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터에 얽힌 추억 곱씹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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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에 얽힌 추억 곱씹어볼까요?
  • 충북인뉴스
  • 승인 2006.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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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전체 1061곳에 장터 있었다는 기록
장날 제일 인기있는 사람은 역시 약장수
큰 장터에선 운좋으면 남사당패 공연도 볼수 있어

“자 물 좋은 간고등어 사세요. 삼치도 있고 꽁치 오징어 명태도 싸게 팝니다.”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호박엿 있어요? 철거덕 철거덕 엿가위 소리도 들리고. “장정 두명이 잡아 당겨도 끄덕 없는 고무신 사세요?” 여기저기서 손님을 부르는 장사꾼들의 흥정이 정감 어리게 오고 간다. 한쪽 공터에서는 입담 좋은 약장사들이 사람들을 끌어 모아 놓고 시골 사람들의 넋을 빼기도 한다.

   
▲ 기다리는 사람들
무뎌진 연장을 대장간에 맡기고 망중한 시골노인들이 농사일, 자식걱정을 하며 새물건이 나올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있다.
/ 1978년 청원 문의 장터

장터는 물건을 팔고 사는 말 그대로 시장이다. 우리나라 장터는 보통 5일에 한번인 5일장이 대부분으로 5일마다 장터는 사람들로 넘쳐났고 살 것도 많고 구경꺼리도 많았다. 옛날에는 서울, 부산, 평양 등 큰 도시에 상설시장(常設市場)과 아침 저녁에만 열리는 반짝 시장이 성행했고 시골에는 향시(鄕市)라 하여 5일마다 장이 서는 장날이 따로 있었다. 향시는 1월 6장(1月6場)이라 하여 1달에 여섯번 서는 5일장으로 우리나라 장터를 3천년간 이어 왔다고 한다.

닷새만에 열리는 장날을 한파수라고 하여 사람들이 하루에 왕복할 수 있는 거리마다 장이 섰고 50리가 넘으면 딴 장터가 있어 장날이 따로따로 정해져 장돌뱅이들이 장을 보러 다녔다. 예를 들어 청주장이 2일,7일날 서면 증평장은 6일,11일 진천장은 8일,13일식으로 한파수 동안 장에 못가면 필요한 물건을 먼 장터까지 가 사와야 하는 불편을 감수했어야 했다.

   
▲ 붐비던 청주장터
1970년대까지 2일, 7일 청주 남주동시장은 장꾼들로 크게 붐볐지만 농촌인구가 줄면서 장날 마저 없어졌다. / 1973년 청주 남주동 시장
기록을 보면 우리나라 전체 1061곳의 장터가 있었고 우리도에도 56곳의 장터가 있어 5일마다 장이 열렸고 장이 서는 날은 각각 달랐다고 한다.

장터는 잡화(雜貨)를 싸든 봇짐장사(褓商)와 일용품을 짊어진 등짐장사(負商)가 이장 저장을 떠돌며 아침 일찍 장바닥에 물건을 펴놓으면 한사람 두사람 장꾼이 모여들어 물건을 사고 팔면서 장이 서기 시작했다. 장터에는 오곡을 쌓아 놓고 파는 싸전이 단연 으뜸이었고 그 외에도 비린내 풍기는 어물전, 소들이 모여드는 쇠전, 시끌벅적한 잡화전, 떡전, 가축시장, 채소전, 약재시장, 장독을 취급하는 옹기전 등 갖가지 물건들이 자리를 잡고 상거래가 이루어졌다.

   
▲ 버스를 기다리며
추석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 시골 아낙네들의 풍경이 정겹기만 하다.
/ 1973년 10월 괴산
장날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은 약장사 패거리들이 진을 친 곳일 것이다. 원숭이 재롱에다 차력 시범 등 다양한 볼거리에 큰북을 메고 두드리면서 떠드는 약장사의 입담은 사람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데 손색이 없었다. 보통 동동구리무와 만병통치약이라는 약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순진한 시골 노인들은 약장사의 입담에 안 넘어갈 수 없어 많이들 사곤 했다.

큰 장터에서 운이 좋으면 남사당패 인형극 공연과 풍각쟁이들을 만나 품바타령도 구경할 수 있었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 죽지도 않고 또 왔네 / 껑충 뛰었다 제천장 신발 없어서 못보고 / 바람 불었다 청풍장 선선해서 못보고 / 청주장을 보잤드니 술이 취해서 못보고 / 품바품바 잘한다 / 황간장을 보잤드니 영감 많아서 못보고 / 예산장을 보잤드니 예산이 틀려 못보고 / 온양장은 건달이 많고 / 품바품바 잘한다 / 보은 청산 대추장은 처녀 장꾼이 제일이요 / 업범 중천에 충주장은 황색 연초가 제일이요 / 천안장터에는 능수 버들이 축 늘어졌다 / 지리구 지리구 잘한다 / 품바품바 잘한다 」 우리나라 민요 장타령으로 품바꾼들이 한바탕 놀고 나면 동전과 먹거리 들이 타령꾼들에게 안겨 졌다.

   
▲ 설대목장 풍경
설날 차례상을 차려야 하는 농민들은 대목장에서 제사 지낼때 필요한 제수용품과 새옷을 사서 한짐을 이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 1973년 2월 옥천 버스정류장
농촌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큰 장터에는 3~5곳 정도의 대장간들이 모여 있었다. 농부들은 일하다 무뎌진 낫이나 호미,괭이 등을 장날 대장간에 맡기고 장구경을 하다가 친구도 만나고 친척도 만나 거나하게 술을 한잔 마신 후 다시 대장간에 들려 맡긴 농기구를 찾고 10리길 20리길 집을 찾아 갔다. 호롱불 밝혀 들고 마중 나온 마나님의 바가지 소리를 들으면 길었던 장터 나들이는 그렇게 갈무리됐다.

지금이야 큰 마트들이 생겨 5일장의 장터는 시골에서나 가끔 볼 수 있는 풍경이 됐지만 볼거리와 먹거리가 많던 시골 장터는 언제나 그리운 고향의 모습 같이 느껴진다.  / 前 언론인·프리랜서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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