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택견 지기 반목…충주 택견도시 ‘한숨’
상태바
40년 택견 지기 반목…충주 택견도시 ‘한숨’
  • 윤호노 기자
  • 승인 2015.09.11 10: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 스승 밑 두 제자, 예능보유자 정경화-전수조교 박만엽 ‘정면충돌’
박 “정, 경력위조·공금 횡령” 폭로… 정 “명예훼손·폭행, 사실 무근”
▲ 택견 예능보유자인 정경화(사진 중간) 씨와 전수조교 박만엽(맨 오른쪽) 씨의 해묵은 갈등이 폭발하며 정면충돌해 법정싸움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두 사람은 신한승 초대 유능보유자 신한승(맨 왼쪽) 선생 밑에서 택견을 배운 40년 지기이자 동문이다.

유네스코 무형유산 및 정부의 무형문화재인 전통무예 택견이 택견의 전승·보급과 택견의 스포츠화 추진, 고 송덕기 선생의 택견 전승 등을 둘러싸고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다.

특히 택견의 1인자와 2인자가 정면충돌해 법정싸움으로까지 비화될 조짐이어서 하나된 택견을 위해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택견 전수교육조교인 박만엽(55) 씨는 이달 초 충주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택견 예능보유자 정경화(61) 씨를 명예훼손 및 폭행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한다”고 밝혔다. 박씨는 “정씨가 지난 3월 충청북도 지정 예능보유자 선정과 관련해 도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저를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인간으로 묘사하는 바람에 심각하게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했다.

폭행을 당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그는 “허위 의견서에 분노해 정씨를 명예훼손으로 법적 조치를 취하려고 하는 것이 알려지자, 정씨는 아들과 함께 충주시 호암동 택견전수관 사무실에서 제게 폭행을 가해 전치 3주의 상해를 입히는 등 육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택견 발전에 일조한다는 일념으로 살아온 저의 명예와 자존심은 땅에 떨어졌고, 인내는 한계에 이르렀다”며 “택견 전수교육조교를 사임하고, 정씨를 검찰에 고소해 끝까지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정씨의 택견 경력 및 학력 위조, 공금·보조금 횡령 등의 비리 의혹도 내놨다. 박씨는 “정씨가 택견전수관에서 지난해 해외항공권 명목으로 900만 원을 횡령했고, 매년 예능보유자 공개발표 때 문화재청과 충주시로부터 보조금을 받아 영수증을 중복 제출한 의혹이 있다”고 질타했다.

또 “전수생 교육 때 3년 이상 교육받도록 돼 있지만 불과 18번 만 교육시킨 채 이수증을 발급했고, 택견교육기관 지정 뒤 교육을 이수한 것처럼 속여 학위장사를 하는 등의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고 폭로했다.

법정싸움 비화 조짐

이에 대해 정씨는 “박씨는 분열을 우려한 택견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개인 욕심으로 예능보유자 신청을 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며 “명예훼손이나 폭행 주장 등 모두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어 “충북도의 요청에 따라 의견서를 제출한 것일 뿐이며, 폭행 부분도 서로 실랑이를 벌인 정도”라며 “지금 중국에 출장을 와서 길게 얘기를 못하지만 한국에 들어가면 이사회를 열어 현재 벌어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현재 정씨와 박씨는 각각 충주택견전수관 관장과 부관장을 맡고 있는데 택견 초대 예능보유자 신한승(1987년 작고) 선생 밑에서 택견을 배운 40년 지기이자 동문이다.

택견에는 박씨가 1975년에 정씨보다 1년 빨리 입문했지만 정씨가 스승을 이어 1995년 먼저 국가 지정 택견 예능보유자가 됐다.

택견계에서는 박씨가 자신이 택견 입문 선배이고 기량도 더 뛰어난데도 늘 정씨의 그늘에 가려져 왔다는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박씨는 기자회견에서 “택견이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듬해인 1984년 스승께서 ‘박만엽은 택견을 잘하니 실기를 맡는 지도사범을, 정경화는 글을 잘 쓰니 행정 담당 사범을 맡으라’고 역할을 분담해 줬다”고 주장했다.

문화재 택견 예능보유자가 되기 위해서는 4단계(전수생→이수자→전수교육조교→예능보유자)의 이수절차를 일반적으로 밟아야 한다. 이 때문에 택견계 일각에서는 “이수자 및 전수교육조교가 된다는 것은 예능보유자의 종이 된다는 것”이라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따라서 현 무형문화재 제도에서 인간문화재라 할 수 있는 보유자가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보유자가 되면 전통문화 확산과 세대 간 전승 의무와 함께 각종 지원 혜택이 이뤄진다.

보유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욕망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때문에 보유자 선정이 두 사람 갈등의 단초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갈등으로 이번 내홍을 겪기 전부터 충주지역 택견계는 정씨를 중심으로 한 택견원형보존회와 박씨를 중심으로 한 한국전통택견회로 상당기간 갈라져 있었다.

이들 단체는 충북도 지정 무형문화재(예능보유자) 지정을 각각 따로 신청하는 등 대립각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충주시 보조금 사업 등에서도 극심한 갈등을 빚었다.

10여 년간 계속돼 온 불화를 보다 못한 충주시는 2006년 2월 “택견계의 불화가 계속된다면 더 이상 시의 지원은 없다”는 선언을 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정씨가 한때 충주를 떠나 있기도 했다.

‘예능보유자 선정’ 갈등 단초

둘은 2004년과 2009년 화합을 선언하는 등 화해 노력도 벌였다. 2008년부터 통합논의를 본격화한 두 단체는 각 단체 5명씩 10명으로 구성된 통합추진위원회를 결성했고, 8차례의 회의를 통해 통합을 위한 10개항에 합의했다.

그리고 2009년 2월 택견원형보존협회와 한국전통택견협회는 10여 년간의 갈등을 접고 통합단체인 ‘(사)한국택견협회’로 출범했다. 당시 택견협회 측은 “대통합으로 충주 택견의 위상을 더욱 확고히 다질 수 있게 됐다”며 “충주가 택견의 메카임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도록 저변확대에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씨와 박씨의 오랜 경쟁관계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올 들어 박씨가 충청북도 지정 예능보유자 신청을 내자 둘 사이의 해묵은 갈등이 다시 폭발했다.

정씨가 충북도의 요청에 따라 도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택견이 무분별한 법인체 난립으로 분열과 혼란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도 차원의 예능보유자를 별도 지정하는 것에 반대한다”며 박씨의 개인적 문제점을 지적한 게 도화선이 됐다.

정씨가 도에 제출했다는 의견서에는 △박씨가 상임부총재로 있는 (사)한국택견협회를 이용해 마치 택견인들이 동의한 것처럼 꾸며…△박만엽은 문화재보호법 시행령 제19조 1항에 명시한 전수조교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망각하고 조교부적격자로 문화재청에 고발당했던 사람으로…△박씨는 검찰에 택견예능보유자를 음해하고 비방할 목적으로 1999년 2월 2일 현 보유자를 고소하는 등 파렴치한 행각을 서슴없이 자행해…△박씨는 2005년 2월 11일 그의 제자인 김모씨를 시켜 보유자를 고발하도록 사주한 자로서…중략…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박씨는 주장했다.

박씨는 도에 올린 의견서가 모두 허위사실이라 모든 사항에 대해 행정심판위원회에 근거자료를 제출했다고 했다. 아울러 박씨는 기자회견 직후 문화재청에 조교사임서를 제출했다.

시 “시립택견단 바꿀 것”

문화재청 무형문화재과 담당자는 “박 조교가 밝힌 정경화 예능보유자에 대한 여러 문제점에 대한 사실 확인이 먼저”라며 “그 결과에 따라 박 조교 사임서 제출에 따른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박씨의 신상문제와는 별도로 정씨를 검찰에 고소하면서 둘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어 ‘관계 회복 불능’ 및 ‘택견의 안정적 전승과 발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충주시는 사태를 지켜본 뒤 조직을 개편할 방침이다. 시 관계자는 “일단은 전반적으로 살펴보는데 박씨는 자신이 나이는 어리지만 택견 입문도 먼저하고 기량도 뛰어난데 스승이 돌아가신 뒤 전세가 역전됐다고 생각하고, 정씨는 택견계 분열을 막아야 한다며 박씨를 견제하면서 끊임없이 갈등이 빚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시 조례를 바꿔서 시립택견단을 (가칭)택견발전연구원로 바꾸고 관장과 부관장을 자리를 없앨 예정으로 그럴 경우 원장은 부시장이 맡게 될 것”이라며 “그리되면 정경화 씨와 박만엽 씨는 예능보유자와 한국택견협회 부총재로 각각 활동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한편 이번 내홍과 관련, 지난해 2월 한국택견협회 총재로 취임한 윤진식 전 국회의원의 중재 및 의견을 듣기 위해 통화를 수차례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