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훈민정음≫해례본 제자해 읽기의 즐거움
상태바
23. ≪훈민정음≫해례본 제자해 읽기의 즐거움
  • 김슬
  • 승인 2024.07.05 13: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종대왕이 하늘의 뜻으로 만들었다는 훈민정음의 깊이

≪훈민정음≫ 해례본 낭독용 번역문 읽어보기3

제자해(글자 만든 풀이) 3

첫소리와 가운뎃소리를 맞대어 말해 보자. 가운뎃소리의 음성과 양성은 하늘의 이치다. 첫소리의 단단함과 부드러움은 땅의 이치이다. 가운뎃소리는 어떤 것은 깊고 어떤 것은 얕고, 어떤 것은 오므리고 어떤 것은 벌리니, 이런즉 음양이 나뉘고, 오행의 기운이 갖추어지니 하늘의 작용이다.

첫소리는 어떤 것은 비고[목구멍소리], 어떤 것은 막히고[어금닛소리], 어떤 것은 날리고[혓소리], 어떤 것은 걸리고[잇소리], 어떤 것은 무겁고[입술무거운소리], 어떤 것은 가벼우니[입술가벼운소리], 이런즉 곧 단단하고 부드러운 것이 드러나서 여기에 오행의 바탕이 이루어진 것이니 땅의 공이다.

가운뎃소리가 깊고 얕고 오므라지고 벌림으로써 앞서 부르고, 첫소리가 오음의 맑고 흐림으로써 뒤따라 화답하여 첫소리가 되고 또한 끝소리가 된다. 또한 이는 만물이 땅에서 처음 생겨나서, 다시 땅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첫소리, 가운뎃소리, 끝소리가 합하여 이루어진 글자를 말할 것 같으면, 또한 움직임과 고요함이 서로 뿌리가 되어 음과 양이 서로 바뀌는 뜻이 있다. 움직이는 것은 하늘이요, 고요한 것은 땅이다. 움직임과 고요함을 겸한 것은 사람이다. 대개 오행이 하늘에서는 신(우주)의 운행이며, 땅에서는 바탕을 이루는 것이요, 사람에서는 어짊·예의·믿음·정의·슬기가 신(작은 우주)의 운행이요, 간장·염통(심장)·지라(비장)·허파(폐장)·콩팥(신장)이 바탕을 이루는 것이다. 첫소리는 움직여 피어나는 뜻이 있으니,

하늘의 일이다. 끝소리는 정해져 멈추는 뜻이 있으니, 땅의 일이다. 가운뎃소리는 첫소리가 생겨난 것을 이어서, 끝소리가 이루어지게 이어 주니 사람의 일이다. 대개 글자 소리의 핵심은 가운뎃소리에 있으니, 첫소리·끝소리와 합하여 음절을 이룬다. 또 오히려 하늘과 땅이 만물을 생겨나게 해도, 그것이 쓸모 있게 돕는 것은 반드시 사람한테 힘입음과 같다.

끝소리글자에 첫소리글자를 다시 쓰는 것은 움직여서 양인 것도 하늘이요, 고요해서 음인 것도 하늘이니, 하늘은 실제로는 음과 양을 구분한다 하더라도 임금(하늘)이 주관하고 다스리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의 바탕 기운이 두루 흘러 다하지 않고, 사계절 바뀜이 돌고 돌아 끝이 없으니 만물의 거둠에서 다시 만물의 시초가 되듯 겨울은 다시 봄이 되는 것이다.

첫소리글자가 다시 끝소리글자가 되고 끝소리글자가 다시 첫소리글자가 되는 것도 역시 이와 같은 뜻이다. 아! 정음이 만들어져 천지 만물의 이치가 모두 갖추어졌으니, 그 정음이 신묘하다. 이는 틀림없이 하늘이 성왕(세종)의 마음을 일깨워, 세종의 손을 빌려 정음을 만들게 한 것이로구나!

 

랩 가사처럼 제자해를 노래한 ‘갈무리시’


하늘과 땅의 조화는 본디 하나의 기운이니

음양과 오행이 서로 처음이 되며 끝이 되네.

만물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꼴과 소리 있으나

근본은 둘이 아니니 이치와 수로 통하네.

정음 글자 만들 때 주로 그 꼴을 본뜨니

소리 세기에 따라 획을 더하였네.

소리는 어금니·혀·입술·이·목구멍에서 나니

여기에서 첫소리글자 열일곱이 나왔네.

 

또 첫·가운데·끝 세 소리의 깊은 이치를 살피면 단단함과 부드러움, 음과 양이 저절로 있네. 가운뎃소리는 하늘의 작용으로서 음양으로 나뉘고 첫소리는 땅의 공로로 단단함과 부드러움을 나타내네. 가운뎃소리가 부르면 첫소리가 응하니 하늘이 땅보다 앞섬은 자연의 이치이네.

응하는 것이 첫소리도 되고 또 끝소리도 되니 만물이 땅에서 나와 다시 모두 땅으로 되돌아감이네. 음이 바뀌어 양이 되고 양이 바뀌어 음이 되니 한 번 움직이고 한 번 고요함이 서로 뿌리가 되네. 

첫소리는 다시 피어나는 뜻이 있으니 양의 움직임으로 하늘의 임자 되네. 끝소리는 땅에 비유되어 음의 고요함이니 글자 소리가 여기서 그쳐 정해지네. 음절을 이루는 핵심은 가운뎃소리의 쓰임새에 있으니 사람이 능히 하늘과 땅의 마땅함을 도울 수 있기 때문이네.

양의 쓰임은 음에 통하니 이르러 펴면 도로 돌아오네. 첫소리글자와 끝소리글자가 비록 하늘과 땅으로 나뉜다고 하나 끝소리글자에 첫소리글자를 쓰는 뜻을 알 수 있네. 

정음 글자는 스물여덟뿐이로되 심오하고 복잡한 걸 탐구하여 근본 깊이가 어떠한가를 밝혀낼 수 있네. 뜻은 멀되 말은 가까워 백성을 깨우치기 쉬우니 하늘이 주신 것이지 어찌 일찍이 슬기와 기교로 되었으리오.

훈민정음 번역문 원분.
훈민정음 번역문 원분.
훈민정음 번역문 원분.

 

♣ 일러두기 ♣

≪훈민정음≫ 해례본은 15세기 한문으로 되어 있어 전문가들도 독해가 어렵다. 그래서 현대말 번역이 매우 중요하다. 1940년 이후 해례본 전문의 최초 번역은 방종현(1946)의 ≪(원본해석) 훈민정음≫(진학출판협회), 홍기문(1946)의 ≪정음발달사≫(상·하 합본. 서울신문사 출판국)에서 이루어졌다. 1940년에 조선일보에 7월 30일부터 8월 4일까지 5회에 걸쳐 연재한, 홍기문과 방종현이 번역하고 방종현 이름으로 발표한 해례본 최초 번역문에는 세종이 직접 저술한 정음편 번역과 맨 끝의 정인지서문 번역이 빠져 있다.

이후 지금까지 나온 40여 종의 번역은 이러한 초기 번역의 수정과 보완이다. 필자의 번역 또한 그런 맥락에서 벗어나지 못하나 다음과 같은 다른 점이 있다.

첫째, 세종 서문(어제 서문) 번역을 15세기 언해본 번역과 같이 108자 번역으로 하였다. 꼭 108자로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15세기에 108자로 기울인 정성스러운 태도를 우리도 음미하듯 이어갈 필요가 있다.

둘째, 이 번역은 자음자를 제대로 읽게 만든 최초 번역이다. 모음자는 그대로 읽으면 되지만 자음자는 모음의 도움을 받아야 읽을 수 있으므로 쉽지 않다. 해례본은 초성자의 경우 ‘ㅣ’를 붙여 ‘기니디’ 식으로 읽었다. 그러나 기존 번역들은 현대 방식인 ‘기역, 니은, 디귿’ 식으로 읽게 되어 있다. 이럴 경우 원문의 의도를 제대로 살릴 수 없다. 종성자의 경우는 ‘ㅡ’를 붙여 ‘윽, 은, 읃’ 식으로 읽는 것이 좋다. 필자의 번역은 모든 자음에 대괄호로 이런 발음을 적어 넣어 누구나 쉽게 낭독할 수 있도록 했다.

셋째, 중학생 이상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용어와 문체를 지향하였다. 일부는 내용 자체가 어려워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래서 최대한 쉬운 번역을 지향해야 한다. 그것이 누구나 쉽게 배우라고 만든 훈민정음 정신이기 때문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책 제목은 문자 이름과 같은 ‘훈민정음’이다.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이 글은 "김슬옹(2003). ≪훈민정음 해례본 입체강독본(개정증보판)≫. 박이정, 291-308쪽."을 좀 더 다듬은 것임을 밝혀둡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