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거리시장 사람들 11] 나물요리, 삶고 무치는 게 전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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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거리시장 사람들 11] 나물요리, 삶고 무치는 게 전붑니다”
  • 박소영 기자
  • 승인 2006.10.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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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시장의 영파워, 청주산나물 소윤호씨

“꼬불꼬불 고사리 이산저산 넘나물/ 가자가자 갓나무 오자오자 옻나무/ 말랑말랑 말냉이 잡아뜯어 꽃다지…” 초등학교 4학년 음악교과서에도 나오는 전래동요 ‘나물노러의 일부다.

아이들이 노래로 만들어 불렀을 정도로 이땅에 지천이던 산나물이 이제는 귀하다. 적어도 밥상에서는 말이다.

   
▲ 청주산나물 소윤호 대표가 쇠스랑을 이용해 삶고 있는 고사리 상태를 살피고 있다. 그만큼 물조절·불조절이 중요하다. / 사진 =육성준 기자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참취와 산마늘, 참나물 등은 생식하거나 데쳐서 쌈으로 먹었고, 들기름과 장류 등 갖은 양념을 이용해 각종 산채를 무쳐먹었다. 취나물류, 쑥부쟁이, 으아리 등은 삶은 뒤에 말리는 묵나물 형태로 저장했다가 가을부터 소중한 식용자원으로 활용했는데, 이로인해 삼동(三冬)의 식탁에도 생기가 감돌았다.

예전 같지는 않겠지만 지금도 겨우내 얼었던 땅이 푸석푸석해지기 시작하면 땅 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봄기운을 빨아올린 쑥이며 냉이, 원추리, 곰취 같은 푸성귀들이 산과 들에 삐죽이 새싹을 내민다. 산나물은 구황식품으로서도 톡톡히 역할을 해냈기에 배고픈 보릿고개를 넘어본 사람들은 그 어린 싹만 봐도 애환에 젖는다.

육거리시장에서 각종 산나물을 사려면 속칭 도깨비시장을 찾아가야 한다. 이름도 생소한 도깨비시장은 1970년대 청남교(꽃다리)까지 확·포장된 큰길을 따라 자연스럽게 좌판이 활성화되면서 시장 내부의 점포들도 더불어 성시를 이루게 된 것이다. 주식인 곡류를 제외한 1차 식품을 파는 50여 점포가 도깨비시장에 모여있다.

지금도 산나물이나 야채를 이고 나온 시골 아낙들이 도깨비시장 인근 큰길가에서 새벽시장을 열고 있는데, 노점과 점포는 여전히 공생관계다. 시골에서 가져온 신선한 채소와 나물류를 점포에 통째로 넘기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노점은 한꺼번에 떨이로 팔 수 있어 좋고 점포는 신선도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좋은 제품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신선도, 맛에서 전국 최고 자부
도깨비시장 상인회 수석부회장을 맡고 있는 소윤호(48·청주산나물)씨는 18년 전 이립의 나이에 아내와 함께 산나물 및 부식류 유통업을 시작했다.
새벽 3시에 문을 열어 오전 9시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다시 저녁 7시까지 가게 문을 여는 고된 일상이지만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는 옛 말을 매일 같이 확인하며 20년을 바라보고 있다. 도깨비시장의 상인들은 대부분 이렇게 부부사업자다.

소 부회장의 경우 사업에 손을 대기 전에는 온풍기 제조업체에서 품질관리 업무를 맡았었기에 지금의 일이 생소한 분야였지만 나물류를 직접 손질한 뒤 삶고 말리는 과정들을 몸소 체험하며 자신만의 노하우를 쌓았다. 고사리만 하더라도 삶는 과정에서 물조절, 불조절에 실패해 팔지 못하고 버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신선도와 맛에서 전국 최고를 자부하고 있다.

뿌리째로 들어오는 도라지를 쪼개거나 고구마 줄기의 껍질을 벗기는 단순작업 등은 시장 주변에서 날품을 파는 할머니들의 몫이다. 각자 집에서 작업을 한 뒤 작업량에 따라 일당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재래시장의 공생관계는 이렇게 촘촘한 그물과 같다.

   
   
이렇게 단계적인 가공을 거쳐 상품화된 도깨비시장의 산나물류는 다른 시장 상인이나 식당 등은 물론 중간유통업자를 통해 대형매장에도 납품된다. 대형매장의 경우 가공에 필요한 시설이나 인력이 없기 때문에 재래시장 등에서 제품을 구매해 가는 것이다. 시장이 가격 경쟁력에서 앞서는 것은 당연하다. 도매로 이뤄지는 거래에서 배달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소 부회장은 “일반 소비자들까지 다양한 수요에 맞추려다보니 중국산, 북한산 등 다양한 가격대의 제품을 취급하고 있지만 원산지 표시제를 정확히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고객들은 그만큼 다양한 선택의 폭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도깨비시장의 점주들과 가운데 비교적 젊은 층에 속하는 소 부회장은 그만큼 패기를 자랑하는 ‘영파워’다. 7~8년 전 이미 인터넷 상거래를 시도했던 경험도 가지고 있다. 개인적인 시도라 한계에 부딪혔지만 지금도 간혹 서울이나 인천, 경기 등에서 주문이 들어올 정도이니 가능성은 확인한 셈이다.

소 부회장은 “IMF 이전 보다는 못하지만 2000년 이후로 성장세로 접어든 것은 분명하다”면서 “이제는 시장 상인들이 힘을 모아서 시설개선 등 공동의 과제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 부회장은 또 “요즘 젊은 세대들은 산나물 요리를 어렵게 생각하는데, 1차 가공된 경우 갖은 양념에 무치거나 볶기만해도 된다”며 “손님들이 편한 것만 찾고 가격은 중요시하지 않는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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