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분야 인프라 확충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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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분야 인프라 확충 필요
  • 윤호노 기자
  • 승인 2013.03.14 22: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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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 누드화 대가 문은희 씨, 충주 정착 20년… 공간 제약에 전시회 못 열어
세계적으로 호평 받는 화백이 충주시에 거주한지 20년이 다돼 가지만 정작 지역에서는 외면 받아 문화예술분야의 활성화를 위해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타 도시에 비해 작품활동을 할 여건은 좋지만 보여줄 공간은 열악해 이에 대한 보완마련도 요구된다.

충주지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소원 문은희(82) 화백이 충주시 동량면에서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문 화백은 1931년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나 1959년 홍익대학교 동양화과를 여성 최초로 졸업했다. 그는 고 황의철 박사(전 한양대 공대 교수)와 결혼했고, 만삭의 몸으로 홍익대 미대 입학시험을 통과했다.



▲ 문은희 씨의 작품들. 맨 위 사진은 일본 브래태니커 국제연감에 실림 병풍이다.

미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크지 않을 때여서 큰 화젯거리는 되지 않았지만 그는 동양화과에 입학한 첫 여학생이었다.

그는 1948년 남관미술연구소에서 기초데생과 서양화 조형기법을 배운 뒤 운보 김기창, 청전 이상범 화백에게 사숙했다.

1959년 대학을 졸업한 뒤 남편 유학 뒷바라지와 아이를 키우느라 붓을 놓았다. 그리고 서른아홉 살 되던 해 세 번째 아이인 딸을 낳고 다시 붓을 잡았다. 그는 10여 년 동안 눌러온 꿈과 열정으로 100호짜리 그림 20점을 완성했다.

해외서 찬사 받아도 국내선 냉혹

다시 10년. 마흔 아홉 살 되던 해, 더 이상 생활에 얽매이지 않고 그림에만 몰두하기 위해 10년 동안 남편과 별거에 들어갔다. 또 만족스런 작품을 만들기 위해 대학교수도 그만뒀다.

그는 혼자 남아 세계 최초로 시도한 수묵누드화가 꽃을 피우기까지 피나는 단련을 했다. 그는 마음에 드는 작품이 나오면 그림에 절을 할 정도였다. 1분에 한 번씩 자세를 바꾸는 남자모델 1명과 여자모델 3명을 관찰하며 2시간 만에 150개의 인체를 그려낸 길이 34m짜리 군상이 완성됐을 때는 어떻게 그렸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의 작품은 1980년대 말 일본에 알려져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1989년 일본 아사히TV는 그의 작품을 15분 특집을 했을 만큼 해외에서 찬사를 받았다. 기회가 될 때마다 일본은 그를 데려가려 했다.

프랑스 평론지에서도 그의 박진감 넘치는 누드화에 찬사를 보냈다. 프랑스 미술잡지 ‘OPUS’ 편집장이자 파리7대학 교수인 JeanLuc Chalumeau는 “문씨의 작품은 육체를 소유하려는 욕망이 아니라 제한된 공간을 열어 보이고자 하는 작가적인 표현의지를 구현하고 있다”며 “소원이 창조해내는 누드들은 바로 우리 내부의 가장 깊은 내면에 존재하고 있던 욕망이 화면이라는 회화공간에 가장 자유롭고도 원초적인 모습으로 자리하는 것”이라고 평했다.

스승인 고 김기창 화백은 살아생전 “나에게는 수백 명에 이르는 제자가 있다. 그 가운데서도 언제나 주시하고 있었던 제자가 바로 문은희다. 왜냐하면 그녀는 첫째로 쉬지 않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 성과는 연일 모델을 써서 그려대는 수묵누드에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모필에 의한 누드화는 세계에서도 문은희가 유일할 것이며 또한 그 선의 맛과 힘찬 에너지 또한 따를 자가 없을 것이다. 마티스의 누드화와 겨룰만하다”고 격찬했다.

하지만 국내에서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는 결국 죽고 나서 평가를 받자는 마음으로 충주로 내려왔다. 충주로 내려온 것은 충주에 거주하는 한 불교학자를 만난 것이 계기가 됐다. 조용하면서 풍광이 아름다운 충주에 매료된 것도 한 원인이었다.

市, “재정형편 어려워” 지원 난색

그러나 여생을 함께 하기 위해 내려왔던 남편은 1995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이후 3년 동안 붓을 꺾었다.
이후 그는 또 다시 일어섰고, 미처 작품이 되지 못했던 옛 화선지 속의 숱한 나신들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프랑스 파리 한국문화원, 일본 동경도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 등에서 전시됐으며, 고려대학교 박물관과 홍익대학교 박물관, 일본 스트라이프 하우스 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충주시에서는 전시회를 연 적이 없다. 자신의 작품을 전시할 전시관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충주에서 전시회를 하려다 전시관이 협소해 못하고 KBS청주 초대로 청주예술의 전당에서 개인전을 열었다”며 “충주시와 협의가 잘 돼 내 작품들이 지역에도 걸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시 관계자는 “사실 충주는 전시공간 자체가 협소해 대작을 전시할 공간이 마땅치 않다”며 “시 재정상 단기적으로 할 수 있는 사항도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이 관계자는 “작품하기는 다른 도시보다 좋지만 작품을 만들었을 때 보여줄 공간이 열악한 것은 공감한다”며 “상당히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워낙 큰 예산이 수반되는 만큼 현재로서는 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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