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검은바위성(黑城)비밀<제3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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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검은바위성(黑城)비밀<제31회>
  • 이상훈
  • 승인 2004.10.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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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구신화서른한번째이야기
여우리는 잠시 입술을 움찔거리며 뭐라고 말하려하다가 다시 입을 꼬옥 다물었다.
벌구는 지금 이런 여우리의 모습이 너무너무 귀여워 그대로 앙!하고 깨물어주고 싶었다.

‘역시, 미인은 미인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미녀가 하필 이런 곳에서 얼굴에 흙칠을 한 채로 살아가고 있을까....’

벌구가 그녀의 미모에 재삼재사 감탄하고 있을 때 잠시 숨을 돌려 정신을 추스리고 난 여우리가 천천히 입을 다시 열었다.

“제가 그걸 다 말씀드리고 나면... 벌구님께서 이곳을 바로 떠나시려는 건 아니시죠?”

여우리는 이렇게 말하고는 벌구를 빤히 올려 쳐다보았다.
티없이 맑고 고운 그녀의 두 눈!
그녀의 예쁜 두 눈동자 안에는 벌구의 모습이 담겨져 있었다.

“하하하... 참 이상하군요! 내가 이곳을 떠나고말고는 순전히 내 맘이요. 그런데 왜 그런 얘기를 자꾸만 내게 하는 거요?”

벌구는 이렇게 말하며 슬며시 두 눈의 초점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너무나 예쁜 그녀를 그냥 그대로 맥없이 쳐다보고만 있다가는 자칫 그만 실수로 어떤 일을 저지르게 될는지 벌구로서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벌구님! 이런 약속을 해주세요! 지금부터 제가 벌구님께 들려드리는 얘기를 벌구님께서는 끝까지 모두다 들으시겠다고 말예요. 그리고 그 얘기를 다 들으시기 전에는 절대로 떠나지 않겠다고 말예요."

여우리가 애절한 눈빛으로 벌구를 쳐다보며 물었다.

“허허.. 약속치고는 그렇게 어렵거나 과한 약속은 아닌 것 같구만... 으음, 내, 그렇게 하리다.”

벌구가 두 팔짱을 다시 끼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정말이예요?”

"그렇소. 어서 얘기해 보시오"

"그럼, 오늘밤..."

"내게 들려주려는 얘기가 꽤나 긴가 보구만... 아무튼 여우리 당신 얘기가 끝날 때까지 당신이 사는 마을에서 오늘밤 지내고 가겠오.”

“그런데... 혹시 위험하지 않을까요? 하늘말촌 촌장아들 호랍이가 벌구님이 왔다는 것을 이미 눈치챘고, 우리 마을 범삭이와 뚝쇠가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터인데....”

갑자기 여우리가 묘한 미소를 흘리며 뭔가 걱정이 된다는 듯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그런 건 걱정마시오!"

"하지만, 천하에 둘도 없는 장사라 할지라도 잠을 자다가 별안간 당하게 되면..."

“허허... 글세, 그런 걱정일랑 아예 접어두시라니까... 어쨌든 내 오늘밤 당신 마을에서 편안히 잠을 자겠소."

“네,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가본데... 그러면..."

여우리는 약간 실망스러운 빛을 보이며 막 다음 말을 이어나가려고 마른 입술에 침을 축였다.

“잠깐! 밖의 사정을 내가 한번만 더 살펴보고 오겠오.”

벌구는 이렇게 말하며 아까 그곳으로 다시 가려다가 힐끗 고개를 다시 돌리며 여우리한테 말했다.

“여우리! 내가 없는 동안에 또 무슨 짓을 벌이는 건 아니겠죠? 난 원래 남의 얘기를 들으면서 물을 마시는 버릇이 있어서..."

“알, 알았어요! 이제 아무일 없을 터이니 얼른 다녀오세요.”

여우리가 얼굴을 빨갛게 다시 물들이며 대답했다.
벌구가 아까 그곳으로 다가가 성벽 틈으로 밖을 살짝 내다보니 역시 예상했던대로 촌장 아들 호랍 일행은 백마의 엉덩이에 꽂혀진 화살을 뽑아내느라 안간힘을 한참 쓰고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백마가 히히힝거리며 이리저리 뒷발질을 마구 쳐대는 바람에 말엉덩이에 꽂혀진 화살을 뽑아내기가 여간 용이하지 않았다.

“안되겠다! 말 엉덩이에 꽂힌 화살은 나중에 뽑아내기로 하고, 일단 말을 데리고 가야겠다.”

촌장 아들 호랍이의 명령에 따라 그 일행은 다친 백마를 살살 달래가며 끌고 가기 시작했다.

'아이고, 아이고.... 거 얼마나 아플고....'

호랍은 그 육중한 체격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조그만 여자애처럼 훌쩍거리며 화살 꽂힌 백마 뒤를 따라갔다.

'허허... 보자보자하니 참으로 용렬한 놈이로구나!'

벌구는 씁스름한 미소를 삼키며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촌장 아들 일행이 다친 백마를 끌고서 그들이 아까왔던 그길로 다시 돌아가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해 보고나서야 비로소 벌구는 여우리에게 다시 돌아왔다.

“자, 이제 얘기해 보시오!”

벌구가 말했다.

“네. 해드리지요."

"기왕이면 솔직히, 숨김없이, 그리고 남김없이 모두다...."

"그러지요. 숨김없이, 남김없이, 모두다... 그런데... 아까 그 약속을 해주시는 거죠?”

여우리가 두 눈을 반짝거리며 벌구에게 물었다.

“약속?”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제가 하는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시기로 하는 약속, 그리고 벌구님께서 당장 떠나시지 않겠다는 약속 말이에요.”

“으음, 좋소. 그렇게 하기로 합시다."

벌구는 자기 딴엔 크게 인심이라도 쓰는 것처럼 대답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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