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천년역사 다시 땅에 묻다]지역문화재, 발굴은 ‘급행’ 보존은 ‘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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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천년역사 다시 땅에 묻다]지역문화재, 발굴은 ‘급행’ 보존은 ‘완행’
  • 권혁상 기자
  • 승인 2006.09.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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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읍성 객사 건물지 ‘매립보존’에 반발여론
사적 지정 추진시 중심상가 반대민원 충돌우려

청주시 남문로 M복합상영관(옛 쥬네쓰영화관 주차장부지) 건축공사 현장에서 발견된 청주읍성내 조선시대 객사(客舍) 건물지에 대한 문화재 지정 보전여론이 일고 있다. 문화사랑모임(대표 강태재)은 21일 발굴현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객사 건물지 유구가 통일신라 서원경 시대까지 청주 역사의 실마리를 풀어준 엄청난 발견임에도 불구하고 문화재지도위원들이 ‘건물지 유구를 되묻고 그 위에 특수공법으로 콘크리트를 타설해 주차용 건물을 시공하게 하자’는 의견을 제시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 청주읍성의 역사를 밝혀줄 객사 건물지는 발굴현장 설명회가 끝난지 이틀만에 포크레인에 의해 다시 땅에 묻혔다. /육성준 기자
중원문화재연구원(원장 차용걸)의 발굴조사 결과 700평의 발굴지에서 상당량의 통일신라~조선시대 기와, 도자기 조각이 발견됐다. 특히 지도상에만 나타났던 청주읍성의 객사로 추정되는 건물지가 발견돼 향토문화사가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지난 14일 발굴단장인 차용걸 원장과 지도위원들은 발굴 유구보전 방안에 대해 논의한 뒤 ‘흙으로 유구를 그대로 되묻어 보존하고, 그 위에 하중을 주지 않는 특수공법으로 주차장 건축을 허용한다’ 는 방안을 내놓았다.

차 원장은 “해당 부지는 중심상업지역에 위치해 문화재지역으로 지정될 경우 주변 일대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또한 고가의 사업부지를 나대지 형태로 놔둘 수 없어 고민끝에 보존과 개발 방식을 동시에 추구하게 됐다.

파일공법 대신 매트공법을 쓸 경우 철골이 지하에 박히지 않기 때문에 건물지 유구를 보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매트공법’은 건물 전체 하중이 바닥까지 미치지 않고 지표위 상층 콘크리트물에만 실리도록 하는 특수공법인 것으로 알려졌다.

도내에서는 지난 3월 청주시 상당구 운동중학교 신축공사에서 문화재 발굴에 따른 매트공법이 적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취재결과 철근 콘크리트 매트의 깊이가 60cm에 달해 일부에서는 “향후 문화재 재발굴을 위해 60cm의 철골구조물을 뜯어내는 일도 만만치않은 작업이 될 것”이라고 우려감을 나타냈다.

발굴조사단의 지도위원을 맡고 있는 이강승 교수(충남대 사학과)는 “돌이 깔린 상태 등을 감안하면 객사 건물지로 추정되는 중요한 유적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발굴 현장설명회에 참석한 충북도, 청주시 공무원들이 지자체 예산능력에 어려움을 토로했다.

현실적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사업주가 지하를 개발하지 않겠다고 해서 유구를 다시 묻어 보존하고 청주시가 장기적인 읍성복원계획을 수립토록 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지역사회의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도문화재심의위원회에서 문화재를 확대지정하고 인근 단층건물을 우선적으로 매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청원군청을 이전해 동헌이 빛을 볼 수 있도록 관에서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건축 전문가인 충북대 김경표 교수는 현장을 재현해 시민들에게 보여주는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최선의 방법은 유구를 보존하고 장차 건물을 복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문화도시를 외치면서도 보존하는 일에 회의적인 것 같아 아쉽다.

그냥 노출만 시켜놓은 것도 훼손이 되기 때문에 지표상에 객사 추정지만이라도 강화유리로 덮어 공개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아니면 복합영화관앞에 소규모 공원을 조성해 객사 건물지 유구형태를 그대로 재현해 시민들이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면 사업주 입장에서도 청주의 명소로 홍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발굴현장을 강화유리로 덮어 보존할 경우 상부에 주차장을 건립하려면 파일을 박는 과정에서 유구훼손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감이 제기됐다. 또한 소규모 공원조성에 대해서도 사업주인 D사에서는 대대적인 설계변경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발굴책임자와 지도위원의 ‘현장 되묻기와 주차장 신축’ 의견이 정리됨에 따라 사업주인 D사는 700여평의 발굴현장을 다시 흙으로 되묻는 작업을 끝낸 상태다.

한편 현장처리에 대한 최종 결정은 발굴조사단의 완료보고서를 제출받은 문화재청이 결정하게 된다. 하지만 지도위원의 기존 의견이 번복될 가능성은 없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향토 문화재 발굴·사후처리 과정에서 정작 지방자치단체의 목소리가 개입될 소지가 없다는 점이다. 도지정문화재인 동헌과 인접해 충북도가 현상변경허가를 내줬지만 이후 발굴조사 진행과 결과보고는 문화재청의 소관업무다. 이번 경우처럼 지역 역사를 밝힐 수 있는 유구가 발견됐더라도 사후처리 여부는 문화재청 소속 중앙문화재위원들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

제주목관아 복원, 지역의 ‘보물 1호’가 됐다
제주도가 첫 손가락에 꼽는 향토 문화재는 10년여 걸쳐 복원시킨 ‘제주목관아’다. 80년대말 제주 중심가인 삼도2동에서 도청, 경찰서 건물이전에 따른 나대지가 생겼다. 시에서는 지역경제 활성화 명목으로 공설주차장 건립을 추진했으나 시민단체, 언론에서 제주 역사공원 건립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2년여에 걸친 논란끝에 제주시는 91년 매장문화재 확인을 위한 발굴조사를 실시하게 됐다. 99년까지 4차례에 걸친 대대적인 발굴조사가 진행됐고 이미 93년 국가사적지로 지정받아 관아복원사업의 기폭제가 됐다. 이후 2002년까지 1단계 복원사업에 착수해 6천평 부지에 홍화각, 연희각, 우연당, 영주협당, 외대문, 귤림당, 중대문, 화랑 등 건물 8동을 복원시켰다. 소요예산 175억원 가운데 70%는 국비지원으로 충당했고 2단계 복원사업에 200억원이 소요될 예정이다. 이미 2단계 사업으로 지난 15일 청주관아의 ‘망선루’와 비교해 볼 수 있는 ‘망경루’를 추가 복원 상량식을 가졌다.

제주도 박용범 학예연구사는 “관아 부지가 시내 중심가이다보니 개발론자들을 납득시키는 작업이 어려웠다. 하지만 발굴을 통해 관아지 형태가 드러나 국가사적지로 지정받자 사유지 매입과정도 협조적이었다. 특히 문화재위원들은 ‘문화재적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만 판단해 지정여부를 결정하면 되는데, 개발론을 등에 업은 현실론을 개입시켜 문제를 꼬이게 하는 경우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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