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 울타리, 다시 철책을 두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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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 울타리, 다시 철책을 두르다
  • 권혁상 기자
  • 승인 2006.11.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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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년만에 향나무 자태 뽐내다 10일만에 재설치
'담장 허물기' 시민운동보다 '시위대 점거' 두려워

전국 지자체가 공공기관, 아파트, 단독주택의 ‘담장 허물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충북도가 담장 철책을 새롭게 교체해 논란이 되고 있다. 충북도청 철책은 지난 9월 하이닉스 하청노조의 도청 옥상 점거농성 과정에서 일부 노조원들에 의해 훼손됐다. 당시 경찰의 강제진압에 맞서 도청 진입을 시도하면서 노조원들이 낡은 철책을 쓰러뜨리게 된 것.

도청 철책이 사라지면서 50년 수령을 자랑하는 향나무 울타리가 고스란히 드러나 지나는 시민들에게 새로운 볼거리가 됐다. 기존 철책의 철거과정을 모르는 시민들은 도청이 ‘담장 허물기’ 사업의 모범(?)을 보인 것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충북도는 시위대 통제를 위해 외부와 차단된 철책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지난 13일부터 교체작업을 벌이고 있다. 싱그런 생울타리의 자태가 10여일만에 가려지자 시민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도청 울타리에 심겨진 나무는 향나무로 일제 당시 심었다는 설이 있었지만 확인 결과 지난 59년 총 746본이 식재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향나무의 수령은 47년인 셈인데 연륜에 비해 체격이 왜소(?)한 이유는 애초에 초두부(初頭部)를 잘라냈기 때문이라는 것. 울타리 용도로 심었기 때문에 너무 키가 크는 것을 막기위해 초두부를 제거해 성장을 멈추게 했다. 또한 철책과 맞닿은 줄기 부분은 가지를 알뜰하게 잘라내 현재의 ‘개구멍이 숭숭 뚫린’ 울타리 형태가 됐다.

‘도정(道政) 반세기’의 작가 이승우씨(75·전 충북도 운수연수원장)의 도청 울타리에 대한 연민은 각별하다. 이씨는 본관 건물-정원-생울타리를 일컬어 도청 3대 명품으로 꼽고 있다. “본관 건물은 빼어난 근대건축물로 문화재 등록이 됐고, 본관 앞 정원은 전국 어느 도청과도 비교할 수 없는 조림과 조경을 이루고 있다. 생울타리는 ‘상록수’로 불렸는데 50년간 그런 단아한 모습으로 가꿔온 자체가 귀한 일이다. 도청 정원은 시민 휴식공간으로 조성했는데 생울타리는 본래의 모습이 철책에 가려 아쉬운 대목이었다”

충북도도 훼손된 담장 철책을 재설치하느냐, 아예 철거하느냐를 놓고 고심했다는 것. 하지만 하이닉스 하청노조원들의 옥상점거 농성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고나서 청사 방어(?)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다는 것. 결국 ‘자라보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해 철책 재설치로 가닥을 잡았다. 6500만원의 예산을 들여 도청 울타리 3면에 흰색 철책을 다시 세웠다.

도청 청사시설담당은 “담장을 제거한 다른 광역자치단체의 선례를 확인해 본 결과 부정적인 의견이 대세였다. 특히 우리 도청은 독립 건물이 4동이나 되기 때문에 시위대가 진입할 경우 그 많은 출입문을 일일이 통제하기가 불가능하다. 향나무 울타리의 미관을 해치지 않도록 높이를 낮추고, 기존 철책 기초를 활용해 최소한의 예산으로 재설치하게 됐다”고 말했다.

취재진이 지난 7월 담장을 제거한 경기도청에 확인한 결과 시위대응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력을 동원해 막아보지만 과거 정문밖에서 진행된 시위가 청사 코앞에서 진행되다보니 정상업무에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반면 대구시청의 경우 청사와 거리가 떨어져있는 주차장이 시위대의 집회공간으로 담장 제거에 따른 불편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화적 시위’와 ‘공공시설 완전 개방’이 합의점을 찾지 못해 구태한 담장문화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도청 철책교체에 대해 일부에서는 기술적인 고려가 부족했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이승우씨는 “철책을 향나무 울타리 안쪽으로 치는 방법을 시도했다면, 외부 진입도 막고 울타리 형태도 그대로 보여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철책의 키를 가능한 낮추고 향나무의 색채와 어울리는 철책 디자인을 다시 고려해보기를 제안한다”고 말했다.

도청 완전개방 문제는 도지사 선거전에서도 후보자 캠프마다 공약채택 여부를 고민한 사안이다. 특히 상당공원과 도청간의 경계를 허물고 공원속 시설로 개방하는 방안이 검토됐지만 ‘신중론’에 밀려 불발로 끝났다. 충북도가 담장문화에 ‘보수적’ 입장이 견고한 반면 청주시는 지난 2002년 정문쪽 담장을 과감하게 철거했다. 시내버스 승강장쪽 담장을 허물고 도심속 ‘쌈지공원’을 조성해 시민들에게 뜻밖의(?) 휴식처를 제공하게 됐다.

청주시는 해마다 4천~1억원대의 예산의 세워 관내 동사무소의 담장을 대부분 허물었고 우암초·청주교대 등 학교시설과  청주YWCA·명성교회·청주시복지회관 등 민간시설의 담장 20여곳을 허물었다. 산남주공 2단지와 수곡연립 아파트, 율량동 현대아파트 등 아파트 담장허물기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담장을 허문 학교에는 ‘학교 숲 조성 사업’을 함께 펼쳐 학생들에게 야외수업이 가능한 자연학습장을 제공하고 시민들에게 도심 속 공원을 제공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일반주택의 경우 지난해 복대동 1가구에 시범실시했으나 주택밀집지역에서는 반응이 썩 좋은 편은 아니라는 것.

청주시 공원녹지과 녹지담당은 “시민에게 녹지공간을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담장허물기 사업을 벌여왔다. 시 재정으로 도심의 땅을 사서 새로운 공원을 조성하기는 힘든 일이다. 하지만 청주교대의 경우 1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시민이 향유할 수 있는 그 정도의 녹지공간을 확충했다. 청주지역이 보수성이 강하다보니 사전설득하는데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관련 예산과 인력만 있으면 사업은 얼마든지 확장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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