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사유재산이니 출입 금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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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사유재산이니 출입 금지함’
  • 홍강희 기자
  • 승인 2006.09.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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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보의 집, 일부 시설 경매 넘어간 뒤 출입금지 울타리
관광객 급감, “충북도·청원군 정상화 방안 내놓아라” 여론
청원군 내수읍 형동리에 있는 운보 김기창 화백의 집인 ‘운보의 집’ 은 이제 더 이상 문화예술시설이 아니다. 운보의 집에 들어서는 입구에는 ‘예술 혼 숨쉬는 공간 운보의 집’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지만, 이 곳을 가본 사람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운보의 집 일부가 경매로 외지인의 손에 넘어간 뒤 하루가 다르게 문화예술공간에서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일 토요일 오전. 운보의 집 입구로 들어서자 하얀 끈으로 된 울타리가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거기에는 쪽지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이 곳은 사유재산이므로 출입을 금지합니다. 무단출입시형사고발 조치함”. 더 이상 운보문화재단 소유의 땅이 아니니 밟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 운보의 집이 번성했던 시절, 대형버스들로 꽉찼던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운보의 집 안으로 들어가자 상황은 점입가경이었다. 운보가 기거하던 안채와 운보미술관을 빼고는 대부분 흰색 울타리에 갇혀 있었다. 그리고 그 울타리에는 예외없이 사유재산이므로 출입을 금한다는 쪽지가 펄럭였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관광객들의 발길도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관광객들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평일 1000명, 주말 2000명씩 되던 사람들이 지난해 경매가 진행될 때 평일 100~200명, 주말 1000명으로 감소하더니 요즘 흰색 울타리가 등장하고는 평일 20~30명, 주말 200명 정도로 대폭 감소했다는 게 운보의 집 측의 설명이다.

   
▲ 가는 곳마다 출입금지 울타리가 붙어 있는 운보의 집.  /사진=육성준기자
“좋은 사람 나오면 팔겠다”

운보의 집은 당초 전체 2만7000평 대지에 운보가 기거하던 한옥, 미술관, 도예공방, 연못 등이 있었다. 사계절 아름다운 자연속에서 야외결혼식까지 열리고 연못에는 귀한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다녔다. 그래서 이 곳은 수학여행단과 야외결혼식 하객, 가족단위의 관람객들로 붐볐다.

그러나 수익법인인 (주)운보와 사람들 소유 7870평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면서 사정은 판이하게 달라졌다. 지난해 11월 23일 청주지방법원에서 열린 경매에서 한 모씨는 운보의 집 일부를 18억1100여만원에 경락받았다. 한씨는 40대 의사로 현재 서울에서 성형외과 의원과 모 부동산회사도 운영한다는 게 운보의 집 관계자들 말이다. 이 시설은 처음에 26억4000만원에 나왔으나 여러 번 유찰 끝에 10여억원대로 떨어졌다.

운보의 집은 운보가 세상을 떠나기 전, 아들인 김 모씨가 무역업에 손대 사업실패를 겪으면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아들에 대해서는 동정적인 여론도 있으나 운보의 집을 지키지 못한 장본인으로 지금도 사람들의 입줄에 오르내리고 있다. 사업 빚을 갚기 위해 김씨는 운보의 집 일부를 모 파이낸스 금융업체에 매매했다. 항간에는 50여 억원을 받고 팔았다는 소문이 있다. 이 업체는 (주)운보와 사람들이라는 영리법인을 만들고 서울에 사무실을 내는 한편 문화상품 개발에도 뛰어들었으나 얼마 안가 파산하고 만다.

나머지 1만8000평은 운보 아들인 김 씨가 파이낸스에 시설 일부를 팔면서 운보문화재단 설립을 조건으로 내건 덕에 현재 재단 소유로 돼있다. 그래서 다행히 이 땅은 아무도 건드릴 수 없다. 운보문화재단은 개인사업을 하는 백 모씨가 이사장을 맡고 있고, 이사장 등 6명이 이사로 등재돼 있다. 그러나 시설 일부를 경락받은 한씨와 재단간에 상당한 갈등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단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새로 들어온 분과 협조해서 운보의 집을 잘 운영하려고 했으나 길까지 막아 애로점이 상당히 많다. 울타리 친 부분을 들어가면 직원이 소리를 질러 관광객들도 여간 놀라지 않는다”며 “처음에는 3~4명의 용역회사 직원들이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사유재산을 관리했으나 지금은 1명만 남아 있다. 운보의 집 입구에는 길 쪽으로 날카로운 게 튀어나와 있어 마을사람들도 불편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또 한씨가 “좋은 사람이 나오면 팔겠다”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하지만 또 다른 관계자는 “재단과 한씨 사이에 밀고 당기는 게 있어 한씨 측에서 울타리까지 치고 압박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이런 방법은 정말 좋지 않다. 재단도 한씨에게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게 있다고 들었다. 한마디로 양측이 기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사이에서 죽어나는 것은 운보의 집이다. 관람객들이 돈을 내고 들어오는데 사유재산이라고 울타리 친 것만 보여줘서 되겠는가. 양측간에 풀어야 할 것이 있다면 개별적으로 해야지 운보의 집 운영에 막대한 손해를 주는 행위는 삼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관리를 하지 않아 훼손돼가고 있는 안채 뒷문쪽. 내려 앉은 초가지붕에는 잡초가 자라고 있다. 안채 지붕밑에 달린 벌집. 벌들이 서식하고 있다.
관리감독 안하는 문광부

실제 운보의 집은 운영주체가 운보와 사람들, 운보문화재단 등으로 갈리면서 복잡한 양상을 띄었으나 이제는 한 축이 늘어나 더 심각하게 얽혀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운보의 집 정상화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11월 시설 일부가 경매에 나왔을 때 속을 알 수 없는 외지인보다는 지역사람이 받아서 이 곳을 문화예술공간으로 가꿔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다. 그래서 지역의 모 인사가 경매에 참여할 계획까지 세웠으나 복잡한 내막을 알고 후퇴했다는 게 충북도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운보의 집은 ‘돈 있는 사람도 근접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곳’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

(주)운보와 사람들을 이끌어가던 주체는 당시 파이낸스 업체에 투자했다가 파이낸스가 파산하면서 주식을 받은 사람들인데, 이들 중 일부가 소송을 제기하여 경매가 진행된 것이다. 이들 외에 투자했다 경매대금조차 받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주주총회에서 양성주씨를 대표이사로 뽑았고, 양 대표는 현재 운보의 집에 관여하고 있다. 양 대표는 “파이낸스에 소송을 낸 사람들은 경매대금 얼마라도 건졌으나 우리 1350명 주주들은 아무 것도 받은 게 없다. 나는 친척 돈까지 합쳐 60억원을 투자했다가 모두 날렸다”며 억울해 했다.

그러면서 양 대표는 “경남도립미술관을 600억원 들여 지었다고 들었다. 충북에서 도립미술관을 새로 지을 바에는 운보의 집과 인근의 땅을 인수해서 하는 게 나을 것이다. 각종 부채 청산하고 경매 넘어간 땅 찾는 돈까지 합쳐 60억원 정도면 해결할 수 있다. 지역사회에서 운보의 집을 사랑하는 사람이 나서 가꾸는 것이 가장 좋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운보문화재단을 허가해 준 문광부에서도 재단에 대한 관리 감독을 제대로 하고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를 풀어야 한다는 여론이다. 재단 이사들의 임기도 이미 만료됐으나 문광부에서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는 게 여러 사람들의 지적이었다.

운보의 집은 충북도가 펴낸 관광지도에도 소개돼 있다. 도는 최근에도 운보의 집에 대해 “운보 김기창 화백은 불굴의 의지와 정신력으로 청각장애를 극복하고 열정적인 창작열과 예술혼을 불태운 작가이다. 동양화를 추상양식으로 발전시켜 현대화하였으며, 그를 대표하는 민화풍의 ‘바보산수’를 개발했다. 운보의 집에는 한옥과 단아하게 꾸며진 정원을 중심으로 운보미술관과 아트샵, 레스토랑이 들어서 있다”며 “운보의 작품을 감상하며 문화의 향수에 빠져드는 곳”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는 최근의 상황에는 전혀 관심없는 담당 공무원이 오래 전의 자료를 베껴쓴 것에 불과하다.
운보는 살아 생전에 친일 전력 시비에 시달렸고, 실제 친일작가로 분류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자세한 행적은 운보미술관 내에서 밝히고 운보의 집은 충북의 예술문화공간으로 가꾸자는 게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다.

일각에서는 친일파의 집이라는 딱지가 붙은 만큼 도민들의 문화공간이 되지 못한다고 보고 있으나, 친일행적은 행적대로 보여주고 장애를 딛고 예술가로 남은 부분은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승환 충북대 국어교육과 교수도 “친일은 친일로 비판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한국미술사에서 중요한 작가로 남은 점과 청각장애인으로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많은 선행을 베푼 점은 균형있게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 부서진 문(왼쪽)과 떠 있는 마루 기둥이 운보의 집 현실을 잘 대변하고 있다.
“운보의 집은 공공재”

또 지역에는 운보의 집을 정상화 시키는 데 청원군이나 충북도 등 행정기관에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모 인사는 “개인이 땅을 사면 수익을 생각하므로 본래의 취지를 살리기 어렵다. 그래서 충북도에서 운보의 집을 사고 주변 땅까지 매입해 도립미술관으로 꾸미는 것이 가장 좋은 대안이다. 그렇지 않으면 운보의 집은 개인들끼리 사고 팔다 엉뚱한 공간으로 남고 말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도 관계자는 “청각장애를 극복한 예술가가 전재산을 털어 만든 문화공간이 매매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하지만 소유권 분쟁이 복잡해 쉽사리 관여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리고 김승환 교수는 “운보의 집은 법적으로 사유재산이지만 공공재의 성격이 강하다. 누구든지 접근해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누가 이 곳을 사든 사유화해서는 안된다”면서 최근의 상황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충북도에서 직접 나서기 보다는 공공성회복을 위한 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어 잘 운영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몇년 전에 충북민예총에서 벽초 홍명희 생가를 보전하기 위해 괴산군, 충북도, 문광부, 국회 등지를 쫓아다닌 덕분에 괴산군과 충북도에서 50%씩 투자해 산 적이 있다. 사유재산을 공공기관에서 사들인 성공사례인데 벽초 생가와 운보의 집은 상황이 다르다. 벽초 생가는 건물이 국가문화재이고, 괴산군 괴산읍 동부리가 우리나라 3·1운동의 발상지라는 점, 벽초의 부친이며 애국자인 홍범식의 생가이고 벽초가 한국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임꺽정’의 작가라는 점 등이 고려됐으나 운보의 집은 이보다 훨씬 비싸고 그림도 제대로 남아 있지 않다. 또 친일작가이기도 하다“면서 도에서는 위원회를 가동해 정상화에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운보의 집은 관리가 이뤄지지 않아 초가지붕은 내려앉고, 한옥 마루에는 거미줄만 잔뜩 걸려 있다. 또 미술관으로 가는 뒷문은 부서져 있고 연못에는 물고기도 몇 마리 남아 있지 않다. 따라서 충북도와 청원군은 이 곳이 더 망가지기 전에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지역의 모 씨는 “허물어져 가는 운보의 집을 지역민들이 지켜보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리고 이곳의 일부를 산 사람에게 문화마인드가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그래서 행정기관에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충북도는 문광부를 움직이든지 도 자체적으로 운보의 집 정상화 방안을 만들든지 하루빨리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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