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를 이어 양곡상, 단골도 대물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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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이어 양곡상, 단골도 대물림
  • 이재표 기자
  • 승인 2006.07.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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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역사 대성농산 운영하는 오희재·영균 부자
충청리뷰가 2005년에 이어 2006년에도 지역신문발전기금 우선지원대상으로 선정되면서 저술 분야에 대해서도 지원이 결정됐다. 이에 따라 2005년 12월 지역탐구 시리즈의 첫 번째 책으로 ‘시간을 잃어버린 마을 수동’을 출간한데 이어, 2006년 11월에도 ‘청주를 파는 육거리시장’이라는 제목으로 청주 최대의 재래시장으로 유통구조의 변화 속에서도 자생의 길을 열어가는 육거리시장에 대한 탐구서를 출간할 예정이다. 원고 가운데 일부를 ‘육거리시장 사람들’이라는 제하에 나누어 싣는다.
/ 편집자

육거리시장이 청주의 재래시장을 대표한다지만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열리던 5일장의 분주한 풍경 등 난장의 왁자지껄함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시장의 주요부에는 비와 햇볕을 가리도록 덮개지붕을 씌웠고 노점의 좌판도 일렬로 정비해 잘 정돈된 서랍처럼 시장 구석구석이 차분해졌다.

그래도 옛 모습이 남아있는 곳이 있다면 시장의 외곽인데 이른바 야채, 과일 등 청과물을 위탁판매하던 예전의 깡시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싸전, 피전 골목이다. 싸전은 양곡상을, 피전은 푸줏간 골목을 일컫던 옛 이름이다.

한때 20여곳에 이르는 양곡상이 즐비하던 싸전 골목에는 그래도 대여섯 곳이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피전 골목에서 푸줏간은 거의 사라졌지만 도축한 개나 염소, 닭 등을 파는 점포들이 성업 중이다. 행인들이 코를 틀어쥐거나 고개를 돌리게 하는 혐오스러운 풍경이지만 이곳을 찾는 발길이 끊이질 않으니 한곳에 모여 두고두고 그 위상을 보전해 나갈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선지해장국 체인점 사업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남주동 해장국이 피전골목에 위치한 것도 역사적 유래가 충분한 셈이다.

   
▲ 오희재·영균 부자가 새로 들어온 양곡을 옮기며 되를 재고 있다. / 사진=육성준 기자
2~3% 마진, 박라다매로 승부

1974년 문을 연 대성쌀상회는 싸전 골목에 있다. 1960년대 말부터 장사를 시작한 영진상회와 함께 이 바닥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불혹의 나이에 들어서면서 양곡상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대성상회 오희재(72) 창업자는 고희를 훌쩍 넘긴 백발의 노인이 됐다.

쌀 가마를 번쩍번쩍 들어올리던 강건한 허리도 켜켜이 더해지는 세월의 무게에 속절없이 휘고 말았지만 그래도 오씨는 뒤가 든든하다. 양곡상을 대물림하기 싫다며 이것저것 사업에도 손을 대고 미국 유학도 떠났던 아들 영균씨(37)가 든든한 후계자로 뒤를 잇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양곡상은 기우는 사업이다. 양곡판매가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뀌면서 대형 유통매장은 물론 동네 슈퍼마켓에서도 양곡을 팔 수 있게 되는 등 진입장벽이 사라지면서 무한경쟁시대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농산물이 수입되던 초창기에는 높은 마진을 톡톡히 챙겼지만 지금은 원산지 표시제도가 엄격하게 적용되면서 국산농산물이나 수입농산물이나 시장통에서는 ‘박리다매’를 철저한 원칙으로 정해놓고 손님을 맞고 있다.

대성상회에서 취급하는 양곡류는 줄잡아도 30여종에 이르는데 중국산 뿐만 아니라 미얀마산 동부, 수단 또는 인도산 참깨 등 세계 각지의 농산물이 이 재래시장 양곡상에 모인다.

   
▲ 대성 농산은 3명의 직원을 두고 양곡을 가정까지 배달하고 있다.
대성상회와 함께 농산물 가공 법인인 대성농산을 운영하는 아들 오영균 대표는 “수입 잡곡이 전혀 없던 1970대에 여기저기에서 들여온 잡곡들을 고르고 손질하느라 밤을 지새는 모습을 지켜봤다”며 “지금은 그 정도의 매기는 없지만 양곡상 수도 따라 줄면서 박리다매로 수지를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대성상회의 주요 거래처는 슈퍼 등 소매상을 비롯해 가정집, 식당 등 다양하다. 품목에 따라 다르지만 대형 유통매장에 비해 적어도 10% 정도 저렴한 선에서 양곡류를 공급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대형 매장에서 4만8000원~5만원에 팔리는 20kg 들이 청원생명쌀을 4만2000원, 4만원 선에 팔리는 일반 쌀을 3만6000원에 공급하는 수준이다.

오영균 대표는 “밑기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2~3%의 마진으로 물건을 넘기다보니 카드를 받을 경우 밑지는 상황이 발생한다”면서 “이 일대 양곡상들이 카드 가맹을 하지 않는 것은 낮은 마진율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버지의 안목은 세월의 산물”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오영균 대표가 결국 대를 이어 양곡업에 뛰어든 것은 1990년대 말부터다. 대학시절 법학을 전공하고 경영학 전공으로 유학길에 나섰을 정도로 무역업 등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지만 막상 연로한 부친이 사업을 접으려 할 때는 30여년 동안 쌓아온 노하우와 단골 인맥에 욕심(?)이 났던 것이다.

대를 이어 장사를 하는 것처럼 손님들도 아들, 딸, 며느리가 대를 이어 단골손님이 되는 것을 보고 사업을 승계하는 쪽으로 마음이 움직였다고.

   
▲ 대성상회 구석에는 역시 30년 된 담배 판매점이 있다.
오 대표는 “어떤 한 분야에서 평생을 바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성공의 시스템을 그대로 사장시켜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버지의 대를 잇게 됐다”며 “다만 변화하는 추세에 맞게 인터넷 등을 통해 유통의 경로를 다양화하고 포장재 개발 등으로 상품의 부가가치를 높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경영학 수업은 물론 유통업, 건설업 등에서 잔뼈가 굵은 오 대표지만 아직도 아버지를 따라잡을 수 없는 불가침의 영역이 있다. 바로 시골장 등 현지를 다니면서 양곡을 거둬오는 눈썰미다.

대성상회에서 유통되는 양곡 가운데 국산농산물의 70~80%는 창업자인 오희재씨가 시골장터 등 현지를 다니면서 직접 수거해 온 것이다. 오씨가 젊었을 때는 하루가 멀다하고 보은장이나 회인장에 나가 양곡을 사들였다. 장에서 소매로 팔리는 양곡류를 보고 흥정을 붙여 농가 창고에 보관 중인 양곡을 대대적으로 사들이는 방식이다. 지금도 예전 같지는 않지만 한달에 한두 번 정도는 새벽길을 나선다.

오 대표는 이에 대해 “아버지를 여러 번 따라나서봤지만 30여년 동안 쌓아온 안목은 혀를 내두를 정도”라며 “시장 상인들의 집이 어딘지를 속속들이 아는 아버지의 안목은 결국 세월의 산물이라는 것을 거듭 깨닫게 된다”고 강조했다.

   
▲ 저울 등 모든 도구가 현대식으로 바뀌었지만 쌀을 검사하는 삿대는 30년전 그대로다.
웰빙은 시대적 코드, 양곡 유통도 퓨전
“농산물, 문구용품 전자상거래로 승부걸겠다”


   
▲ 대성농산 오영균(37) 대표
대성농산 오영균(37) 대표는 타고난 장사꾼이다. 대학교 2학년 때 이미 자판기와 커피납품업에 손을 댔다. 공부에 목숨을 건 학구파는 아니지만 학부를 졸업한 뒤 캘리포니아 주립대 경영학과에 진학해 유학길에 올랐다.

무역업에 관심을 갖다보니 경영학도 경영학이지만 영어에 능통해야 하겠다는 목표의식 때문이었다. 숙제가 어려워서(?) 학업을 마무리하지는 못했지만 1998년, 영어에 말문은 틘 상태에서 귀국했다.

귀국한 뒤 가업 승계로 궤도를 수정한 것은 대성쌀상회라는 간판을 달고 33년째 장사를 하면서 축적된 사업수단과 고객들이 아까워서다. 창업자인 부친이 고령 등을 이유로 가게문을 닫으려고할 때 비로소 가까이 있어 몰랐던 보배의 가치를 알게 됐다.

그러나 오 대표는 양곡 유통업으로 새로운 승부를 걸기 위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2005년부터 대성농산이라는 상표로 농산물 가공업에 손을 댄 것이다. 청원군 내수에 있는 공장에서는 녹차와 청국장 분말을 재료로 한 청국장환과 11가지 잡곡류를 혼합한 잡곡세트, 선식세트, 참기름·들기름 등 전통 기름류 등을 생산한다. 아직은 아는 사람만 아는 정도지만 입소문으로 여기저기에서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

오 대표는 “웰빙이 삶과 문화의 코드로 자리를 잡다보니 건강이 주제인 TV 프로그램에서 특정 곡물의 효용성을 다루면 적어도 몇 주 동안은 그 곡물에 대한 특수가 일어난다”며 “이제는 양곡유통도 변화하는 추세에 맞게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오 대표가 준비하고 있는 전략은 다분히 퓨전에 가깝다. 인터넷 쇼핑몰을 만들어 전자상거래를 시도한다는 구상은 시대적 추세라지만 양곡 등 농산물과 함께 문구 등 사무용품을 주요 상품으로 다룬다는 발상은 다분히 이색적이다.

오 대표는 “인터넷 쇼핑몰이 저렴한 가격으로 경쟁력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재래시장 분위기가 물씬 풍겨나는 새로운 쇼핑몰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오 대표가 말하는 재래시장 분위기란 한마디로 말해서 ‘덤 문화’다. 고액 소비자, 또는 단골 소비자에게 한움큼을 더 얹어주는 재래시장 정서에 입각해 충분한 덤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오 대표는 “쌀맛나는 세상이 와야 살맛나는 세상이 온다”는 우스갯 소리로 종종 너스레를 떨지만 수많은 양곡상들이 문전성시를 이뤘던 싸전 골목의 어제와 오늘을 되짚어 보면 사업의 성패가 달린 절박한 얘기다. 더구나 육거리 시장에서 1세대에 이어 양곡유통에 종사하는 경우는 현재로서 오 대표가 처음이다.

오 대표는 “한때는 양곡 유통업을 하면서도 건설업을 기웃거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아버지를 이어 외길을 가기로 마음을 굳혔다”며 “50~60년 대물림을 통해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양곡유통 기업을 일으켜 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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