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별량 이야기 <제5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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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별량 이야기 <제55회>
  • 이상훈
  • 승인 2004.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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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구신화쉰다섯번째이야기
"호호호... 그나저나 참으로 신기하네요! 벌구님은 어쩌면 아버님이랑 똑같이 닮았어요? 두 눈이 작고 옆으로 쫙 째어져 위로 살짝 치켜올라간 것이 그렇고... 광대뼈가 앞으로 약간 튀어나온데다가 얼굴 피부는 대체로 거무틱틱한 편이고, 이마는 조금 넓은 편에 두 눈썹은 짙고 두꺼워서 마치 검은 송충이 두마리를 잡아 한데 포개놓은 형상 같고, 두텁고 붉은 입술은 언제나 위아래로 꽉 맞물려있고... 약간 마른 체격에 여섯자(180센티)가 훌쩍 넘는 키.... 호호호... 벌구님은 어쩌면 그렇게도 자기 아버지를 쏙 빼다 닮았나요? 아마, 모르긴 몰라도, 아버님께서는 벌구님을 볼 적마다 자기 어렸을 적 모습을 그대로 쳐다보는 것만 같아서 기분이 꽤나 흐뭇하셨겠어요. 어찌보면 이런 것도 효도해 드린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얘기를 계속 이어나가려던 여우리는 갑자기 이런 엉뚱한 말을 꺼내며 자기 딴엔 무척이나 신기한듯 달빛과 등잔 불빛으로 또렷하게 드러나있는 벌구의 이목구비(耳目口鼻)를 다시 한번더 요리조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라? 가, 가만... 그,그런데... 나이도 어린 당신이 어떻게 우리 아버님의 용모와 체격 등등을 그토록 소상하게 그림 그려내듯이 잘 알고있지요? 설마하니 내 생긴 모습을 가지고 미리 넘겨짚어서 말하는 건 아닐테고...“

벌구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여우리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호호호... 그건 말이지요, 제가 살아 생전 마님으로부터 그런 얘기를 매일매일 수도 없이 많이 들어서 그래요. 마님께서는 돌아가시기 바로 직전까지도 저와 함께 진흙 화장을 하시면서 벌구님의 아버님에 대한 얘기를 제게 들려주셨답니다.“

“아, 아니... 그 그럼... 여우리 당신은.... 우리 작은 어머님 시중을 들었단 말이요?”

벌구가 다소 의아스러운 척 물었지만, 그러나 이제까지 그녀가 해온 말과 행동 등등으로 미루어 보아 대강 그러리라 짐작을 하고있었는지 그다지 크게 놀라는 눈치는 아니었다.

“네. 그래요. 마님께서는 저를 늘 딸자식처럼 여기셨지만 저는 꼭꼭 마나님이라고 불러드렸어요. 마님께서는 나이가 어린 제가 무슨 수를 쓰든지 여기서 꼭 살아남아있다가 혹시라도 아버님이나 아버님께서 보낸 사람이 이곳 마을로 다시 오시게 되면 이제까지 있었던 모든 일들을 남김없이 모두다 털어놓듯이 내가 대신 알려드려야만 한다구요. 그런데, 아다시피 돌아가신 마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글씨라는 걸 배워 본 적이 있어야지요. 그래서 저는 무조건 많이 듣고 외우고 또다시 물어보고해서 되도록 오래오래 기억해두는 수 밖에 없었어요. 그러다보니 나중엔 돌아가신 마님보다도 오히려 제가 벌구님의 아버님에 대한 일들을 더 많이 기억할 수 있게 되었지요."

여우리는 여기까지 일단 말을 하고나서 잠시 한숨을 돌리고나더니, 천천히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사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린다는 게 조금 민망스럽긴 하지만, 그러나 있는 사실을 그냥 모른 척하거나 숨길 수는 없기에 벌구님께 들려드리겠어요. 그러니 듣기에 다소 민망하더라도 이해해 주시기 바래요. 살아생전 마님께서는 저에게 얼마나 많은 얘기를 들려주셨는지 알아요? 심지어 마님께서 처녀의 몸으로 벌구님의 아버님과 남녀교분을 처음으로 나누시게 되었던 것을 비롯하여 두 분 잠자리 장면까지도 세세하게 제게 들려주셨답니다. 일례를 들어 구님의 아버님께선 키가 크신 반면에 마님의 키는 조금 작은 편이시서 두 분이 밤일을 함께 하실 때에는 부득이....."

"아! 그, 그만! 그만 하세요."

구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하지만, 최소한 여기까지는 얘기를 해야겠어요. 이제까지 제가 기억해놓느라 열심히 연습하고 노력했던 게 아깝잖아요? 그리고... 마님께선 워낙 사랑하시는 분이였기에 아무리 어디가 아파도 이를 악물어가며....“

"아, 그만! 그만! 알았어요. 알았다구요!! 아니, 이 여자가 정말 보자보자하니까 못하는 소리가 없네!"

마침내 벌구는 얼굴이 시뻘겋게 되어가지고 화를 벌컥내며 그녀의 말을 어거지로 제지시켰다.
여우리는 벌구가 워낙 강하게 나오자 자기 딴엔 잠시 자제를 하려는 듯 입을 꼬옥 다물었다.
벌구는 잠시 정신을 추스린다음 천천히 다시 물었다.

"그런데... 아무리 내가 머리를 굴려보고 생각을 해봐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딱 한가지 있네요. 당신은 어떻게 지금 말하는 마님, 그러니까 제 작은 어머니뻘 되시는 여자분을 주인으로 모시게 되었나요? 지금 이 집 꼴을 보아하니 돌아가신 저의 작은 어머니나 이복 형님은 그다지 넉넉하게 생활하신 것 같지가 않은데....."

벌구의 물음에 여우리는 잠시 얼굴을 찡그리다가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

"그에 대해 말씀드리지요. 그런데... 그게 좀...."

갑자기 여우리는 뭔가 가슴이 북바쳐 오르는지 또다시 입을 꼬옥 다물고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흘릴 것같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벌구는 지금 이러한 그녀의 표정 변화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쭉 살펴보고있었다.
마침내 여우리는 천천히 고개를 쳐들더니 구슬픈 목소리로 벌구에게 말했다.

"저어, 어차피 모든 걸 제가 말씀드려야겠지요? 사실, 벌구님께 그 말씀을 제가 모두 전해 드리기 위해 지금까지 모든 멸시와 냉대, 박해를 꿋꿋하게 참고 견디며 살아온 셈이니까요. 저, 잠깐 목좀 축이고나서 계속 말씀드릴께요.“

여우리는 이렇게 말을 하고는 앞에 놓인 차 주전자에서 차한잔을 따라 쭈욱 들이켰다.
아마도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길고긴 얘기를 꺼내놓을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벌구 역시 약간 긴장된 표정을 지으며 여우리가 들려줄 본격적인 얘기를 들을 준비를 갖췄다.

“아, 참, 그런데.... 제가 아까 어디까지 얘기해드렸지요?”

별안간 찬물을 끼얹듯 여우리의 입에서 이런 엉뚱한 말이 또 새어나왔다.

“아, 북쪽에서 어느 사람이 우리 아버님을 데리러 왔는데 작은 어머님의 배는 산같이 크게 불러있었다고 하셨잖아요?”

벌구는 이제 그녀에게서 중요한 얘기만 간추려서 들어보겠다는 기대를 기대를 아예 포기해 버린 듯 빈 입맛을 쩝쩝 다셔대며 말했다.

“아, 참 그랬지요. 그래요. 그래서 아버님께서는 어쩔 수없이 북쪽으로 다시 떠나시게 되었는데 그때 아버님께서는 ....”

“그 다음에 있을 얘기는 저도 대충 짐작이 가네요. 우리 아버님께서는 산월(産月)이 가까워진 작은 어머님께 ‘반드시 내가 돌아오던가 아니면 사람을 보내줄 터이니 그때까지 기다려달라!’고 하셨을 것 같은데요?”

벌구가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맞았어요. 그리고, 아버님께서 멀리 북쪽나라로 가신후 작은 어머님께서는 꼭 한달만에... ”

“물론 아들을 낳으셨겠지요? 이제까지 저보고 이복 형님 어쩌고 자주 말했으니까...”

“어머머! 자꾸 그런식으로 미리 넘겨짚어서 말씀하시지 마세요! 제가 말하려는 기분이 안 생기잖아요. 그런데 벌구님!”

여우리가 조금 화난 표정으로 벌구를 쳐다보며 물었다.

"왜요?"

"솔직히 이것부터 말씀해 주세요. 구님께선 지금 이 두분한테 별다른 관심이 없으신 거죠?"

"......"

"보아하니 벌구님께선, 만약에 작은 어머니께서 아들이 아닌 딸을 낳으셨더라면 더도 알아보지 않고 냉정히 뒤돌아서서 그냥 돌아가 버렸을 것이고, 설사 아들이라 하더라도 그 분이 북쪽으로 함께 따라갈 의향이 없다고 버틴다면 역시 그냥 돌아가시려고 하셨죠?"

"....."

"제가 생각컨대,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살아 생전 마지막으로 당부하시기를, 어떠한 일이 있어도 그곳에 가서 무슨 간섭을 하지 말아라! 너는 어떤 여자와 절대로 사랑에 빠지거나 관계를 갖지도 말아라! 만약 네 작은 어머니와 네 이복형제가 죽었거나 그 행방을 찾을 수 없다면 지체말고 곧장 되돌아오너라! 하셨겠지요?"

"아 아니... 어, 어떻게 그 그걸?"

벌구는 깜짝 놀라 작은 두 눈을 찢어질 듯이 크게 뜬 채 여우리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어머머! 왜 그렇게 놀라세요? 호호호.... 그런데 작은 눈이 이렇게라도 커지니까 인물이 훨씬더 나아보이네요! 호호호...“

그녀가 웬일인지 재미있다는듯 낄낄거리며 웃어댔다.
그녀의 이런 행동은 벌구를 극도로 혼란스럽게 만들어주었다.

‘으음.... 도대체 알다가도 모를 여자네! 어떨 땐 울다가 웃다가... 설마하니 미친건 아닐테고..... 으음....’

벌구는 다시 한번 아랫입술을 질끈 한번 깨물어본 다음 천천히 다시 물었다.

“허허... 이거 참! 내가 여우리 당신한테 진작부터 우리 작은 어머님과 이복 형님에 대한 얘기를 자세히 묻지 않았다고해서 은근히 조롱하는 것 같군요. 예. 좋습니다. 기왕지사 이렇게 된거 제대로 얘기나 들어봅시다.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된 겁니까? 아니 참! 우리 이복 형님 이름은 어떻게 됩니까? 이걸 내가 물어서 알아두지 않으면 관심이 없어보인다느니 하는 등등 자꾸만 이상한 말을 당신이 또 꺼낼 것 같으니 미리 좀 알아둡시다.”

벌구가 멋쩍은 표정으로 여우리에게 물었다.

“별량님이셨어요. 별량님!”

“별량?”

“네. 아버님께서 어쩔 수없이 북에서 찾아온 사람과 함께 떠나신지 딱 한달이 지난 후 작은 어머니께서 튼튼하고 잘 생긴 아들을 낳으셨는데 그분이 바로 벌구님의 이복형님뻘인 '별량'님이시라구요.”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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