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독감 파동때 설비투자 늘린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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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독감 파동때 설비투자 늘린 사장님
  • 김진오 기자
  • 승인 2006.06.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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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창 시원식품(주) 대표의 ‘선견지명’ 경영
사업 꿈꾸던 전자공학도, 육가공업에 전공 접목

진천 시골에 근사한 기업 경영을 꿈꾸던 학생이 있었다. 대학에서 자동화기기 분야를 공부한 뒤 대기업에 취업해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젊은이는 사업가 꿈을 한시도 접지 않았다.

결국 사표를 내 던지고 2500평의 터에 공장을 지었는데 그가 선택한 업종은 전자도 자동화기기도 아닌 오리훈제공장이었다. 그의 성공을 장담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육가공사업에 아무런 경험도, 지식도 없는 그에 대해 무모한 것 아니냐는 우려의 말이 쏟아졌다.

더욱이 때마침 불어닥친 조류독감으로 문을 닫는 업체들이 속출했고 오리나 닭요리 식당은 손님이 끊긴 채 파리만 날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채수창 시원식품(주) 대표는 창업 5년 만에 보란 듯이 연매출 50억원을 올리는 육가공업계 중견기업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시원식품이 생산하는 오리훈제, 가마구이, 오향수육, 오리불고기 등은 이미 오리육가공 제품의 대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직장인-이동통신대리점-오리훈제 공장 사장

   
채 대표는 사표를 낼 때까지만 해도 평범하고 안정적인 직장인이었다. 청주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한뒤 (주)정식품에 입사해 자동화기기 분야에 근무하다 뻐꾸기시계로 유명한 카이저산업(주)으로 옮겨 개발팀장까지 지냈다.

90년대 전국을 강타한 뻐꾸기시계가 바로 채 대표의 손에서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품고 있던 사업가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낙향해 이동통신대리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을때 마다 사업을 하기 위한 훈련이라고 생각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사장이 되는게 꿈이라 이때다 싶어 회사를 그만두고 자영업을 하게 됐다.”

채 대표의 마케팅 전략은 ‘무식하게 뛰는 것’ 외에는 따로 없었다. 고객이 될 만하다 싶으면 어디든 달려가곤 했다.

“호출기 대리점을 했는데 3개월만에 공로상을 받았다. 본사에서 허위개통을 의심해 감사까지 받을 정도였으니 꽤 높은 실적이었다.”

그는 자영업 성공의 자신감으로 정말로 하고 싶었던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제조업을 하고 싶었다. IMF를 거치면서 승승장구하던 오리가공업체가 부도나면서 문을 닫았는데 그 직원들과 힘을 합쳐 제대로 된 육가공공장을 차려보기로 한 것이다.”

하루 1000km 전국 누비며 판로개척
둘째 가라면 서러워했던 오리가공업체의 기술과 채 대표 본인의 자동화 설비 노하우가 합쳐져 2001년 지금의 시원식품(주)이 탄생했다.

“최고의 오리가공업체에서 경력을 쌓은 직원들의 기술은 독보적이었다. 따라서 품질은 어디 내놓아도 자신있었다. 여기에 생산공정을 대대적으로 자동화했고 그 과정에서 오리가공과 자동화 설비 노하우가 절묘하게 조화된 것이다.”

문제는 제품 판로였다. 신생 업체의 제품을 선뜻 구매하려는 고객이 드물었던 것이다. 채대표는 이 고비도 ‘무식하게 뛰는’ 전략 아닌 전략으로 하나하나 헤쳐 나갔다.

“날이 새기 전부터 유통업소, 도매상 등 전국에 다녀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전국을 누볐다. 그 당시 하루에 다닌 거리가 길게는 1000km나 됐으니 무모하다시피 뛰어다닌 것이다.”

회사 부도라는 아픔을 간직한 직원들과 신생회사를 꾸려가는 길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단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일도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회사에게는 버거운 일, 뜻밖에도 힘을 실어준 것은 채대표로부터 월급을 받는 직원들이었다.

“생산을 시작한 초기에 너무 힘들어 회사가 안정될 때까지 월급의 70%를 제안했는데 직원들은 오히려 자신들을 해고해 줄 것을 제안했다. 물론 사정이 나아지면 모두 채용하는 조건으로. 결국 한명도 빠짐없이 다시 한 식구가 됐지만 그런 직원들의 마음에 눈물이 날 정도였다.”

   
현재 보다 미래에 투자하라

직원을 내보내야 했던 회사가 설립한지 5년, 생산을 시작한지는 4년만에, 월 5만5000마리 생산에 4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중견기업으로 급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채대표의 철저한 경영철학이 주효했다.

‘어려울수록 투자하라, 신뢰를 조금이라도 훼손하는 일은 금하라’는 말을 신념처럼 갖고 있는 것이다.

이는 현재보다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것으로 창업 직후 불어닥친 조류독감 파동 당시에도 공장 설비를 늘리고 훈제 오리제품의 빛깔이 조금만 달라도 불량처리하는 철저함으로 나타나고 있다.

“제품에 대한 신뢰는 균일한 품질에서 시작한다. 동물성과 식물성 사료 배합비율 등 철저한 원료 선택에서부터 첨가물의 양, 8시간이 넘는 가공과정 등 어느 하나 건성으로 해서는 안된다. 당장 매출은 늘어날지 몰라도 얼마되지 않아 부메랑이 돼 돌아오기 마련이다.”

또하나 채대표는 절대 어음이나 외상결제를 하지 않는다. 때로는 은행 빚을 내가며 원료 값을 치르기도 한다. 지금도 채대표는 설비투자와 자동화율을 높이는 데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돈을 버는 만큼 투자를 반복해야만 기업의 생명력이 길어진다. 현재에 만족해서는 당장 내일 조류독감 파동이나 IMF 같은 어려움이 닥치면 극복할 수 없게 된다. 현재 자동화와 설비 확장을 위해 독일기술로 제작중이며 오는 9월께면 생산량이나 품질이 더욱 높아질 것이다.”

이러한 결벽증 같은 노력으로 ISO 9001과 14001 인증 획득은 물론 ‘청풍명월’이라는 독자브랜드도 개발, 체인점까지 두기 시작했으며 해외수출을 위해 바이어의 방문도 잇따르는 수준에 이르게 됐다.

전기공학도에서 오리육가공업체 대표로 멋지게 성공하고 있는 채수창 대표. 향토기업의 새로운 얼굴도 멋진 성공신화를 써내려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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