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 마지막 흔적, 근대문화유산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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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 마지막 흔적, 근대문화유산 下
  • 권혁상 기자
  • 승인 2012.06.20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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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 본관-지사 관사-옛 충북산업장려관 등록문화재 3인방
일제 강점기, 일본 - 서양식 절충형 건축기법 돋보여

‘잉어배미’ 논에 터잡은 충북도청 본관

1908년 충주에 있던 충북도 관찰부가 기습적(?)으로 청주로 이전됐다. 충주 민심의 반발을 우려해 사전예고도 없이 청주로 옮기다보니 건물도 마땅하질 않았다. 그래서 현재 중앙공원내 기존 관아 및 병영 건물을 그대로 쓰게 됐다.

하지만 관찰부 업무가 늘어나다 보니 새 건물이 필요했고 마침내 1937년 현재의 청주시 문화동 89번지에 2층 구조의 도청 건물을 짓게 됐다. 도청 이전지는 청주읍성 서문에 가까웠고 항상 물이 고여있어 잉어가 살고 있다 해서 '잉어배미'로 불리던 곳이었다. 이곳을 옛 지사 관사 자리의 산자락을 절토한 흙으로 메운 뒤 2층 건물을 올린 것.

이후 후관동과 회의실이 들어섰고 한국전쟁으로 본관을 제외한 건물들은 대수선 작업을 거쳐 본래 모습이 변형된 상태다. 본관 건물도 59년도에 3층 부분을 증축해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됐다. 이 본관 건물이 등록문화재 제55호로 선정됐고 한참 뒤 지사 관사는 제 353호로 지정됐다. 본관 구조는 벽돌체 벽체와 철근콘크리트조 바닥이며 외벽은 갈색 스크래치타일로 마감시켰다.

일제 강점기의 관공서 건물은 대부분 돌출된 현관을 중심으로 대칭형 평면 및 입면을 구성하고 있다. 이는 중심성, 정면성을 강조해 식민통치의 권위, 위엄을 돋보이려 한 건축양식으로 볼 수 있다. 또한 30년대 서양 모더니즘의 영향으로 건물 내부의 장식선을 최대한 배제한 것도 눈에 띈다.

신안준 교수는 "도청 본관은 일제의 권위주의적 건축양식을 기본으로 서양 모더니즘의 합리적인 건축양식이 혼합절충된 것으로 충남도청과 함께 희귀하게 남아있는 건축물"이라고 말했다.

‘천덕꾸러기’ 취급받는 옛 충북산업장려관

일제는 식민 조선에 대한 수탈과 함께 자국의 상품을 팔기 위해 골몰했다. 영국의 세계만국박람회에 영향받은 일본은 1907년 경성박람회를 통해 자국의 우월한 상품을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이후 각 도별로 물산진열관 설치사업을 벌여나갔고 1936년 현 충북도청 남서쪽 모서리에 충북물산진열관이 지어졌다. 2층 연면적 429평방미터 규모로 오히려 도청 본관보다 6개월 가량 앞서 준공돼 등록문화재 제362호로 지정됐다.

해방이후 미군정기에 미국공보관으로 사용됐고 이후 도청 민원실로 쓰다가 57년부터 상공장려관, 산업장려관이라 명칭으로 바뀌었다. 건물구조는 상품 진열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기둥이나 벽체가 없이 단일 홀 형식으로 구성됐다. 사거리에 접한 입지적 특성을 감안해 양면성을 지닌 'ㄴ' 자형 평면을 형성하고 당시로는 드물게 모서리 부분을 곡면으로 처리했다.

또한 곡면부를 1층에서는 안쪽으로 약간 들어간 주출입구를 만들었고 2층에서는 다른 창보다 훨씬 큰 장방형 연속창을 설치해 형태미를 강조했다. 현재는 1층을 서고로 2층을 임시사무실과 물품창고처럼 활용하고 있다.

이에대해 강태재 대표는 "이런 역사성있는 건물에 충북도 사료관을 만들어 거리의 시민들이 곧바로 들어와 관람하면 안성맞춤일 것이다. 엉뚱하게 내부 건물에 도정홍보관을 만들었다가 찾는 이가 없으니 중소기업제품 전시관으로 바꿔버렸다"고 말했다.

일제 당시 가장 아름다운 집 ‘우리 예능원’

충북도청에서 지사 관사로 향한 언덕길 중간에 고즈넉한 옛 건물 한채가 자리잡고 있다. 1924년 금융조합연합회 충북지부장 관사로 지었으니 벌써 88년 세월을 지킨 근대 건축물이다. 하지만 낡은 대문에 걸린 옥호는 다름아닌 '우리 예능원'. 아이들에게 예능(악기연주)을 지도하는 교습소 역할을 하고 있는데... 지역사를 품은 유서깊은 곳에서 우리의 꿈나무들이 자라나고 있는 셈이다.


'뾰족집'이라고도 부르는 2층의 목조함석집으로, 일제강점기에 청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으로 꼽혔다. 당초 연면적 83.7평방미터 2층 규모의 주택이었는데 54년 청주YMCA가 매입해 강당을 신축하고 회관으로 사용했다.

주택과 강당이 연결된 구조인데 1980년 청주YMCA가 중앙공원으로 이전한 뒤 시립유치원으로 이용하다 84년부터 '우리 예능원'이란 사립 유치원이 들어섰다. 구순을 앞둔 이영순 원장이 국내에 마린바(멕시코 중부 및 남아메리카 지역의 민속 악기)를 초기 도입해 조기교육을 통해 유명 연주자들을 배출시키고 있다.

건축양식은 서양식 기법의 목조 구조체이며 바닥은 마루 또는 다다미로 외벽은 시멘트 모르타르로 마감했다. 2층은 급경사 지붕을 활용해 다락방 형식의 공간을 만들었고 네 방향에서 모두 삼각형의 합각(合閣)이 강조되는 기하학적 형태로 구성돼 건축 당시에는 매우 이국적인 건축물로 주목받았다. 2002년 등록문화재 제9호로 지정됐으며 내부는 일본식, 외부는 서양식이 절충된 주거 건축물이다.

국내에 드문 일본식 사찰 건물, 원불교 청주교당

청주시 상당구 탑동 305에 위치한 원불교 청주교당은 본래 일제 강점기 일본 사찰의 법당으로 건축됐다. 광복이후 군부대 사무실로 쓰다가 1973년 원불교 청주교구에서 건물을 포함한 일대의 부지를 매입해 사용하고 있다.

90년대 현대식 대법당이 신축된 이후에는 소법당, 선방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등록문화재 지정도 가능했지만 교단측에서 반대해 신청하지 않았다. 원불교 청주교당은 국내에는 사례가 드문 일본식 사찰 건물로 군산 동국사 대웅전(등록문화재 제64호)에 비하면 규모와 기법이 뒤떨어지는 편이다.

기본적 건축형식은 일본식 목조건물로 시멘트 기와로 마감된 합작지붕 형식이지만 특이하게 전면 주출입구는 앞쪽으로 지붕을 더 돌출시키고 2개의 목재기둥으로 받치도록 했다. 건물내로 햇볕이나 비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일종의 차양막 기능을 하고 있는 셈이다. 내부는 기둥이 없는 통칸 구조로 넓은 홀을 형성했으며 창문은 특이하게 아래쪽은 사각형 미닫이창으로 위쪽은 사각형 소형 창문인데 외부에서 종 모양이 보이는 목재로 장식했다.

신안준 교수는 "건축적 가치로 보면 당초 문화재 등록을 하는 것이 바람직 했다. 현재 특별한 보존 활용대책없이 방치돼 있어 건축원형 훼손이 심각한 상태다. 교단에서 전향적으로 나서 문화재 등록을 통한 보존 수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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