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동 한가운데서 동립만세를 외치다
상태바
대흥동 한가운데서 동립만세를 외치다
  • 충북인뉴스
  • 승인 2012.08.22 17: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시 일어서는 부흥하는 대흥동 르네상스
젊은 열정들이 모여 맘껏 에너지를 발산하다

충북 옥천읍내에서 2000원을 내고 607번 시내버스를 탄다. 30분 쯤 타고 대전 역전 시장에서 내려 횡단보도를 건넌다. 그러면 원동 중앙시장이다. 중앙시장은 왁자지껄 북적북적 뭔가 생생한 삶이 길어올리는 현장이다. 활어처럼 팔딱팔딱 거리며 살아있다.

찐한 냄새가 베어 있는 돈이 오가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이 원동 중앙시장 거리를 직선주로로 100m쯤 지나면 다리 건너 은행동이 나온다. 으능정이 거리라는 곳이다. 이 곳은 밤이 되면 네온사인 불빛이 휘황찬란하고 각종 외국, 우리나라 할 것 없이 각종 대기업 프랜차이즈 브랜드, 영업소, 대리점들이 불을 밝히며 유혹한다.

무작정 빨아들이는 소비의 공간이다. 여기도 100m쯤 걷자. 그러면 성심당을 지나 맞은편 대흥동 성당이 보인다. 횡단보도를 건너면 거기가 바로 대흥동이다. 대흥동은 펄떡이는 원동과 화려해 마지 않는 은행동에 비해 뭔가 소소하다. 그 소소함과 대흥동이란 이름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크게 흥하리라.

그 옛날 대전의 한 가운데 중구의 시내 중심점으로 그 위용을 자랑했던 대흥동은 둔산으로 유성으로 대전의 발전축이 옮겨가면서 쇠락해지는 원도심으로 전락했었다. 빈 건물이 여기저기 있었고 삭월세가 옥천보다 싸 가난한 예술가들이 스며들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예술가들은 뭔가 획일적이지 않고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해 있는 이 대흥동에 묘하게 끌려들어왔다. 그 로부터 6년 대흥동은 매년 대흥동립만세라는 부흥회를 열면서 살아나기 시작했다. 젊음이 모이라 하지 않아도 모여들었다. 에너지가 발산됐다. 그럼 대흥동으로 들어가 보자.

드러나지 않은 듯 도드라져 있고 우연히 걷다보면 또 그렇게 만나고 대흥동을 걷다보면 정말 다채롭고 즐거운 지뢰밭을 만난다.


▲ 19일부터 시작된 대흥동립만세 토마토 옥상 삼층에는 독립영화제가 열렸고 그 전 '혹시몰라준비한 팀'이 공연을 하고 있었다.

수많은 자본주의의 정규군 틈바구니속에서 게릴라처럼 신출귀몰 즐거운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그들은 개별적으로 살아있고 서로를 존중하며 그렇게 함께 서 있었다. 정규군이 명령에 의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면 게릴라들은 종잡을 수 없이 제멋대로 그렇게 생기발랄하게 살아있었다. 자동차를 가져온다면 대전 중구청에 차를 주차해놓고 걸어보자. 5분쯤 걷다보면 도시여행자라는 카페를 만나게 된다. 그 카페에는 한평짜리 갤러리가 있다. 그 갤러리에서 대흥동립만세의 5년여의 역사가 사진 전으로 전시 중이다. 작지만 소박하지만 사람도 많이 없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전시한다. 도시여행자 일꾼에게 물었다. 대흥동은 어떤 곳이에요?

“서울의 대학로와 홍대를 섞어놓은 듯한 분위기가 있지요. 젊은이들이 많이 모여 여러가지를 하는 곳이에요.”

도시여행자를 나와 바로 옆에 원도심레츠의 본거지로 들어갔다. 원도심 레츠는 보이지 않는 잡히지 않는 지역화폐 두루로 돈이 아닌 마음을 거래하는 곳이다. 여기에서는 대흥동립만세를 기념하여 로드스쿨러를 운영하는 괴물 강용운씨가 인도 사진전을 하고 있다. 인도 사진은 1만 두루에서 1만5천두루에 판매한단다. 두루는 원도심레츠의 화폐 단위이다. 돈을 내지 않아도 그만큼 서로에게 필요한 일을 하면 갚아지는 시스템이다. 아무튼 그 곳을 지키는 옥강 이종현 선생과 마실온 민들레 조합원 법동에 사는 이현석 선생에게 물었다.

대흥동은 어떤 곳인가요?

원도심 레츠 지기 이종현 선생이 말한다.
“대흥동은 희망이지요. 요즘 세상을 삭막하게 생각했는데 대흥동에 오면서 순수한 젊은이들이 맑은 영혼을 가진 젊은이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아이의 미래에 대한 염려가 있었는데 대흥동을 보면서 조금씩 내려놓게 되었어요. 무언가 똑같이 가지 않아도 되는 구나 이렇게 다르게 살 수도 있구나 생각해요.”
법동에 사는 이현석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요즘 대학문화가 거세됐잖아요. 어느 순간 기획을 못하더라구요. 초청가수 불러 그냥 행사하고 그러는 것 같아 안타까웠죠. 그런데 대흥동에 오면 산뜻해요. 옛날 시대적인 사명과 주체적인 기획과 고민이 여기에서는 또 다른 방식으로 풀리는 것 같아 참 좋았어요. 이렇게 다양하고 다채로운 방식으로 문화생산자가 될 수 있구나 생각했지요.”

은행동과 둔산, 유성에 대한 비교분석도 날카롭게 덧붙여 주신다.

“대흥동 성당 앞 횡단보도를 건너면 바로 은행동이에요. 으능정이 거리라 하죠. 그 곳은 네온사인으로 상징되는 빛이 유혹을 하지요. 불나방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고요. 하지만 대흥동은 다르죠. 이 곳에는 언제부터인가 인터파크나 정심화 문화회관 같은 큰 공연 포스터보다 작고 아기자기한 전시 공연 연극 포스터가 부쳐지기 시작했지요. 자기네들끼리 좋아서 그냥 하는 거에요. 언더고 아마추어지만 부러운 언더이지요.”

그는 대흥동에 살지 않지만 대흥동에 대해 할 말이 많다. 신영복 선생의 이야기까지 덧붙이면서 말을 마무리 짓는다. “신영복 선생의 변방을 찾아서를 보면 변화는 변방에서 시작된다고 했지요. 대흥동은 물질적으로는 지금도 변방이지만 이제 정신적으로 중심이 되었어요. 잘 나간다는 둔산이나 유성. 은행동보다 정신적으로 더 앞서 있다 생각을 해요.”

대흥동은 에너지가 넘치는 곳이었다. 5회째 되는 축제는 여느 관의 축제처럼 요란뻑적지근하게 자신의 모습을 과다하게 노출하지 않았다. 숨어서 속삭이듯 젊은이들은 그들만의 밀애를 축제에서 충분히 즐기고 있었다. 모여지는 듯 모아지지 않았고 흩어지는 듯 흩어지지 않았다. 너무도 자유분방하게 제각각 모습 그대로 살아 있었다. 그 대흥동으로 좀 더 들어가고 싶었다. 그 에너지에 몸을 싣고 싶었다.

▲ 대흥동이라는 공간을 기록하는 젊은 토마토 일꾼들.

대흥동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대흥동이 단지 소소하게 보여지는 것 처럼 부웅부웅 떠 있는 곳은 아니다. 치열하게 과거를 읽어내고 현재를 고민하며 미래를 설계하는 노력들이 담겨 있기 때문에 대흥동이 조금 더 지속가능해지는 것은 아닐까. 대흥동의 문화부흥, 르네상스를 주도했던 핵심 축 중 하나로 월간 토마토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 월간토마토 이용원 편집실장은 대흥동이 지속가능하려면 조금 더 고민과 성찰이 필요하다 말한다.
월간 토마토는 대흥동의 르네상스와 역사를 같이 했고 여러 에너지를 한데 모아내고 기록하는 일을 자임했다. 부사동 옥탑방에서 대흥동으로 이사 온지 5년 남짓 그 동안 토마토도 무럭무럭 자라났다. 1층 북카페 이데를 인수해 운영하고 있고 최근에는 편집국을 별도로 만들어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스며들고 있다. 원도심레츠 바로 위 사무실이 토마토 비밀편집국이다. 왕토마토 이용원 편집실장에게 대흥동에 대해 물었다.

“대흥동은 물론 긍정적인 부분이 참 많아요. 저는 대흥동을 보면서 공간의 재해석이란 말이 떠올랐지요. 획일적인 자본위에 세워진 둔산과는 또 다르다. 근대건축물이 살아있고 다채로움이 있다는 것이 대흥동에서의 느낌이었지요. 젊은 열정을 가진 젊은이들도 많이 모여들었지요. 하지만 이게 전부라고 여기서 끝이라고 생각하면 대흥동은 더 이상 진전이 없어요.”

그는 좋은게 좋은 대흥동이 아닌 치열한 사회적 고민을 같이 나누는 지속가능한 대흥동을 너무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대흥동이 관의 무분별한 개입으로 자칫 상처를 입고 흔들리지 않을까? 다시 쇠락의 길을 걷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관의 무분별한 개입이지요. 나눠주기식 생색내기식 예산지원이지요. 이 때문에 대흥동이 멍들고 있어요. 벌써부터 어떤 건물을 관에서 매입한다더라는 소문이 퍼지고 원도심활성화 정책을 한답시고 하는 사업들이 결국 부동산값만 잔뜩 올려놓고 엉뚱한 곳에 돈을 푸는 거죠. 그렇게 되면 어찌 될까요. 가난한 예술인들은 떠나게 되거나 예술의 외피만 두른 가짜 예술인들이 관에서 나오는 돈 받아 챙기며 그저 그런 활동을 하겠지요. 그럼 결국 똑같아 지는 거죠.”

그 고민의 화살은 모여드는 젊은이들에게 향했다. 개인적인 고민이 아니라 같이 모여사는 공동체의 고민, 지역사회의 고민, 지속가능성의 고민이 오롯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고민이 약해요. 관의 공적지원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이 많이 부족하죠. 관도 그렇고 일부 예술인들도 그렇고요. 예술은 독립적이어야죠. 체제에 대한 저항을 기본적으로 담고 있지요. 그냥 놀고 싶다고 신나게 노는게 예술은 아니지요. 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철학. 지속가능성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지요. 이렇게 생각없이 몰려들다가는 룸펜만 양산하는 공간이 될 가능성이 커요. 이의 근원은 우리의 근본적인 문화예술교육에 있기도 하죠. 기능 중심으로 강권하는 문화예술교육은 그 깊이보다 외피를 가르쳐줘요. 여기 모이는 젊은이들이 스펙쌓기를 즐기는 요즘 젊은이들과 다르기는 하지만 그 열정과 에너지로 고민없이 공부없이 발산하기만 한다면 금방 비워질지도 모르지요. 그러면 허탈해지는 것이고 추억으로만 남겠지요.”

▲ 대흥동의 공간을 중심 거점 중 하나인 월간토마토와 북카페 이데 사옥.

“시민들의 의지와 관의 무관심이 필요”

대흥동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까? 관은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 할까? 대전시와 중구청은 대흥동이 뜬다 싶으니 생색을 내려고 여기저기 사업비를 찢어 발기며 각각의 단체에 조금씩 조금씩 지원해 주는 모양새였다. 그 지원에는 방향성도 철학도 없는 생색내기라 단호히 말했다. 그는 관의 지원에 대해 다시 말한다.

“관의 지원이 전혀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죠. 필요하죠. 하지만 철학과 깊은 통찰이 없는 지원은 망치기 딱 십상이죠. 왜 지원해야 하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과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에요. 얼마전 인천문화재단에서 오신분이 발표자료에 이렇게 썼더라구요. 시민들의 자발적인 의지와 관의 적정한 무관심이 성공요인이었다고. 무분별하게 무차별적으로 지원할 바에야 아예 관심을 꺼주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지요. 호흡이 너무 빠르고 가빠요. 문화예술사업을 무슨 벽화그리듯 뚝딱뚝딱 하잖아요. 과정을 보지 않고 성과중심으로만 가는 관의 지원은 그야말로 독배이지요.”

찬란한 기획, 열정의 젊은이들

토마토 비밀편집국을 나와 걷는다. 걷다보면 허름하지만 잘 눈에 띄지 않지만 ‘공감만세’란 이름의 간판이 보인다. “공정함에 감동한 사람들이 만드는 세상”이란다. 공정여행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젊은이들의 모임이다. ‘공정여행은 즐거운 불편이다!’ 청년사회적기업 공감만세는 필리핀, 베트남, 인도 등 동 아시아 뿐 아니라 유럽까지 그 발을 넓히고 있었다.

그들은 렌트카 대신 버스를 이용하고 멋진 레스토랑 대신 원주민과 같이 식사를 호텔 대신 민박을 하는 것으로 공정여행을 실행한다. 그들의 구호에 모든 것이 녹아있다. 즐거운 불편이 서로 살리고 세상을 살리고 지구를 살리는 거겠지. 마침 문이 닫혀 있어 만나보지 못했지만 그들의 마음은 사진과 글귀로 충분히 읽혀졌다. 공감만세를 지나쳐 자칫 그냥 지나쳐버릴 수 있는 골목에 산호 여인숙이 있다.


▲ 산호여인숙 서은덕씨는 아직 많이 모자라지만 젊은 열정들이 모여 대흥동을 만들어가고 있다 말한다.
77년에 개장해 서민들의 애환을 담아냈던 산호 여인숙은 원도심의 쇠락과 함께 10년 쯤 문을 닫았다가 다시 젊은 예술인들에 의해 새롭게 열린 것이다. 이 곳에서는 1층에는 전시를 하고 2층은 게스트 하우스이다. 게스트 하우스 1인 하루 숙박료는 1만5천원 참 착한 가격이다. 거기서 무급 자원봉사 예술활동가 서은덕씨를 만났다. 그에게서 대흥동이란 어떤 곳일까? 궁금했다.

“나만의 방식, 나만의 속도가 중요”

“네 다양한 젊은 친구들이 대흥동에 모여들어요. 꼭 체제에 저항하고 자본에 반대하는 젊은이들만 모이는 것은 아니에요. 주류 편입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진 젊은이도 많지요. 여러가지 이유가 혼재되어 있죠. 젊다는 것으로 같이 섞이는 거에요. 재미있으니까. 중심을 잡고 가야한다는 말 공감하고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도 느끼지요. 학교를 다니지 않는 젊은 친구들과 공부모임 오감을 만들었는데 공유가 되버렸죠. 그냥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요. 사회적 기반과 철학이 얕은 것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지금부터라도 쌓아가면 희망이 더 커지겠죠.”

그녀는 지속가능성에 대해서도 관의 지원에 대해서도 또박또박 이야기한다.
“예술과 숙박이 혼합된 산호여인숙을 같이 운영하면서도 지속가능성에 대해 고민을 했죠. 관의 지원을 받는 것을 고민하면서 원칙을 정했지요. 우리의 속도가 아니면 받지 않는다. 남의 속도로 가면 무슨 문화가 만들어지겠어요. 끌려다니기 바쁘겠지요.”

“관의 사업이요? 마치 정책과 사업이 무슨 이벤트 같아요. 단순한 이벤트만 번쩍하고 성과중심으로 보고서만 작성하지요. 저희는 관의 지원 없이 자유분방하게 낮은 포복으로 느릿느릿 우리들의 속도로 가고 있어요.”

송촌동에 살지만 그녀의 삶은 대흥동에 녹아 있었다. 대흥동에의 싱크로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었다. “저는 일하는 시간을 일주일에 삼일 정도만 하기로 했어요. 이 곳에서는 돈을 받지 않고 그냥 좋아서 하는 일이에요. 이 곳 대흥동 공동체 생태계에는 돈을 많이 벌지 않아도 살 수 있어요. 적게 벌고 덜 쓰자가 제 생활원칙인데 대흥동과 잘 맞아요. 예술을 한다면 주변 사람들이 거리감을 느끼는데 숙박업을 한다 하니까 친근감을 느껴요. 주변 상가 사장님들하고도 많이 친해졌어요.”

대흥동, 재미와 의미사이를 거닐다

재미와 의미 사이. 의미를 너무 담아버리면 넘쳐버리면 의도가 되어버린다. 에이 그럼 재미가 없다. 그렇다고 재미만 있다보면 붕 떠서 남는게 없을지도 모른다.

대흥동은 재미와 의미 사이 묘한 줄타기를 하면서 서로를 잃지 않으려고 아슬아슬한 긴장감있는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대흥동이라는 블랙홀에 젊음이 속속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이렇게 재미도 모아지면 의미가 된다는 것을 대흥동은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대흥동은 뿌리를 내리려 산통을 겪고 있었다.

뿌리가 제대로 활착될 수 있어야 가지도 뻗고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만들어진다는 것을. 그 꽃 지고 열매 떨어져 다시 양분이 되어 얼마든 다시 꽃을 피울 수 있을 때까지 대흥동은 분주하게 움직일 것이다. 여전히 젊음이 꿈틀거릴 것이다. 그들은 마음속에서 대흥동립만세를 소박하게 외치고 있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