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 직지의 세계화 전략 제대로 가고 있나]
“ 행정 5급이 운영하면 5급 박물관 수준밖에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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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 직지의 세계화 전략 제대로 가고 있나]
“ 행정 5급이 운영하면 5급 박물관 수준밖에 안돼”
  • 홍강희 기자
  • 승인 2005.04.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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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문화재청장, 청주고인쇄박물관장 행정5급이 맡는 것 꼬집어
한대수 시장, 직지 직지 부르짖으며 박물관장 하루 아침에 좌천

직지는 청주시 최고의 ‘상품’이다. 지난 1천년 동안 일어난 가장 위대한 기술적 혁명이라는 소리를 듣는 금속활자, 그 금속활자 인쇄술로 만들어진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간행물인 직지는 타 자치단체와 비교해보아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경쟁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청주시가 주창하고 있는 것이 ‘직지의 세계화’ 다. 현재 청주시에서는 직지를 이용한 각종 사업과 축제, 전시가 이뤄지고 있고 ‘모든 길은 직지로 통한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직지의 도시가 돼가고 있다. 그러나 일부 사업과 축제, 전시를 들여다보면 직지의 세계화 전략이 잘 못 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전문가는 빠지고 ‘선무당’들이 판치는가 하면 명확한 마스터플랜도 없이 그 때 그 때 일회성 행사로 그치고 마는 행사나 전시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충청리뷰가 청주 고인쇄박물관의 위상, 직지축제의 허와 실, 청주공항내 직지홍보관 무엇이 잘못됐는가 등을 취재했다.

   

직지와 한국의 고인쇄문화를 연구하는 청주고인쇄박물관은 우리나라 인쇄문화발달사를 볼 수 있는 국내 유일의 박물관이며 청주를 대표하는 박물관이다. 이 곳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을 인쇄한 청주 흥덕사지에 위치,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보여주고 있다. 고인쇄박물관은 지난 92년 충북도가 흥덕사지관리사무소로 개관했으나 2년 뒤인 94년 청주시 사업소로 이관됐다. 당시 시장이었던 나기정 미래도시연구원장은 김덕영 도지사에게 청주시에서 박물관을 활성화시키겠으니 넘겨달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피력,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개관 13년째를 맞는 고인쇄박물관은 ‘나이’에 비해 ‘내용’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을 아직도 면치 못하고 있다. 그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직제에 관한 것이다.

“전문가를 관장으로 영입하라”
지난 3월 22일 세계직지문화협회 창립기념식에 참석했던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행정5급이 운영하면 5급 박물관, 6급이 운영하면 6급 박물관밖에 되지 않는다. 고인쇄박물관은 국립박물관으로 격상되는 것보다 전문가 영입이 더 시급하다”는 요지로 고인쇄박물관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박물관에 결정타를 날린 유 청장의 이 날 발언은 많은 사람들에게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그 만큼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현재 고인쇄박물관장의 직급은 행정 5급이다. 규정상으로는 행정직과 학예연구직이 맡을 수 있으나, 청주시 학예연구직 공무원 중에서 5급인 학예연구관이 없기 때문에 줄곧 행정5급이 관장직을 차지해 왔다. 유럽에서는 박물관장을 뽑을 때 박사학위를 소지한 전문가로 제한하고, 매우 엄격한 과정을 거치는데다 국민들의 문화적 수준이 높기 때문에 박물관장의 위상이 매우 높다는 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국내에서도 요즘 지자체가 운영하는 도립 및 시립박물관장을 행정직 공무원에서 개방형직위로 바꿔 전문직을 공채하는 추세로 가고 있다. 강릉시립박물관, 서울시립박물관, 경기도립박물관 등이 이미 관장직을 개방하고 전문직 공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고인쇄박물관도 하루빨리 전문직을 관장으로 영입해야 한다는 여론이다. 직지의 세계화를 부르짖고, 실제 직지를 세계화시키려면 외국의 박물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하는데 행정5급의 직제로는 한계가 많다는 게 많은 사람들의 말이다. 심하게 말해 전국박물관장들이 모인 자리에 가더라도 행정직 공무원들은 전문상식이 부족해 대화가 안되고, 외국의 박물관 관계자들은 행정직이 맡고 있는 한국의 직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

관계자 모씨는 이에 대해 “외국에 나가면 박물관장의 자리를 우선 배치하는데 이에 부응하지 못해 여간 창피한 게 아니다. 고인쇄박물관이 이대로 갈 경우 대외적인 이미지는 계속 추락할 것이다. 청주를 대표하는 것이 직지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직지를 보러 박물관으로 간다. 그런데 이 박물관을 대표하는 사람이 비전문가라는 사실은 관람객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한다. 관장이라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계속 끄집어내 실질적으로 직지를 세계화하는 전략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나 이제까지 그래 왔는가. 전혀 그렇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지난 2003년 직지의 세계화·청주의 세계화전략 용역을 수행한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은 최종 보고서에서 고인쇄박물관의 위상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이들은 “고인쇄박물관이 직지의 세계화·청주의 세계화 사업의 추진주체 역할을 하고 직지 및 인쇄문화 관련 연구, 교육, 국제교류를 수행하려면 직급 상향 조정이 있어야 하고 전문성 확보를 위한 민간 전문가 채용 통로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기 1년여 남은 공무원 관장으로
사정이 이러함에도 한대수 시장은 지난 2월 최창호 전 고인쇄박물관장을 상수도사업소 업무과장으로 발령냈다. 유물 기증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는 청주시의회의 질책을 받고 문책성 인사를 단행했다. 그러나 최 전 관장이 경질될 정도로 중대한 과실을 범했는가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시의회에 보여주기식 인사가 아니었느냐는 말들도 잇따랐다. 더욱이 최 전 관장은 오는 10월 독일에서 열리는 ‘2005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준비하고 있었고, 이 전시회에 우리나라는 주빈국으로 참여하기로 돼있었다. 고인쇄박물관은 단순히 참여하는 게 아니고 한국의 고인쇄문화에 관한 전시 부분을 맡았기 때문에 일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한시장은 최 전 관장 자리에 서재학 전 상수도사업소 업무과장을 앉혔다. 두 사람을 맞바꾼 것이다. 그러나 서 관장은 현재 정년퇴직이 1년여 밖에 남지 않았다. 서관장의 능력 여하를 따지는 게 아니고 내년에 관장이 또 바뀔 수밖에 없다는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를 두고 뜻있는 사람들은 “청주시가 입만 열면 직지를 외치는데 관장을 그렇게 쉽게 발령내고, 또 다음 관장도 금방 퇴직할 사람을 데려오느냐”며 “이런 관행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관장을 임기가 보장된 전문가로 하거나 당장 어렵다면 행정직 중 공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기정 전 시장은 시장 재임시 고인쇄박물관장을 3급으로 격상시키고 학예연구사를 증원시킬 것을 행자부에 승인 요청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행자부로 가기 전 단계인 충북도에서는 3급을 4급으로 한 단계 낮춰 요청했지만 결과적으로 박물관 내에 시설계를 신설하는 것으로 매듭지어졌다. 물론 나중에 학예담당이 신설됐으나 박물관은 성격상 관리계와 시설계 인원을 최소화하고 학예연구직을 증원하는 것이 맞는다는 게 중론이다.

현재 고인쇄박물관의 인적 구성은 관장 외에 시설계 직원 3명, 관리계 5명, 학예직 3명으로 이뤄져 있다. 이를 보더라도 박물관의 핵심인 학예직 인원이 가장 적은 편이다. 더욱이 학예직 3명 중에는 계약직 1명까지 포함돼 있다. 따라서 항간에서는 시설계와 관리계를 합치고 학예직을 최대한 늘려 ‘연구하는 박물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관계자 모씨는 “고인쇄박물관장을 개방형 직위로 바꾸고 전문가를 영입하려면 청주시 조례를 바꾸면 된다. 그러려면 시장의 의지와 시의원들의 문제의식이 있어야 한다. 절차상으로 어려운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직지의 세계화는 곧 고인쇄박물관의 세계화이기도 하다”며 한시장의 결단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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