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고장’ 충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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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고장’ 충북
  • 충북인뉴스
  • 승인 2006.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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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양 식 충북학연구소·박사
충북이 ‘양반의 고장’인가 ‘선비의 고장’인가 하는 질문은 단순한 듯 하지만, 상당한 역사인식과 가치관을 묻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 문제를 푸는 출발점은 양반과 선비 개념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달려 있다.

결론적으로 양반과 선비는 다른 차원의 개념이다. 추구하는 바도 다르며 역사적 위상과 역할도 다르다. 양반은 사회적 지위와 신분을 나타내는 역사적 용어이다. 반면에 선비는 바람직한 삶의 가치와 문화를 지향하는 철학적 인격체를 말하고 있다. 양반문화는 화려함을 쫓지만, 선비문화는 고고하다.

양반문화는 인위적이지만, 선비들이 추구하는 인간상과 가치관은 자연적이며 서로 함께 더불어 사는 상생을 지향한다. 양반문화는 퇴폐적일 수 있지만, 선비가 퇴폐적인 순간 그는 선비가 아니다.

그렇다면 ‘양반의 고장’은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다. 현재적 가치지향점도 없다. 그 속에서는 오래 된 미래가치를 발견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끊임없이 ‘양반의 고장’임을 내세우는 것은 역사의 관성력 때문이다.

지난 20세기 한국의 신분 해방은 모든 사람들이 양반이 되는 길로 이루어졌다. 그 증거가 양반의 상징인 족보를 모두 가지고 있는 점이다. 신분의 벽을 넘어 양반이 되고자 했던 역사의 물줄기가 아직도 우리의 신분의식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충북이 찾고 가꾸고 만들어가야 하는 지역다움은 ‘선비의 고장’에 있다. 그것은 과거의 유산에서 입증되고, 현재적 가치지향점에서 주장되고 실천되어야 한다. 공염불이 되어서는 안된다. 구호로 그쳐서는 허위의식만 조장할 뿐이다.

충북이 선비의 고장이었음은 여러 유산을 통해 증명해 보일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충청북도 한 가운데에 있는 화양동 계곡 바위에 새겨진 ‘비례부동(非禮不動)’ 글씨를 꼽고 싶다. 우암 송시열이 새긴 바위글씨이다.

이 말은 선비 정신과 자세를 잘 말해주고 있는데, 하늘의 이치를 따르고 사사로운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뜻이다. 선비들이 새기고 또 새겨야 할 덕목인 것이다. 그것은 비록 정치 격랑에 휘말리었을지라도 조선 성리학을 집대성하고 의리로써 한 평생을 살고자 했던 우암 송시열의 외침이기도 하다.

조선의 참 선비들은 하늘의 이치에 순응하고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을 닦지 않으면 안된다. 마음 수련을 통해 성품과 감정을 통제하고, 집중을 통해 자신을 알아차리고, 인자함으로 사물을 대하며, 부지런히 공부하여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선비들의 기본 마음가짐과 자세였다.

더 나아가 선비들은 글을 읽고 시를 짓고 노래를 부르는 등 풍류를 아는 문화예술인이었다. 그런 선비들은 충북 역사 속에서 흔히 만날 수 있으니, 충북은 과거 ‘선비의 고장’이었음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충북이 진정으로 선비의 고장이 되기 위해서는 옛 선비정신과 문화를 비판적인 시각에서 현재화해야만 한다. 그것은 오래 된 미래가치를 실현하는 것으로서, 21세기 충북의 선비상을 바로 세우고 그들을 주체로 한 문화지평을 열어가야만 한다. 그것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추구한 심(心)과 경(敬), 예(禮)와 의(義), 서(書)와 악(樂) 등의 코드에서 찾아져야 할 것이다.

내년은 우암 송시열이 탄생한지 4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를 계기로 그늘에 가려진 우암의 사상과 정신이 재평가되고, 무너진 충북의 자존심도 회복되고, 진정한 ‘선비의 고장’ 충북으로 거듭 발돋음하는 원년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충북 땅에서 사는 사람들은 마음이 밝고 곧으며 어질고 풍류를 아는 이 시대의 선비라는 지역 이미지가 자리잡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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