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근리 사건 12년/美‘ 진상은폐, ’韓 ‘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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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근리 사건 12년/美‘ 진상은폐, ’韓 ‘방관’
  • 권혁상 기자
  • 승인 2006.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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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400만불 '눈가리고 아웅' 위령사업비 거부

은폐의혹 불거져 진상 재조사 여론, 역사공원사업은 순항

56년전 미군에 의해 사살된 200여명의 원혼들을 위한 위령제는 올해 ‘울음소리’ 한번 없이 진행됐다. 노근리 양민학살의 진상이 공개된 지 12년, 피해주민들의 가슴이 새카맣게 타버려 재만 남았기 때문이다.

노근리 사건은 94년 5월 자전 소설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갗를 출간한 정은용씨(87·노근리사건 대책위원장)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월간 <충청리뷰>는 노근리 학살현장을 직접 찾아가 정씨와 피해주민들의 증언을 채록한 기사를 국내언론 최초로 보도했다. 이후 보수적 매체를 제외한 대부분의 신문·방송이 노근리 사건을 다뤘지만 한·미 관계의 특수성(?)으로 인해 메아리없는 외침이 됐다.

하지만 99년 AP통신이 한국전쟁 당시 미육군 문서를 통해 ‘비무장 양민학살’ 사건의 전모를 보도하면서 세계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국내외 언론은 가해 미군과 피해 주민들을 교차취재하며 ‘추악한’ 전쟁의 실상을 공개했다. 베트남전에서의 미군 양민학살 ‘악몽’이 한국전으로 번질듯한 기세였다. 이에 당시 클린턴 미대통령은 즉각적인 유감표명과 함께 진상규명을 약속했다.

우리 정부는 관계부처 차관들이 참여하는 ‘노근리사건대책단’을 구성, 당시 충북출신 안병우 국무조정실장이 단장을 맡았다. 또한 국방부의 ‘노근리사건진상조사반’와 미육군 ‘진상조사단’이 구성돼 공동조사를 실시했다. 마침내 2001년 1월 12일 양 국가의 조사단은 각각의 조사결과 보고서를 발표했다.

한국측은 “공중폭격과 사격명령에 대한 증거부족으로 결론에 도달할 수 없다”는 애매한 입장이었다. 반면 미국측은 “공식명령 지휘체계의 개입없이 일어난 우발적인 사건”으로 단정했다. ‘우발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참전미군에게 책임을 지워서는 안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결국 한·미공동발표문에서는 ‘50년 7월 마지막 주 노근리 주변에서 수 미상의 피난민을 살상하거나 부상을 입혔다’는 피해내용만 결론으로 언급했을 뿐 원인과 책임부분은 단 한줄도 명시하지 못했다. 아울러 미 정부는 400만 달러의 예산을 편성해 한국전쟁 민간인 피해자 위령비 건립사업과 후손들의 장학사업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나마 5년 시한이 되는 오는 9월까지 집행하지 못할 경우 자국의 예산규정상 반납해야 한다는 것.

미국측은 노근리 피해자들의 주장에도 아랑곳없이 위령비문을 작성하고 설계, 건립업체 선정까지 추진했다. 미국측이 제시한 비문은 ‘1950년 7월 이곳에서 희생되신 분들을 추모하고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하여 위대한 투쟁을 하다가 한국전쟁 중에 희생되신 모든 분들을 기억하면서’로 돼 있다. 어디에도 노근리라는 표현은 없다. ‘한국전 당시의 무고한 피해자’란 용어를 통해 노근리 사건에 국한하지 않고 한국전쟁 중에 발생한 모든 양민학살 사건에 대한 책임을 ‘면피’하겠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노근리 사건 희생자로 판명된 218명(유가족 2170명)은 전쟁범죄에 대한 미정부의 분명한 사과와 피해보상을 요구했으나 양측의 시각 차는 너무 컸다. 결국 미국이 주도한 위령비 건립사업은 무산됐고 노근리대책위는 미정부를 상댈 한 법적소송을 준비하게 됐다. 미국에서 활동중인 한국계 마이클 최 변호사(한국이름 최영)를 선임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추진하고 있다.

마이클 최 변호사는 노근리 사건을 ‘진실찾기 작업이 아직도 진행중’이라고 규정하고 희생자 유해발굴 작업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증언에 따르면 유해의 상당수가 여성이나 어린이다. 앞으로 DNA 검사 등과 같은 과학적인 검증절차를 거쳐서 더 정확하게 학살의 잔학성이 밝혀지면 피해자들의 권리구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행정자치부내 노근리사건처리지원단은 지난 4월 노근리대책위에서 당시 시신을 묻었다는 증언자를 확보하자 유해발굴 작업을 위한 예산확보에 나섰다. 2억원의 예산을 신청해 현재 기획예산처의 예산심의가 진행중이며 국회통과되면 내년 3월부터 유해발굴 작업이 가능하다. 유해가 발견되면 그동안 피해자 증언에만 의존해온 ‘노근리의 진실’은 현장 증거로 재구성될 수 있다.

한편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이 미군의 ‘우발적인 총격’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반증이 될 수 있는 미 대사의 편지가 지난 5월 확인됐다. 존 무초 당시 주한 미대사가 딘 러스크 미 국무부 차관보에게 발송한 편지에 피난민 처리방침이 자세하게 적시됐다.

AP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북측 출신으로 보이는 피란민들이 미군 경계선에 접근할 경우 우선 경고사격을 하고, 계속 접근할 경우 총격을 하라’고 분명한 지시를 내렸다. 이같은 방침은 편지 작성 하루전인 7월 25일 대구에서 열린 미군 고위급 회의에서 결정됐으며 다음날 미 제7기병연대에 의한 노근리 학살로 이어진 셈이다.

특히 AP통신이 공개한 ‘존 무초 대사의 서한’의 경우 미국측 조사단이 조사과정에서 무초 서한의 마이크로필름을 검토했는데도 진상조사 최종보고서는 그 내용을 지적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의도적인 은폐시도로 볼 수밖에 없다.

이에따라 노근리사건대책위는 재조사의 필요성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노근리대책위 정구도 부위원장은 “미측이 미리 결론을 정해놓고 거기에 맞춰 진상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양민학살이 우발적 행위가 아닌 상부지시에 의한 고의적 행위로 드러난 이상 원점에서 진상조사를 다시 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한편 2005년 노근리사건특별법에 제정되면서 국회는 노근리사건 희생자 위령사업의 일환으로 추모역사공원 사업부지 구입예산을 확보했다.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땅 3만5천평을 사업부지로 정해 기본계획 및 설계용역을 진행중이다. 역사공원은 미군이 총격을 가한 산등성이의 사적지와 시설 예정부지, 학살현장인 ‘쌍굴다리’로 구성된다. 희생자 위패를 모신 위령탑과 전쟁으로 인한 민간인학살의 비극을 보여주는 역사문화자료관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 권혁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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