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렁에서 빠져나온’ 천문학계 ‘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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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렁에서 빠져나온’ 천문학계 ‘대부’
  • 권혁상 기자
  • 승인 2003.1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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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횡령 등으로 구속기소된 나일성박사 1심서 무죄선고
김도훈 전 검사 담당사건, ‘여론의식한 무리한 기소’ 눈총

지난해 9월 알선수재, 횡령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국내 천문학계의 원로 나일성씨(70·연세대 석좌교수)에 대해 법원이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청주지법 형사 2단독(판사 김경)은 지난 7일 선고공판에서 나씨와 나일성천문관 운영위원장 이동선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고 납품업자인 이모씨에 대해서만 사문서위조 혐의로 벌금 400만원을 선고했다. 지방법원 1심에서 검찰 기소사건이 무죄판결을 받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며 특히 ‘양길승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김도훈 전 검사가 담당했던 사건이기 때문에 법조계 안팎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나씨에 대한 검찰의 수사경위와 법원 무죄판단 배경에 대해 알아본다.

나일성씨는 지난해 8월 청주시와 우암어린이회관내 천문전시관에 소장품 기증을 약속했다가 철회하는 바람에 지역 언론의 도마위에 올랐다. 나씨는 2001년 3월 천체망원경을 비롯한 256점의 소장품을 청주시에 제공하기로 기증서까지 작성했다.

나씨가 기증하려는 소장품은 당시 경북 예천군에 위치한 ‘나일성천문관’에 전시돼 있는 상태다. 문제는 사설 기관인 ‘나일성천문관’이 예천군으로부터 수억원의 시설지원을 받고 매달 운영경비까지 지원받았다는 점이다.

나박사의 청주시 기증서약 사실을 뒤늦게 알아챈 예천군과 군민들은 법적대응 움직임까지 보이며 적극 반발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나박사는 청주시에 기증물품의 ‘축소‘라는 조정안을 제시하고, 예천군에는 ‘나일성천문관’ 유지를 약속하는등 진화에 나섰다. 결국 원로 천문학자의 불분명한 처신 때문에 양쪽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이 심적고통을 겪게 됐다.

특히 청주시는 나씨의 소장품 기증의사에 따라 우암어린이회관내 제3전시관 1층에 김동섭 한국운석광물연구소장이 기증한 공룡모형 30여점을 전시하고 2∼3층에 나일성천문관의 기증자료를 전시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워 지붕에는 천체망원경 설치를 위한 돔시설까지 마친 상태라서 후유증이 심각했다. 지역언론에서 연인 ‘안이한 시행정’을 질타했고 원로교수의 무책임한 처사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지역여론이 악화되자 청주지검 특수부 김도훈 검사는 나씨의 처신에 의구심을 품고 내사에 착수했다. 결국 지난해 8월부터 2개월간 수사를 벌인 끝에 예천 ‘나일성천문관’ 운영과 관련 예산보조금을 유용하거나 착복한 혐의로 나씨등 3명을 구속기소하게 됐다.

특히 나씨에 대해서는 특정범죄가중처법법위반(알선수재), 사기, 횡령, 사문서위조 및 동행사 등 5가지 범죄혐의점을 기소시켜 이른바 ‘똘똘말이 당했다’는 후문이 나돌기도 했다.

당시 검찰이 기소한 범죄사실과 재판부의 무죄선고 이유에 대해 혐의점 별로 정리해본다.

 사기, 사문서 위조, 위조사문서 행사

검찰은 나씨가 지난 99년 ‘나일성천문관’ 개관을 위한 천체망원경 운반조립비, 돔 제작비, 내부 전시설치비 명목으로 예천군으로부터 1억원의 보조금을 받아 이 가운데 3870만원만 용도대로 사용하고 나머지 6130만원을 유용한 것으로 기소했다. 또한 보조금 1억원에 대한 허위명세표를 작성토록 과학기자재 납품업자인 윤모씨에게 지시해 타인 명의 영수증 8장을 작성해 군에 제출한 혐의이다.

이에대해 법원은 1억원의 보조금 가운데 8000만원이 천문관 전시인테리어 비용으로 지출됐고, 나씨가 갖고있던 2000만원도 천체망원경 제작사인 일본 기술진 4명을 초청해 4일간 이설작업을 하면서 171만엔(한화 1800만원) 상당을 지출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또한 예천군에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천문관 개관을 지원했고 보조금 사용용도에 대해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전시인테리어 공사비를 다소 부풀려서 받았다 하더라도 이들이 애초부터 보조금을 가로챌 의도로 신청, 교부받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해 사기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렸다.

허위영수증을 작성, 사용한 혐의에 대해서는 나씨가 납품업자에게 허위명세표 작성을 지시한 적이 없고 허위영수증이라는 사실을 모른채 정산서류로 군에 제출했다고 진술하고 있는 점과 일부 타인 영수증의 경우 본인의 동의를 구해 제공받았기 때문에 ‘타인 명의의 문서를 위조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횡령

검찰은 지난 2001년 10월 예천군의 ‘퇴계탄신 500주년 행사’ 일환으로 나일성천문관에서 ‘퇴계와 함께하는 별의 행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보조금 2000만원을 지원받았으나 1170만원만 사용한 뒤 남은 경비 830만원을 생활비로 사용하여 횡령한 혐의로 기소했다.

이에대해 재판부는 허위의 보조금정산서를 작성해 예천군에 제출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군조례상 ‘보조금을 교부받은 자가 허위보고한 경우 전부 또는 일부 반환을 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전제했다. 하지만 군이 “보조금 교부결정을 취소하고 반환명령을 발하지 않은 상황에서 나씨가 이를 반환해야할 의무가 발생한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판결했다.

특가법상 알선수재

지난 2001년 한국국학진흥원이 발주하는 고대 지구의 ‘혼상’ 복원제작업자로 윤모씨를 추천해주는 대가로 3000만원을 달하고 요구한 뒤 납품업자 선정이후 나씨가 1500만원, 이씨가 350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다.

이에대해 재판부는 윤모씨가 한국국학진흥원으로부터 1억5500만원에 복원계약을 체결했고 복원제작 과정에 전문학자인 나씨의 자문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고 판단했다. 또한 납품업자 윤씨도 발주처에 제출한 혼상복원제작내역서에 자문비로 2100만원을 책정한 것으로 드러나 알선의 대가로 받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한편 1심 무죄판결에 따라 김도훈 전 검사가 사직한 상황에서 검찰의 항소여부에 대해 귀추가 주목됐으나 마감일인 지난 21일 항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재판결과에 대해 청주지검 내부에서도 ‘무리한 기소였다’라는 의견이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횡령 혐의의 경우 예천군에서 보조금 취소와 반환명령이 없었다고 해서 ‘유용한’ 돈을 반환할 의무가 없다고 판시한 것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는 판단으로 항소에 이른 것으로 분석된다.

지역 언론계 H씨는 “우암어린이회관 기증약속이 무산되고 개관 자체가 늦어지자 청주시가 농락당했다는 반감으로 나씨에 대한 여론이 극도로 악화됐다. 하지만 도덕적으로 비판받을 사안이었지 사법적인 잣대를 대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결국 예천 사설 천문관 운영과 관련해 구속기소한 것인데, 지방검찰이 지역여론에 무심한 것도 문제지만 너무 편승하는 것도 문제라는 사실을 일깨워준 사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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