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검은바위성(黑城)비밀<제2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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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검은바위성(黑城)비밀<제29회>
  • 이상훈
  • 승인 2004.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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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구신화스믈아홉번째이야기
"특히, 범삭이 네가 알아서 잘 해야돼! 놈을 최대한으로 안심시켜놔야만 한다구!"

"알았습니다."

"나중에 실수를 했다느니 뭘 어쨌다느니하면서 구차하고 치사스럽게 변명하던지 하면 크게 후회할 일이 벌어질 거야. 하늘 쳐다보기도 귀찮을 정도로 아주 호되게 다루어줄 거라고... 알았지?"

"예. 예...."

촌장 아들은 평소 그의 말버릇인지 아니면 정말로 그가 못 미더워서인지 똑같은 말을 재삼재사 신경질이 날 정도로 자꾸 반복하여 범삭에게 다짐을 주었다. 그럼에도 범삭이 불평 한마디없이 고분고분 대답하는 걸 보니 촌장 아들의 위세가 대단하긴 대단한 모양이었다.

"자, 이제 우리들이 비밀스러운 모의를 마치고 났으니 밋밋하게 그냥 헤어질 수야 없지. 각자 맹세하기로 하자꾸나."

촌장 아들이 다시 또 주접스럽게 한마디 덧붙였다.

"맹세합니다!"

"맹세합니다!"

"어허! 그냥 맹세하기만 하면 뭐하나?"

촌장아들이 여전히 맘에 들지 않는듯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죽음으로서 맹세합니다!"

'목숨걸고 맹세합니다!"

"이 생명을 다바쳐 맹세합니다!"

모두들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외쳤다.

"후후후... 좋았어!"

그제서야 촌장 아들은 흡족한듯 입가에 미소를 흘렸다.

"자, 그리고... 혹시 또 모르는 일이기에 내가 또 한마디 하겠거니와, 만약 우리들이 모의했던 이런 비밀 내용을 어느 누가 어디가서 함부로 발설하든가 하면 내 결단코 용서치 않을 거야. 자, 이런 식으로 내가 그의 숨통을 끊어주고 말겠어!"

촌장 아들은 이제 본격적으로 주접을 떨려는지 칼을 쑥 뽑아들어가지고 마치 허공을 잘라내듯이 휘익 그어보였다.

"아, 그래야지요. 그렇게 의리없이 구는 놈은 당장 베어 죽여도 싸지요."

"그럼요."

"지당한 말씀이옵니다."

모두들 촌장아들의 말에 경쟁하듯이 또 아부를 해댔다.
촌장 아들은 이렇게 말해놓고도 성이 안 차는지 이번에는 자기 등 뒤에 메고있던 전대(箭帶)에서 화살 한 대를 쑥 뽑아들었다.

"내가 다시 말하건대 지금 우리끼리 이런 비밀스러운 곳에서 비밀스럽게 얘기한 이런 비밀스러운 것을 어디가서 함부로 지껄여대는 자가 있다면 나는 단지 칼만으로 혼을 내주지 않겠어. 그 방정맞은 혀까지도 혼을 내주어야지. 오십여보 떨어진 곳에 놈의 몸을 꽁꽁 묶어서 세워놓은 뒤, 그 방정맞게 놀렸던 혀를 입밖으로 쏙 내밀게 하고는 그대로 이 화살을 쏘아 꿰뚫어버릴 거라구...."

촌장 아들의 으스스한 이 말에는 어느 누구 하나 함부로 혀를 놀려 아부하려 들지 않았다.
허기야 방정맞게 놀리는 혀를 화살로 쏴서 꿰뚫어버리겠다는 말을 듣고 어느 누가 감히 혀를 놀릴까..

지금까지 몰래 엿듣고있던 벌구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뭐 이렇게 우수꽝스러운 놈이 다 있을까...
보아하니 지금 이곳에서 나온 비밀같지도 않은 비밀스런 얘기를 방정맞게 제일 먼저 혀를 놀려 발설시킬만한 놈이라곤 바로 이 촌장 아들 한놈일 것 같은데,
그렇다면 자기가 자기 화살을 쏘아 방정맞은 자기 혀를 꿰뚫어버리겟다는 건가?

벌구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놈일까 하도 궁금하여 다시 한번 자세히 촌장 아들 놈의 상판떼기(?)를 살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20대 초반쯤의 나이에, 뭘 그렇게 잘도 쳐먹었는지 아둔해 보이는 그의 얼굴은 볼따구 살이 칙칙 늘어질 정도로 살이 올라있었고, 한마리의 거대한 통돼지 같은 뚱뚱한 그의 몸집은 완전히 비육돈(肥肉豚)을 연상시켰다.
그런데 벌구가 한편 신통하게 여기면서도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는 것은 어떻게 저런 몸집으로 말을 타고 여기까지 올 수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좌우간 별일은 참 별일이로다!
저런 게 부모를 잘 만나 저렇게 갓잖은 행세를 해가며 지내다니...'

벌구는 아무튼 그가 하는 꼬락서니를 조금더 지켜보기로 하였다.

"자, 저기 보이는 나무있지? 그 나무 가지를 맞출 거다."

촌장 아들은 꺼내든 화살을 갖은 인상을 다써가며 활에 잰 다음 멋지게 시위를 당겼다.

휘이익.....

시위를 떠난 화살은 마치 새한마리처럼 날아가 꽂혀졌다.
그러나 화살이 꽂혀진 곳은 그가 말한 나무가지가 아닌 그에 훨씬 못미친 땅바닥이었다.

"어라? 왜 조거밖에 안날아갔지?"

촌장 아들은 크게 실망하는 눈빛으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어댔다.

"아마, 바람이 별안간 불었나 봅니다."

옆에 있던 자가 가만히 보고만 있기에 민망했던지 한마디 거들었다.

"아, 아니야. 바람은 그다지 불지 않았어. 다만 내 실수로... 으음... 그렇다면..."

촌장 아들은 다시 용을 써가며 화살을 재어가지고 활을 또 쏘았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이번 화살 역시 멋지게 날아가다가 멋지게 땅바닥에 꽂혀지고 말 뿐이었다.
촌장 아들의 얼굴에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였다.
그러나 주위에 있던 자들의 아부가 또다시 시작되었다.

"아,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저 정도 강력한 화살이라면 철갑옷일지라도 대번에 꿰뚫겠습니다."

"그토록 강력한 활대를 구부려서 쏘셨으니 어련하겠습니까? 그러니 단단한 잔돌이 박혀있는 땅바닥에 두부모 헤집듯이 콕콕 들어와 박히지요."

그러나 촌장 아들은 자기를 한껏 추켜주는 이런 달콤한 말에 기분이 썩 좋은 것같지 않았다.

"으음... 이번만큼은, 이번만큼은 내가 제대로 한번 맞춰보도록 하겠어. 잘 봐! 저기 보이는 나무 가지가 있지...."

촌장 아들은 또다시 온갖 주접을 다 떨어가며 활의 시위를 당겼다.
다행히 이번에 날아간 화살은 맥없이 도중에 떨어지지 않고 곧장 수풀을 향해 날아갔다.

"어떻게.... 맞았나?"

촌장 아들은 한쪽 손을 이마 위에 살짝 얹어가지고 방금 쏜 화살이 날아간 곳을 쳐다보며 물었다.

"글, 글쎄요. 맞은 것 같은데요?"

"제가 보기엔 맞았습니다!"

옆에 있던 자들이 저마다 고개를 쭉 내밀어가지고 말했다.

"으음... 살짝 비껴갔구만... 그럼...."

촌장 아들은 다시 활대를 구부려 화살을 또 날렸다.

휘이익~

경쾌한 바람소리를 내지르며 촌장 아들이 쏜 화살이 곧장 앞으로 날아갔다.

"맞 맞았나?"

촌장 아들이 다급하게 물었다.

"맞은 것 같기도...."

바로 이때였다.
갑자기 화살이 날아간 수풀 속에서 요란한 말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촌장 아들이 타고왔던 백마가 몸부림을 치듯 펄쩍펄쩍 뛰어댔다.

"어? 어? 왜 저래?"

"아앗! 말 엉덩이에 화살이 꽂혔는가봅니다."

옆에 있던 자가 갑자기 소스라치게 크게 놀라며 외쳤다.

"뭐, 뭐야? 아이구... 아이구! 내, 내가 내 말을 쏘았어! 아이구!"

촌장 아들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황급히 앞으로 달려나갔다.
곧이어 그의 일행 모두 뒤따라갔다.

'후후후... 저렇게 줏대없고 체신머리 없는 인간은 내가 꽤나 오래간만에 보는구만...'

이런 우수꽝스러운 장면을 처음부터 줄곧 지켜보고 있던 벌구는 여유있는 미소를 씨익 한번 지어보고는 조금 전에 여우리와 함께 물을 마셨던 곳으로 천천히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아앗! 무, 무슨 짓을 하는 거요?"

무심코 앞을 쳐다보던 벌구는 여우리를 보자마자 갑자기 화들짝 크게 놀라 외쳤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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