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충북대] 흡수통합이 구성원들의 가장 큰 우려
상태바
[흔들리는 충북대] 흡수통합이 구성원들의 가장 큰 우려
  • 한덕현 기자
  • 승인 2005.04.2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실체보다는 장밋빛 기대만 갖는게 문제

충북대와 충남대는 박정희정권 시절인 1962년 이미 한번 통합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지금의 통합추진이 전혀 생뚱맞은 것만은 아니다. 당시 군사정권에 의해 충청대학이라는 이름으로 강제 통합됐다가 1년만에 다시 원상복구된 것이다. 통합의 명분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국립대 자체의 경쟁력 확보였지만 대학 본연의 기능과 지역 정서를 무시한 인위적 통합은 결국 오래가지 못했다.

   

현재 충북대와 충남대의 통합을 반대하는 세력들도 신방웅총장의 시도에 대해 원천적인 불신을 갖지는 않는다. 지방대학의 위기는 이미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고, 조만간 대학 정원이 지금의 50% 수준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경고음은 지방대에겐 특히 묵시록처럼 다가 오기 때문이다. 충북대 자체적으로도 이미 여러 난맥상이 도출됐다.

간간이 발표되는 전국 대학의 평가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데다 최근 몇 년간은 매년 적자 신기록을 수립할 정도로 재정상태가 악화됐다. 교수들의 신분보장으로 관료화될대로 관료화된 충북대의 변혁을 위해선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지역사회에서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90년 대 후반에 대학설립의 자율화와 준칙주의를 내세워 마구잡이로 대학설립을 허가해 오다가 발목이 잡힌 정부가 뒤늦게 대학의 통폐합 등 강력한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는 것도 지방대학으로선 위기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광역자치단체간 거점 종합국립대학의 통합시도는 유사 이래 처음으로 이에 대한 기대감도 많은 게 사실이다.

현재 학교측이 밝히는 통합의 명분은 아시아 10위권, 세계 100위권의 명문대학으로 도약하는 것으로, 이것이 이루어진다면 가칭 ‘한국대학’으로 논의되는 충남북 통합국립대는 오는 2020년쯤 서울대를 능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굳이 이런 청사진에 현혹되지 않더라도 충북대의 근본적인 구조조정의 필요성은 모두가 인정한다. 하지만 충남대와의 통합은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것이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한 교수는 “대학간 통폐합이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도내 군소 국·공립대간의 통합이 우선이지 광역자치단체간의 통합은 정부방침에도 어긋난다. 지방에 난립하고 있는 이른바 ‘없어져야 할 대학들’을 과감하게 통폐합하라는 것이지 나름대로 경쟁력 있는 거점대학을 통합해 몸집을 키우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교육부가 자신들의 명분을 얻기 위해 원칙없이 충북대와 충남대 통합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난했다.

통합 반대파들이 내거는 이유는 대략 이렇다. 통합에 대한 정부의 지원방침이 현실성이 없는데다 충북대는 충분히 독자생존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현재 충남대가 처한 현실, 그리고 지역정서 등이 통합의 명분을 잃게 한다고 지적한다. 충북대와 충남대가 1차 시안에서 밝힌 통합비용은 단기 4000억원, 장기 8000억원 등 모두 1조2000억원으로, 이에 대해 대학측은 지금까지 “향후 국고배정시에 시설자금 특별배려와 통합소요비용 지원, 구조개혁자금 및 국고시설자금 지원을 교육부와 협의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남겼다.

정부의 특별배려를 기대하는 것이지만 지금까지 구체적으로 보장된 것은 하나도 없다. 이와 관련해 현재까지 가시화된 정부 예산은 교육부 구조조정자금 800억원과 국가균형발전특별위원회 회계 3200억원 정도다.

이 중에서 교육부 구조조정자금 800억원은 그나마 현실성이 있는 것으로, 충북대 충남대 통합시 일단 200억원을 지원받는 정도는 교육부와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더라도 천문학적인 통합비용을 충당하려면 관련 정부예산을 다 끌어 와도 부족할 판인데, 과연 정부가 충북대 충남대 통합에만 올인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당연히 생긴다.

한 통합반대교수는 “우리같은 서민이 남한테 돈을 꾸려고 해도 근거없이는 한푼도 못 얻는게 현실인데 하물며 이러한 엄청난 돈이 누가 말로써 약속했다고 가능하겠는가. 대학측이 너무 환상에 젖어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충북대 백기엽기획협력처장은 “교육부의 얘기는 먼저 확실한 계획과 청사진이 나와야 관련 예산을 세우지 않겠냐는 것이다. 사실 계획없는 예산은 없다. 일단 두 대학간 협의를 거쳐 충분한 시안이 마련되면 향후 교육부와 협의해 관련 예산 확보를 문서화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충북대와 충남대의 통합은 결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없이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때문에 일각에선 과거 서울대의 사례처럼 입법 차원의 구체적 지원책이 강구돼야 통합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내 놓는다. 1970년 서울대가 지금의 관악캠퍼스로 이전, 통합할 때는 정부가 ‘서울대학교시설확충특별회계’를 수립해 예산확보를 순조롭게 할 수 있었다. 이같은 지적에 현재 충북대측도 가칭 충북대 충남대통합 특별회계 수립 내지 통합설치령 제정 등의 필요성을 공감, 물밑 접촉을 시도하는 것으로 전해졌으나 성과는 미지수다. 대학의 구조조정은 꼭 충청권만의 현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교수는 아주 의미심장한 말을 전했다. “충북대 충남대 통합소식에 처음 교육부도 반신반의했다. 안병영 전교육부총리는 양측이 서로 기존 캠퍼스를 유지한채 신행정수도의 대학부지에 통합대학의 본부를 설치하는 안에 대해 부담스러워했다. 때문에 양 대학의 기존 캠퍼스를 매각하는 방안이 조심스럽게 얘기된 것으로 안다. 그러나 김진표교육부총리로 바뀐 이후엔 교육부의 생각이 더 적극적이다. 아예 양 대학의 기존캠퍼스를 유지한 채 연기 공주에 들어 설 행정중심복합도시에 대학본부를 신설하는 방안을 주문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조건은 당초보다 더 좋아진 것이다. 교육부가 그만큼 통합을 원한다는 반증이다. 반신반의하던 교육부가 이렇게 나온 배경은 분명해 보인다. 충북대와 충남대 양 총장이 너무 적극적으로 나오니까 혹시나 하면서도 믿었던 것이다. 지금은 아마 충북대와 충남대 통합을 대학구조조정의 상징적 사례를 만들려는 의욕이 강할 것이다. 통합비용 충당에 있어서도 교육부는 반드시 현 캠퍼스의 활용을 염두에 둘 것이다. 궁극적으론 매각이다. 한정된 국가예산을 마냥 충청도에만 쏟아 부을 수는 없다. 교육부가 요구한 게 아니라 대학측에서 먼저 통합을 원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진행된 상황에선 충북대 충남대 모두 없었던 일로 치부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더 솔직히 말해 두 대학 총장은 진퇴양난의 입장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한나라당 이주호의원(비례)이 충북대 충남대 통합논란에 대해 김진표교육부총리에게 질의를 한 적이 있다. 이의원이 “대학의 구조조정은 단순히 기업들의 M&A와는 다른 특수성이 있는데도 단순 경제논리에 따른 구성원들의 합의를 무시한 통합이 가능한가. 교육부가 실적을 의식해 너무 무리하게 밀어붙이는게 아니냐”는 취지의 질문을 하자 김부총리가 “통합이 대학 구조조정의 전부는 아니다. 설령 통합하더라도 구성원들의 충분한 합의와 자율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정부가 앞장서 관여할 생각은 없다”고 답변했다는 것. 이는 결국 충북대 충남대간의 통합추진도 구성원들이 동의하지 않을 경우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