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금강산, 오~~금강송, “여기가 바로 미인 천국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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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금강산, 오~~금강송, “여기가 바로 미인 천국이구나”
  • 한덕현 기자
  • 승인 2005.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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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자존심 북한 금강송 이야기
금강송은 소나무과의 지존으로 통한다. 전통 사찰 공사에서도 금강송은 최고로 대접받는다. 남한에서도 금강송의 자생지나 육묘장이 종종 언론을 타지만 금강송의 원산지는 역시 북한이고, 그 중에서도 금강산의 금강송이 원조다. 금강산을 찾는 남쪽 관광객들이 감탄을 연발하는 대상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금강산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시선을 압도하는 금강송 숲은 단연 백미다.

북한이 현대 아산에 개방한 구룡연 코스를 가다보면 입구 쯤에서 그야말로 팔등신 미인들의 쭉쭉 뻗은 미끈한 하체를 연상시키는 소나무 숲을 만나게 된다. 창터솔밭이다. 바로 옆으로는 과거 시인 묵객들이 맘껏 홀렸던 신계천이 많은 수량으로 흐르기 때문에 장관이 더하다. 이곳의 금강송은 수령 50~100년 짜리가 주종을 이루는데, 아름드리 크기에 높이마저 20~30m를 넘어섬으로써 그 생김새가 말로는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딱 바라보는 순간 나무가 아니라 절세미인들의 군무를 보는 것같다. 실제로 금강송은 ‘미인송’으로 불리며 숱한 얘기들을 낳고 있다.

금강송은 우선 촘촘한 나이테로 다른 것과 구별된다. 같은 소나무과에 비해 나이테가 3배나 조밀하고, 송진성분도 특히 강하다. 때문에 재질이 강하면서 쉽게 썩지 않는 특징으로 사찰등 각종 건축에 최고 목재로 사용됐으며, 특히 과거엔 다리나 배를 만드는데에도 가장 고가의 재료로 대접받았다. 금강송은 붉은 색을 띤다고 해서 적송 혹은 백적송으로 불리기도 하며 옛날엔 임금님의 관을 짠 것에 기인해 황장목, 춘양목으로 입에 올려지기도 했다.

역시 금강송이 많이 자생하는 백두산과 장백산 지역에선 장백송으로 불린다. 북한 역시 이곳 창터솔밭 금강송을 천연기념물 제416호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창터솔밭은 일제말기에 여지없이 수난을 당했다. 송진성분이 많기 때문에 일제가 전쟁에 활용키 위해 금강송 밑둥을 잘라 송진을 채취해 가져 갔으며 역시 송진축출 목적으로 많은 나무를 도끼로 찍었던 관계로 자연고사되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그 잔재가 더러 남아 가슴을 아프게 한다. 최근엔 병충해를 입은 많은 금강송이 고사목 상태로 방치돼 체계적 관리가 절실한 상황이다.

금강송을 미인송으로 부르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남한의 금강송에서도 익히 확인되는 것이지만 대개 곁가지가 없는 상태로 곧바로 곧게 성장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자태가 뛰어나다. 거기다가 큰 나무일수록 껍질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 상황에서 붉은 색을 띠기 때문에 마치 미인들의 홍조를 보는 것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똑같은 미인송이지만 자생지에 따라 색다른 느낌을 준다. 창터솔밭 등 금강산 자락에 자라는 미인송은 그 호리호리하고 거침없는 모습으로 이목구비가 수려한 키 큰 미인을 연상시키지만 금강산 내의 기암괴석에 뿌리를 내린 금강송은 비록 키는 작지만 고고하고 우아한 동양미를 맘껏 발산한다.

미인송에 관해선 한가지 내미나는 구전이 이어지고 있다.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다. 일제때 의병의 항일전쟁시 한 여 간호원이 부상병을 구하기 위해 적과 격전하다 그만 큰 부상을 입었다. 그녀는 한 그루의 곧게 뻗은 소나무에 기대 고통을 감내하고 있었는데 붉은 선혈이 그녀의 가슴으로부터 흘러 나와 나무의 색깔로 변했고, 나무의 생김새도 아름다운 간호사와 같이 변했다는 것이다. 금강송을 대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 나무로 인해 나라의 긍지와 자존심을 함께 느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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