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민하고 경직된 성문화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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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민하고 경직된 성문화는 가라
  • 충북인뉴스
  • 승인 2012.02.22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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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 전 청주YWCA 여성종합상담소장

수년전 화장실문화 개선운동이 한창일 때 버튼을 누르면 물 흐르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장치가 화장실마다 부착되던 때가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이건 불필요하고 너무 지나친 장치다. 예산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생각했었다.

헌데 얼마전 ‘수줍은 방광 증후군 (SHY BLADDER SYNDROME)’ 이라는 병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공공화장실에서 옆 칸에 들어있는 다른 사람을 의식하여 볼일을 보지 못하는 병이라고 한다.

이런 증상을 가진 사람들이 화장실 벽에 붙은 물 흐르는 소리가 나는 버튼 장치를 통해 그들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병 이름을 듣는 순간 나의 뇌리에 내가 오랫동안 비난하던 그 기계가 떠올랐다. 그 기계를 만든 사람은 당사자가 이런 증상을 갖고 있었거나 가까운 사람이 이런 증상을 앓고 있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얼마 동안 정봉주 전 의원의 석방을 요구한 여성의 비키니 사진 시위와 ‘나는 꼼수다’ 멤버들의 발언 문제가 인터넷상의 화제였다.

보수 진보 논객을 총망라해 다양한 의견들, 비난과 파장이 오고가며 꽤나 들끓었던 이 논쟁이 남긴 건 뭔지 생각해 본다. 비키니 사진 시위라는 새로운 시도도, 사회적 비중이 큰 한 남성 발언자에 대한 마초 논란도, 보수언론의 기회주의적 나꼼수 비난도, 빨리 논란이 가라앉기 바라는 대의명분 우선론자나 논란 자체를 외면하는 방관자까지 내겐 왜 이리 모두 당황하고 쩔쩔매고 경직된 모습으로 느껴지는 걸까.

몇 달 전 랍 포드 토론토 시장이 출근길 집 앞으로 찾아온 늙은 마녀복장 코미디언의 기습 인터뷰 요청에 당황하여 911(긴급출동전화)에 전화를 걸어 비상경비차량이 출동하는 해프닝이 벌어진 적이 있다. 시장의 유연하지 못한 대응방식은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시장의 성격이 단적으로 드러난 사건으로 해석되어 시민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과민하고 경직되면 우스꽝스러워 진다.

몇 년 전 성폭력 상담소 일을 맡게 되었을 때, 친하던 나의 지인들이 회식과 술자리에 나를 부르는 횟수가 급격히 줄어든 것을 느꼈다. 말로는 바쁠까봐 연락 못했다고 하는데 나의 느낌으로는 뭔가 부담스럽거나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나 또한 한동안 웬만한 자리에는 잘 가지 않았었다.

이러나저러나 곤란한 화젯거리가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사석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싫었다. 사람들 사이에 뭔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고 눈치 보이는 것이 있었다. 수줍은 방광처럼 경직되어 시원스레 흘러가지 못하고 우리를 쩔쩔매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비키니 사진 시위를 한 사람에게 ‘좋은데’ 라고 말해도 되고, 비키니 시위 유도 발언을 마초근성이라고 비판한 사람에게도 ‘잘했어’ 라고 말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성차별적이고 마초적인 성향이라고 비난 받은 사람에게도 ‘괜찮아’ 라고 말할 수 있다고 본다.

문제는 이번 논란이 물 흐르는 소리를 내는 기계음처럼 느껴졌다는 것이다. 몇몇 정치 사회적 이슈들이 성폭력 논란으로 환원되면서 성폭력 피해자화와 가해자화로 치달려 가는 것을 본다. 이런 논란은 자연스럽지 못한 경우가 많고 성문화의 변화에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계음에 의존한다 한들 증상이 고쳐지겠는가?

하반신을 완전히 드러낸 게이들의 거리행진, 여성에 대한 편견에 반대하여 상반신을 다 벗어던진 여성 리포터의 생방송, 육식에 반대하여 토마토소스를 온 몸에 바르고 핫도그 포장지 모양을 본 딴 종이상자 안에 누워서 벌이는 나체시위 등은 오히려 노골적이어서 전전긍긍하지 않는다.

이런 풍경들을 거리에서 수시로 만날 수 있는 이 곳 문화에서 한 수 배우고 싶다. 더 천진난만하고 자연스러운 논란과 치료와 해방이 왁자지껄하며 일어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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