으로 이런 시민의식을 어떻게 사회발전을 위한 원동력으로 활용할 것인가가 과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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