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 금굴에서 나눔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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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금굴에서 나눔을 생각하다
  • 충북인뉴스
  • 승인 2006.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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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돌 위에 앉아 신발 끈을 묶습니다. 앞으로 근 일 년 간 바랑 하나 걸머지고 또 여행을 떠납니다. 5년 전 꼭 이맘 때 봄, 그때도 가방 메고 ‘여행스케캄를 다닌 적이 있습니다. 충북 지역 곳곳을 돌며 옛사람들의 흔적을 주워 담아 오는 여정이었지요. 지난 일은 대개 만족감보다는 아쉬움이 더 크게 자리하게 마련인 탓일까요. ‘길’에서 ‘길’을 묻고자 다녔던 길에서 정말 무엇을 얻었는지 이제와 바랑을 열어보니 그리다 만 ‘스케캄 조각들만 무성하게 고개를 삐죽이 내밀고 있네요.

이제 고개 깊이 숙여 신발 끈을 다시 고쳐 맵니다. 어설프게 많은 것들로 무겁기만 했던 바랑도 다시 한 번 추스릅니다. 감당하지 못할 것은 버리고, 간절히 원했던 것 또한 내려놓고, 다만 가슴 속 저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명료한 소리를 이제는 바랑 속에 담을까 합니다. 어쩌면 더 무거워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수수만년 동안 우리의 앞길을 열어간 先生들의 가르침은 분명코 내 바랑으로는 담아내지 못할 정도의 무게일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오랜만의 여행길을 나뭇가지 끝이 빨갛게 잔뜩 부풀어 올라 금방이라도 터질듯한 벚나무가 배웅해 줍니다. 여행을 떠나는 마음이 저렇게 잔뜩 설레기만 한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휘적휘적 또 길을 걷노라면 꽃망울의 희망가지, 활짝 핀 꽃가지, 듬성듬성 맺히는 열매가지, 그리고 마침내 다 떨구어 낸 빈 나뭇가지들이 이 작은 바랑에 꽂히고는 하겠지요.

어쨌거나 이제부터 나는 바랑 속에 될 수 있으면 우리가 살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담아오려 합니다. 그리고 가만가만 조심스러운 손짓으로 소중한 지면에 쏟아놓기로 합니다.

오늘 옆 사람에게서 문득 어려운 질문을 하나 받았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 맞는 거예요?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물론 내 자신에게도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묻는 질문입니다. 사람들은 왜 이런 물음을 늘 갖는 걸까요? 또 왜 그렇게 답을 잘 찾을 수가 없는 걸까요?

옆 사람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시원한 답을 해주지 못한 채 우물쭈물 일어서 첫걸음을 단양을 향해 떼놓습니다. 풀기 힘든 문제일수록 처음부터 차근차근 짚어 나가야 하는 법, ‘지금 여기’에 실마리를 단단히 붙잡아 매놓고, 이제부터 그 실꾸리를 풀어나가며 미궁 속으로 들어가 볼 참입니다.

단양에는 석기시대 사람들의 흔적이 있는 도담 금굴이 있습니다. 70만 년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도담 금굴을 찾아가기 위해 나는 지금 그 유명한 도담삼봉 앞에서 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실 몇 년 전부터 해마다 봄이면 이곳을 찾습니다. 선사 시대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그리게 하는 데 있어, 이곳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올 때마다 강을 건네주던 사공은 보이지 않고 낯선 사공이 통통배의 핸들을 잡습니다. 전의 사공은 이사를 갔다고 합니다. 사공과 행인의 인연으로서야 안부를 물을 처지도 못되지만, 왠지 서운합니다. 도담리에서 농사를 짓는 틈틈이 배를 부리며 천 원 씩 뱃삯을 받던 분이었는데, 이 배를 타고 고향을 떠났던 이농민들과 그 모습이 겹쳐 보이기 때문입니다.

배에서 내리면 강가 벌판을 한참이나 걸어야 합니다. 이 벌판은 양지 바른 곳이라서 이 맘 때면 봄나물이 한창입니다. 냉이를 캐며 선사 시대 사람들의 먹거리에 관해 생각합니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도 냉이며 꽃다지를 뜯어먹었다지요. 그런데 올 적마다 나물을 뜯는 사람들의 모습이 많이 다릅니다. 일행들이 각자 빈손으로 나물을 뜯을 때는 사람들의 손에 든 나물의 양이 비슷비슷합니다. 나물을 많이 뜯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한 움큼씩 나눠주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봅니다. 하지만 저마다 나물을 담을 봉지를 가져 온 날은 사정이 좀 다릅니다. 모두들 자신의 봉지를 꽉꽉 채워 넣느라 바쁩니다.

단양 도담 금굴은 구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시대까지의 역사 유물이 시루떡처럼 켜켜이 잠겨 있었던 곳입니다. 나는 거기에서 아주 오랜 옛날 사람들과 요즘 사람들의 모습을 봅니다. 그날그날 식물 채집과 사냥으로 먹거리를 마련할 때의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먹거리를 다같이 나눠 먹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농사를 시작한 신석기 시대 사람들부터 그렇지 않았습니다. 각자 자기 씨족들의 것들을 각각 쟁여 놓기 시작했습니다. 농사를 짓고 짐승을 가둬 기르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먹거리가 더 풍부해졌다는데도 말이지요.

비단 먹을 것뿐만이 아닙니다. 캄캄한 금굴을 뒤로 하고 돌아 나오는데 무언가 앞을 꽉 막고 있습니다. 금굴 앞 시원한 강변 가로질러 고층 아파트가 보는 이의 가슴을 참으로 답답하게 합니다. 단양 읍내 높다란 산기슭에 고층아파트를 짓는데, 그 아파트의 키가 산 능선을 넘어 산 뒤편까지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금굴 입구를 꽉 메우고 있는 형상이 된 것입니다. 몇십 평 깔고 앉은 공간뿐만 아니라 몇십 킬로미터의 조망권까지도 자기만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요즘 우리의 모습. 그것이 지금 도담 금굴의 입구가 그려내는 우리들의 초상화입니다. 더구나 그 아파트의 청약자 반 수 이상이 외지 사람으로서 별장으로서의 소유라는 말을 들으니 더 이상 몸 둘 바를 모르겠어서 다시 동굴 속으로 들어가고만 싶습니다. 가서, 오늘 아침 길 떠나기 전, 옆 사람에게서 받았던 질문을 곰곰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우리 이렇게 사는 것 맞는 겁니까?”

어쩌면 그 답은 우리 인류의 발자취 중에서 거의 99%를 걸어온 구석기 시대 사람들에게서 찾아야 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70만 년 전 사람들의 느린 걸음에 비해, 1만 년 전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많은 먹거리를 생산해 내고, 그에 따라 더 편리한 도구들을 만들었다고 해서 진정 우리의 삶이 발전한 것일까요? 신석기 시대의 잉여생산물은 사람들로 하여금 욕심을 자아냈습니다. 이어 청동기 시대의 청동 명품(거울, 방울, 검)들은 이전 시대의 ‘동네 박물관’ 같은 지혜로운 지도자를 밀어내고, 힘센 우두머리인 지배자에게 예속당하는 삶을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동굴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공간입니다. 도담 금굴, 원시 시대 이 동굴에서 나는 ‘서로 더불어 사는 것이 다 같이 잘 사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걸 조근조근 말해주었던 덕성스러운 옛사람을 만납니다. 결국 ‘나눔이란 평등을 향하는 행위’라는 생각을 합니다. 길 떠나기 전 친친 감겨있던 실마리가 조금 풀리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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