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처럼 스쳐간 순간이 영원으로 찍히다.
상태바
바람처럼 스쳐간 순간이 영원으로 찍히다.
  • 충북인뉴스
  • 승인 2006.07.2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얼치기 여행가 속리산을 내려오다 3
너무 유유자적한 걸음이었나? 문장대(文藏臺) 턱밑에 있는 중사자암(中獅子庵)에서 차 한 잔을 얻어 마시고 다시 산행 길을 잡으니 어느새 인적이 드문드문 하다. 곧바로 휴게소 하나가 나타난다. 냉천골 휴게소다. 젊은 부부와 아이 둘, 한 가족만이 비에 젖어 서늘해진 속을 따뜻한 컵라면으로 데우고 있다. 문장대 0.7KM라는 푯말이 반가워 위를 올려다보았으나 가파른 계단이 텅 비어있다.

요즈음 바랑을 걸머지고 떠나는 여행길에서 나는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오롯이 혼자 걷는 길은 곧 자신과 만나는 길이라는 것, 이는 또한 근사한 휴식시간이자 축복의 시간이 된다는 점이다. 문장대(文藏臺)를 향해 왔던 내 발걸음도 그랬다. 가파른 오르막길에서는 몇 걸음마다 쉬면서 추월해 가는 이들에게 살짝 웃어주었고, 내리는 빗소리를 친구 삼아 천천히 올라왔다.

   
▲ 속리산 문장대. 문장대는 법주사에서 동쪽으로 약 6km 지점,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에 위치한 해발 1,054m의 석대이다. 정상의 암석은 50여명이 한꺼번에 앉을 수 있는 규모이다. 이곳 바위 틈에 가물 때가 아니면 늘 물이 고여 있는 석천이 있다. 문장대는 원래 구름 속에 묻혀 있다 하여 운장대(雲臧臺)라 하였으나 조선시대 세조가 복천에서 목욕하고, 이곳 석천의 감로수를 마시면서 치명할 때 문무 시종과 더불어 날마다 대상에서 시를 읊었다하여 문장대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 곳에서는 속리산 최고봉인 천왕봉과 관음봉, 칠성봉, 시루봉, 투구봉, 문수봉, 비로봉 등 높고 낮은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사진=육성준기자
통통통 빗소리에 맞춰 발짝을 떼어 놓으면서 빗방울 왈츠라 이름 붙였고, 비를 만나 힘차게 내려가는 계곡물 소리에 발걸음을 맞추면서 마치 빗방울 행진곡을 따라 행군이라도 하는 듯 스스로의 발걸음을 즐겼다. 스스로의 발힘에 맞게 스스로 완급을 조절하는 길은 숨이 찰 일이 없다. 원래 놀면서 가는 길, 즐기면서 가는 길은 그렇게 전혀 힘들지도 않은 법이다.

애당초 멋있는 문장대(文藏臺)를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동안 사진으로 보아온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형형색색의 등산객들이 웅장한 바위 위에 올라서 있는 문장대의 모습도 진작 버리고 오른 길이었다. 비에 젖은 세심정을 만나면서부터였다. 비구름에 쌓여 있을 게 뻔한 문장대에서 사진을 못 찍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스쳐가는 바람 속으로 던져 놓았다.

대개 고지가 바로 저기인 막바지 길은 가파르게 마련인가. 하늘이 먼저 보이는 문장대 길은 매우 가파르고 긴 오르막계단이었다. 저 계단 끝이 문장대인가, 하면서 올라보니 산 능선 마루금에 문장대 휴게소가 있다.

속리산 문장대(文藏臺)의 원래 이름은 운장대(雲藏臺)였다고 한다. 구름 속에 묻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장맛비가 오락가락 하는 산길을 따라 올라온 문장대는 말 그대로 운장대(雲藏臺)였다. 비는 저 먼저 어느새 산 너머로 훌쩍 가버렸고, 구름은 저 아래 세상을 완전히 파묻어 놓았다. 문장대의 자랑거리인 가로막는 시선 하나 없이 빼어나다는 조망미를 느낄 수가 없다. 보이지 않으니 꾸며댈 말도 없다. 몰려온 바람만이 모자를 벗겨버릴 만큼 힘차고 세다. 그래서 나는 또 하나의 이름을 혼자서 살며시 보탠다. 풍장대(風藏臺)!

천천히 올라온 산길이라선지, 심상찮은 일기 탓인지 문장대 휴게소에도 문장대 꼭대기에도 사람이 많지는 않다. 손꼽을 정도의 등산객들도 서둘러 내려갈 차비를 차리고 있다. 산길을 갈 때, 올랐던 길을 되짚어 내려오면 왠지 재미가 없다. 내려오는 길은 신선대 쪽으로 잡는다. 실은 이 길도 초행길이다. 다만 예전에 천왕봉에서 경업대를 거쳐 하산했던 기억과, 문장대에서 신선대로 가는 능선 길이 짧다는 안내 책자를 길잡이 삼아 더듬어 내려가는 길이다. 어차피 평소 안 해 본 짓을 한다는 기분으로 오른 산행길인 터, 과감히 신선대로 향한다.

이미 나 있는 길 따라가는 것이니 크게 겁낼 것도 없는 거야, 이렇게 속다짐을 하며 가는 길에 반가운 나무를 만났다. 산뽕나무 열매가 빗물을 이슬처럼 매달고 있다. 산 아래 오디보다 작다. 몇 개 따서 먹는다. 빗물을 잔뜩 머금고 있어도 싱겁지 않다. 달콤하다. 야생의 맛은 이처럼 진하다.

우거진 나무 숲길을 그저 따라가다 보니 갈림길이 나온다. 짐작으로 법주사 방향의 길로 들어선다. 그런데 몇 걸음 가다보니 길이 끊기는데 바위등성이다. 이 길이 아닌가보네, 하면서 뒤로 도는데 바로 눈높이에 심상찮게 생긴 바위 봉우리들이 저만치 떨어져 있다. 우선 카메라에 담고 나서 바랑 속에서 책을 꺼냈다. 청법대다. 속리산 백만 기암 중에서 최고로 꼽히는 암석으로서 부처님 형상을 한 바위라고 써있다. 그러고 보니 잘 생긴 부처님이 주변의 암석들에게 불법을 전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럼 여기, 내가 서있는 이곳은 청법대 전망대?

   
▲ 청법대.
문장대 왼쪽으로 신선대와 사이에 있는 봉우리.
문장대에서 신선대쪽으로 향하다 문수봉을 지나 뒤를 돌아 바라다 보면 잘 볼 수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로 옛날 어느 고승이 속리산 절경에 영혼을 잃고 방황하던 중 이 봉우리에서 불경 외우는 소리를 듣고 제 정신을 차렸다 하여 청법대라 부른다.
홀로 걷는 산행길이야 혼자서 재미를 만들어 가면서 다니면 된다. 하지만 구름 속에 갖힌 산 모습은 억지로 꺼낼 수도 없는 일, 변변한 사진 한 장 찍어 챙기지 못한 터수라 그저 잠깐 개여 준 하늘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던지 부지런히 카메라에 담았다.
고마운 청법대 부처님을 뒤로 하고 몇 걸음 가다보니 신선대 휴게소가 나온다. 내 산행길이 늦긴 좀 늦었나 보다.

신선대 휴게소는 벌써 문이 닫혀 있다. 따뜻한 커피라도 한 잔 하려고 했는데 좀 아쉽다. 그러나 이쯤에서 다리라도 한번 쉬어갈 양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니 널따란 바위가 휴게소 앞에 놓여 있다. 바위 위로 오르니 하늘이 바짝 가깝게 다가온다. 비 그친 후 개여 가는 산 모습이 넓게 펼쳐진다. 저기 문장대도 비안개 때문에 희미하지만 그리 멀지는 않다.

주변에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니 행동이 더욱 자유스러워진다. 신선대 바위에 벌렁 드러누워 본다. 가릴 것 하나 없는 하늘이 더 넓게 보인다. 신선놀음이란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평소 높이 올려만 보던 나무들이 발아래 놓여 있고, 누구의 시선에 잡힐 것도 없이, 고요 속에 머무를 수 있는 상태. 혼자라서 오히려 더 충만한 상태에 자신을 놓아둘 수 있는 것.

   
▲ 관음암은 일명 경업대 토굴이라고도 하며, 663년(신라 문무왕 3년)에 매월대사가 창건한 이래 명맥만 유지해오던 이곳에 1971년 선암 화상이 현재의 관음암을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업대는 바로 이 관음암 앞에 있다.
세상 속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면 그러고도 싶다는 생각을 하며 신선대를 내려오는데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부터는 전에 와봤던 길이다. 금강골이다. 아마 조금만 더 가면 기이한 암석 사이로 들어가는 관음암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 중간 길에 임경업 장군이 무예를 닦던 곳이라는 경업대가 나올 것이다.

경업대는 큰 장군이 무예를 닦을 만하다 싶을 만큼 바위 자체도 웅장하다. 그리고 속리산 높은 능선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다가오는 곳이다. 오늘은 비 젖은 산이 내뿜는 비안개가 발 아래로 부터 산 너머로 빠르게 달려가고 있다. 그 모습을 따라가자니, 아! 저기 입석대가 구름옷을 반쯤 입고 서있다. 세상에! 오늘 본 것 중 최고다,라며 카메라를 꺼내어 렌즈를 맞추는데 그 순간 구름이 입석대를 완전히 감추고 말았다.

   
구름이야 잠시 머물다 가는 것. 곧 다시 그 모습을 볼 수 있겠지 싶어 카메라를 켜놓고 있었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입석대는 숨어서 나오질 않는다. 어느새 날이 저물어간다. 마음도 급하다. 산을 내려가는 길에 꼭 들러 볼 곳이 있어서다. 관음암이다. 바위 벽 사이로 난 절 입구가 특이하기도 하거니와 이름난 명산 한 구석에 작고 조용하게 자리한 작은 절이 잊혀지지 않아서다.

반쯤 가려서 더 황홀했던 입석대는 끝내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눈으로 담을 수 없는 것은 마음에다 담아야 하는 것일까.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이 아주 작은 것도 그 때문일까.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