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석학원, 육영의 뜻 둘로 갈라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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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석학원, 육영의 뜻 둘로 갈라지나?
  • 권혁상 기자
  • 승인 2012.11.28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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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자 석정 후손 '이사회 공동참여' 요구 신문광고 게재
재단 "석정 선생 생존시 개정사학법 의해 공동참여 명분잃어 "

지난 26일자 지역 일간신문에 청석학원 설립자인 '석정 김영근 선생 후손 일동' 명의의 광고가 실려 눈길을 끌었다. 주요 내용은 고 김준철 이사장의 동상건립에 대한 이의제기와 함께 자신들의 이사회 정식 참여를 요청하고 나선 것이었다. 청암 김원근(형), 석정 김영근(동생) 형제가 설립한 충북 최대 사학 청석학원이 청암계의 독주(?)로 운영되는 데 대한 반발인 셈이다.

▲ 석정 선생 후손 명의로게재된 신문광고

석정계 후손들은 지난 2006년부터 수차례 이사회 참여를 요구해왔지만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석정계 후손들의 숙부인 고 김준철 전 이사장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더이상 해볼 도리도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김준철 전 이사장이 작고했고 올해 1주기를 맞아 석정계 후손들이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힌 것이다. 따라서 과거와 같은 선언적 주장에 머물지 않고 단계적으로 수위를 높여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사태는 청암·석정 형제의 가계도를 알아야만 그 배경을 파악할 수 있다. 형제는 1924년 대성보통학교 설립을 시작으로 1947년 한강 이남 최초의 사립대학 청주대학의 모태가 된 청주상과대학을 개교했다. 현재 청석학원은 7개 학교에 1만8천여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는 도내 최대 규모의 사학재단이다. 설립이후 두 형제분이 함께 학원운영에 참여했고 자식이 없던 청암 선생은 회갑을 맞던 해에 동생 석정 선생의 3남인 고 김준철 전 이사장을 양자로 맞게 된다. 1965년 청암 선생이 작고하자 석정 선생은 친아들이자 호적상 장조카인 김 전 이사장에게 이사장직을 승계하게 된다. 사실상 친자 관계이기 때문에 아무런 잡음없이 이사장직을 양보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이후 11년간 석정 선생은 평이사로 있으면서 김 전 이사장의 학원운영을 도와주는 버팀목 역할을 했다. 하지만 1976년 석정 선생이 세상을 떠나면서 이사회에는 석정계 후손들의 몫이 배제됐다. 1970년 석정의 장손이었던 김창배(당시 31세)씨가 2년간 이사로 등재됐던 것이 마지막으로 남긴 흔적이었다. 이후 김 전 이사장은 대학 총장에 취임하면서 학내분규에 휘말리게 된다. 1993년 학내분규 당시 석정계 후손들은 학원 운영 정상화를 촉구하는 신문광고를 게재하면서 두 집안의 갈등이 외부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안팎의 시련에 직면한 김 전 이사장은 1994년 대학 총장직을 내놓고 재단운영에 전념했다. 이후 정용태·이광택 총장을 거쳐 2001년 장남 김윤배 박사가 대학총장으로 취임해 3연임하고 있다. 김윤배 총장 체제 이후에도 석정 후손들은 세차례에 걸쳐 이사회 참여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으나 묵살되고 말았다.
이에대해 2009년 본보 취재진과 만난 한 인사는 “김 전 이사장이 늦게 가정을 꾸려 36살에 김윤배 현 총장을 낳았다. 사촌형들과 10살~20살까지 차이가 나다보니 김 전 이사장이 조카들의 참여를 기를 쓰고 막았던 것 같다. 더구나 자신은 양자로 왔고, 두 형의 조카(男)들이 5명이나 되다보니 더욱 경계심이 컸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특히 2009년에는 정부기록보존소(현 국가기록원)에서 찾아낸 법인설립 당시의 허가서류와 법인정관 등 자료를 공개했다. 석정 선생이 학교설립에 형 못지않게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과 두 집안이 동일한 비율로 참여키로 결의했음을 입증하는 내용이었다.

1935년 조선총독 우가끼 명의로 된 ‘재단법인 설립허가원’에 따르면 석정‘김영근’에게 교부됐고 이사장 인가는 청암‘김원근’으로 기재됐다. 석정이 실무적인 활동을 맡아 하면서 앞자리엔 형 청암을 내세웠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밖에 법인 설립당시 정관 제3장 11조에는 이사의 수를 총 10명으로 정하면서 ‘본 법인의 설립자인 김원근, 김영근 또는 그 자손으로서 각각 그 집의 호주인자 2인’, ‘이사회에서 선정한 자 5인, 본 법인이 경영하는 학교에 재임중인 학교장 3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두 집안의 공동참여를 정관에 못박아 놓은 셈이다.

당시 석정계는 손자 5명이 모여서 10가지 서약을 담은 서약서를 만들어 날인하기도 했다. 내용은 ‘조부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 공동 대처하고 이사회에 참여하되 동시에 들어가거나 순번을 정해 교대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집안의 좌장인 김 전 이사장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이사회 참여는 또다시 무산됐다. 결국 김 전 이사장은 조카들의 오랜 숙원을 해결해 주지 못한 채 지난해 12월 작고했다.

석정 후손들은 나름 '조용한 해결'을 기대했지만 숙부 사후에도 상황변화가 없자 동상 건립을 계기로 사회적인 공론화를 시도한 것으로 풀이된다. 결정적으로 지난 10월말 개방이사 3명 선임 과정에서 장준호 전 부총장, 박원규 총동문회 부회장, 황성주 변호사 등 모두 친재단 인물로 채워지자 석정계의 박탈감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대해 석정의 손자인 충북일보 김현배 회장은 "우린 개방이사를 뽑는다는 것도 몰랐다. 이런 식으로 이사회를 거수기처럼 만들어선 안된다. 오랜기간 숙부님과의 관계 때문에 참아왔지만 이렇게 구태의연하게 학원을 운영한다면 더이상 묵과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신문지면을 통해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신문광고에서 논란이 된 부분은 설립정관상 '김원근, 김영근 또는 그 자손으로서 각각 그 집의 호주인자 2인'을 이사회에 참여시킨다는 대목이다. 이에대해 재단측은 "60년대 개정사학법에 친인척들의 이사진입을 제한하는 규정이 만들어지면서 정관은 그때 사실상 개정된 것이다. 당시 석정 선생도 이사로 참여하셨기 때문에 후손들의 주장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현배 회장은 "개정사학법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한 무지한 주장이다. 개정사학법상 설립자 친인척은 이사회 1/4이하로 참여할 수 있다고 명시됐다. 따라서 2명이 참여할 수 있는데 왜? 석정 후손들만 36년간 일방적으로 배제했느냐를 문제 삼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 김준철 전 이사장 동상 제막 반대 이유는?>
석정계 후손들은 신문광고를 통해 고 김준철 전 이사장 동상제막에도 이의를 제기했다. 설립자인 두 형제분과 동격으로 제작해 건립하는 것은 '자손의 도리'가 아니라는 것. 이들은 광고문안을 통해 "고 김준철 숙부님의 동상은 흉상도 아니고 설립자 두 분 동상과 동격으로 제작되고 있다. 결코 설립자 두 분의 위업과 동격의 새로운 동상이 존재할 수 없다고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고인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도 "인재육성의 소명아래 명예스러운 학교운영을 하셨는지도 시간을 두고 후대가 판단하여 결정해야 할 일"이라며 동상 제막을 보류하도록 요구했다.

한편 재단측은 "고 김 명예총장의 공로는 두 설립자 못지 않게 크다"며 동상 제막식을 예정대로 오는 30일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대해 석정 후손측은 "우린 숙부의 흉상을 제작하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설립자 두분에 버금가는 동상이었다. 위치도 설립자 동상 바로 뒤 법과대 교정 중심이다. 총장재임시 학내분규로 관선이사 체제까지 불러들였는데...그 공로가 설립자 못지않다는 주장이 과연 제 정신으로 할 소리인지 묻고 싶다"

재단측은 "설립자 동상보다 규모를 작게 해 별도 장소에 설치하는 것이고 추모사업회가 결정한 사안이지 재단에서 관여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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